영국 탈북자유민, 바다낚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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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럽의 탈북자들"을 많이 애청해 주시는 청취자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여러분들과 함께 할까 합니다.

영국에는 현재 육백여 명의 탈북자유민들이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데요, 대부분 다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산다고 해서 여가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틈틈이 여유도 갖고 휴식의 한때를 보내기도 합니다.

요즘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지라 나들이 가는 탈북자유민들도 많은데요, 사면이 바다인 영국에서 고등어 낚시는 일상을 잊고 여유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가 생활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작심하고 바다낚시 팀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현장음)

아침 일찍 낚싯대를 둘러메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입니다.

북한에서 원족 가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어린애 마냥 좋아하는 영국 거주 탈북자유민들, 벌써부터 고등어 한 구럭씩 낚아 올린 기분입니다.

북한에서 선전대장으로 있다 2007년에 영국에 정착한 가명의 동명철씨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든 북한에서는 여가 생활을 보낼 여유조차 없었는데 여기 와서 이런 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동명철: 북한에서야 상상도 못하지요. 북한에서는 시간이 있으면 옥수수 한 알이라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먹는 데만 신경을 썼지 언제 여가 생활이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여가 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우리가 여지껏 살아온 인생에서 즐거운 인생을 찾았다고 생각됩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영국의 푸르고 푸른 언덕들을 바라보며 한 시간 가량 달려 차는 어느덧 남쪽바닷가, 브라이톤에 도착했습니다.

철석 이는 해변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갈매기들, 굽실굽실 출렁이는 파도는 기다렸다는 듯 흰 갈기 물보라로 환영의 공연을 선보입니다.

육십 대의 청춘으로 아직도 이십 대의 열정이 식지 않은 탈북민 어르신들은 점심식사로 싸온 도시락 배낭들을 풀기도 전에 낚시 대에 연 추를 달고 해변가로 뛰어갑니다.

서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누가 먼저 고기를 잡나' 내심적 경쟁을 벌이는 모습 이 마치 어린 아이들을 연상케 합니다. 같이 따라 나온 탈북민 아주머니들의 입김 또한 은근슬쩍 아저씨들의 승부욕을 부추깁니다.

현장음: 오늘 든든히 잡아야 저녁에 가서 매운탕 먹을 수 있어요, 알았어요.

드디어 첫 고기가 잡아 올려 집니다. 북한에서 삼십 년간 탄광운전수로 있다 2008년에 북한을 탈출한 가명의 김춘삼 아저씨입니다.

모두들 난리가 아닙니다. 칭찬도하고 질투도합니다. 매운탕을 끓어야 한다며 벌써부터 분주 탕을 피우는 아주머니들도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북한에서 세포비서로 있다 온 가명의 서명기 아저씨가 한 번에 세 마리를 낚아 올립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한 마리도 못 잡은 다른 아저씨들은 등이 달아오릅니다.

제가 한 번에 세 마리를 잡아 올린 서명기 아저씨에게 고기를 잡은 소감을 은근슬쩍 물어보았습니다.

기자: 고기를 제일 많이 잡으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서명기: 어찌다 나와서 고기를 잡으니까 마음이 뿌듯하네요.

기자: 북한에서도 고기를 많이 잡으셨나요?

서명기: 네, 북한에서야 고기를 잡아야 조그만 한 고기를 몇 마리씩 잡고 말았는데 그것도 북한서는 통제사업이 많아가지고 나가기도 힘들고 그랬는데 여기는 통제 하는 것도 없고 나와서 휴식도 잘하고 고기도 잡으니까 좋기도 하고, 건강도 좋고, 놀기도 좋고 그래요.

기자: 오늘 잡은 고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서명기 : 동무들과 같이 나눠 먹어야죠.

물이 최고조로 올라온 만조 때가 되니까 누구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고등어를 낚아 올립니다. 만선기 휘날리며 돌아오는 선장 부럽지 않습니다.

낚시꾼들 주위를 맴돌고 있는 갈매기들도 군침을 흘리며 까루까룩 연신 감탄사를 보냅니다.

잡아 올린 고기들은 바로 바로 매운탕 가마로 들어가고, 일부는 신선한 횟감으로 도마 위에 오릅니다.

매콤한 냄새를 연신 풍기며 신나게 끓고 있는 가마 옆을 떠나줄 모르는 아이들과 펄떡펄떡 뛰는 고등어를 단번에 칼로 쭉 도려내어 새하얀 속살을 꺼내 와사비에 찍어 코 마루까지 찡하도록 그 맛을 가늠해 보는 아저씨들 얼굴에선 웃음이 떠날 줄 모릅니다.

한쪽에선 숯불에 지글지글 고등어를 구워내는 냄새가 봄바람을 따고 주위 사람들의 코밑을 간지럽혔습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배꼽이 웃을 정도로 맛있게 먹고, 신나게 놀고, 원 없이 고기를 잡아본 이날의 바다낚시 여행기는 영국 거주 탈북자유민들이 평생 동안 잊지 못할 한 폭의 수채화로 바다 위에 수놓아 졌습니다.

이날 영국 탈북자유민 바다낚시 팀이 낚아 올린 고등어는 무려 70여 마리입니다.

런던에서 rfa 자유 아시아 방송 김동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