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상으로 떠난 영국의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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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역사가 어느덧 1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2004년도에 첫 탈북민이 정착한 이후 현재 600백 여명이 낯선 이국 땅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인생사를 돌아봐도 다 희로애락의 운명의 길들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모여 사는 사회에도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게 마련이고, 시련이 있으면 낙관도 있는 법입니다.

지난 25일 런던의 뉴몰든에 있는 재영 조선인 사회에서는 또 한 명의 탈북민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습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 정책으로 러시아의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나왔다 북한의 잘못된 현실에 눈을 뜨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여 2007년에 영국에 정착한 이현우씨, 오랜 폐암으로 고생하다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만리 타향에서 세상과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북한의 연좌제 정책 때문에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다칠 가봐 본명도 다시 찾지 못한 채 떠나간 동료를 바래야 하는 영국거주 탈북민들의 가슴은 무엇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다고 '재영 조선인 협회' 최중화 사무국장은 밝혔습니다.

최중화: 누구나 다 북한을 떠날 때는 자기 고향에 꼭 돌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 시간이 지나 그분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픈 것은 그분이 가족도 형제도 아무도 곁에 있지 못했다는 거 그래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고….

영국의 탈북민들이 동료의 장례를 처음 치른 것은 2009년도 장명철씨 장례식입니다. 건설노동 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체불된 임금을 해결하려다 흉기에 찔러 사망한 사건 이후 두 번째의 장례식을 맞는 것입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이 갑작스러운 상사를 당하면 제일 힘든 것이 시신을 걷어줄 이웃도, 장례를 치려 줄 가족도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혈 열 단신으로 탈북한 사람이라면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최 사무국장은 우리 탈북민들의 상황이 너나 없이 비슷, 비슷하기 때문에 개인이 혼자서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와 연합하여 어려운 일을 서로 상의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럴 때 나타난다며 해외에서 연고가 없는 탈북민들끼리 서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장례식에 많은 탈북민들이 참가했다며, 하나, 둘 떠나는 탈북민들을 보낼 때마다 북한땅이 하루빨리 열려 이역 땅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최중화: 저도 북한에 두고 온 자식도 있고 부모 형제들 다 가족이 그쪽에 있는데 우리가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이국 땅에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볼 때 참 가슴이 아프고 우리가 이런 계기를 통해서 더 빨리 북한이 변 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서 우리가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좀더 노력해야 합니다.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이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서 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빨리 북한이 자유로운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선진국의 고령화가 탈북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말로만 들어왔던 무병 장수를 실제로 선진국에 와서 누리고 있다고 탈북민 어르신들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언제 가는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종착역을 혼자서 준비하는 것보다 이웃의 탈북민들과 같이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장례식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