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민주화 전도사, 김송주 편집장

0:00 / 0:00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의 소식을 전하고 국제사회엔 북한의 소식을 바로 알리기 위해 지난 7월 8일 프리엔케이(자유북한)신문사가 첫 종이신문을 발간했습니다.

북한 민주화의 대표 신문을 표방하며 출발한 프리엔케이 신문사는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유민들이 한푼, 두푼 모은 사비를 털어가며 만들어가는 첫 탈북민 종이신문입니다.

2년전 온라인 신문으로 출발하여 종이신문 발간까지는 북한주민의 인권과 북한사회 민주화를 념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로 오늘에 이르게 되였다고 김송주 편집장은 이야기 합니다.

함경북도에서 살다가 97년 고난의 행군시기 엄혹한 식량난 속에 부모님을 여의고 가족이 흩어진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김씨는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나는 그날은 하루속히 북한이 열리고 북한 내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그날이라며 그런 소망이 있기에 재정의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한자한자 신문을 만들어 간다고 신문사의 근황을 설명했습니다.

김송주: 저는 고난의 행군시기 전국적으로 3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 할 때에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맏이로써 동생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갖고 식량구입을 떠났는데 돌아와 보니 어린 동생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집은 비여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봤지만 동생들을 행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북한에 우상화가 무너지고 문이 열리면 헤어진 동생들을 하루빨리 만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술을 붓고 싶은 것입니다.

현재 유럽의 한국교민사회와 북한대사관들에 뿌려지고 있는 한국어판과 전세계 주요 국제기관들과 NGO 단체들, 서방국가 의회들에 배포되고 있는 영어판은 모두 합쳐 오천 부입니다.

이 신문은 다 김 편집장의 손과 검수를 거쳐 발간되고 배포가 됩니다.

컴퓨터가 발달 되고 세계가 하나의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굳이 종이 신문이 없어도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보바다 시대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데 왜 어렵게 종이신문을 만들어 고생을 사서 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때면 김송주 씨는 전기가 없고, 온라인도 모르는 북한의 일반주민들 에게는 종이신문이 제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김 씨는 세계의 변화에 북한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특권층과 상류층에 해당된 소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외부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계층이 있고, 외부소식을 접할 수 없는 계층이 존재한다며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가지고 있던 텔레비전도 장마당에 내다 파는 일반사람들이 언제 컴퓨터요, DVD, USB를 접할 수 있겠냐며 그들에게는 전기도 없이 볼 수 있고, 아무런 조작법도 필요 없으며, 아무 때 아무 장소에 가서도 혼자 몰래 볼 수 있는 종이신문이 제일 잘 맞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송주: 일부 언론에서 북한의 손 전화 가입자가 100만, 200만 이라고 보도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잘 사는 간부들의 소식이지 일반 주민들의 소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일반주민들은 전화기도 집에 없습니다. 그런 일반 주민들이 DVD, USB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담배종이가 없어 신문지로 담배종이를 하는 북한사람들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종이 신문만이 유일한 소식지 입니다. 북한 뉴스를 다루는 일부 언론들이 혁명의 주체는 그 국가 국민들이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북한인민들이 외부소식을 접하는 방법의 문제에는 무관심을 보이고 북한의 상류층이 외부소식을 접하는 문제만 다루면서 마치 북한사회가 변화되는 것처럼 포장하는 보도야 말로 북한주민들을 이슈로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리엔케이(자유북한)신문이 종이신문 발간으로 첫발을 내 뗀지가 60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애기로 치면 아주 갓난 애기이죠. 하지만 이 신문이 무럭무럭 잘 커서 북한 민주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바람처럼 북한땅에 싱그러운 민주화의 봄을 가져오는 희망 소식지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고 많은 탈북자유민들은 소망했습니다.

런던에서 RFA자유아시아 방송 김동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