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탈북자들]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 영국 의회서 북 인권유린 실태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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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의 탈북자들이 영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수용소의 비참한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김동국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26일 영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눈물로 증언한 탈북자는 각각 미국과 영국에 살고 있는 신동혁 씨와 김서진 씨입니다.

신동혁 씨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제 14호 개천 관리소에서 출생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고 김서진 씨는 김일성, 김정일을 위해 조선인민군 협주단과 만수대 예술단에서 첼로를 연주하다 연좌제, 즉 연대적 책임제로 온 가족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됐습니다.

이날 청문회에는 영국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해외 탈북자유민 최대 조직인 ‘재유럽 조선인 총연합회’와 ‘세계 기독교 연대’ CSW, ‘국제사면위원회’ AI 도 참가해 세계 유일의 인권 사각지대인 북한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북한정치범 수용소는 혁명화 구역과 완전통제 구역으로 나눠져 한 번 들어가면 죽지 않고서는 사실상 나오기가 불가능한 특수 지역입니다. 완전통제구역은 정치범 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인권 유린 구역으로 전기 철조망과 각종 장애물로 둘러싸여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된 곳으로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는 21세기 현대판 나치 수용소인 홀로 코스트입니다.

1982년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태어나 성장한 신동혁씨는 2005년 북한을 탈출하기 까지 개천 관리소에서 짐승처럼 갇혀 살면서 심한 고문과 구타,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신씨는 영국의회에서 자신은 관리소에 있을 때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몰랐고 심지어는 북한 모든 학교에서 가르치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교육도 없어 그들 이름 조차도 모르고 자랐다며 그 안에서는 국어와 수학, 관리소 내에서 일 할 수 있는 노동 방법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수용소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고 심한 육체적 노동만을 강요 한다고 증언했습니다.

신동혁: 제가 살았던 수용소의 경우에는 죄수들이 늙어 죽을 때 까지 살아야 되는데 이들이 늙어 죽을 때 까지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사기를 높여주고 일을 더 시키기 위해서 표창결혼이라는 것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창결혼을 통해서 애들이 태어나고 그 애들도 태어나는 날부터 죄수로 등록이 돼 아버지랑, 엄마랑 같은 생활을 하고 있고 그들(간수들)이 우리를 가르쳐 줄 때에 관리소에서 지켜야 하는 법과 수용소에서 필요한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어요. 간수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때 가장 중요하게 설명해 주는 게 ‘너희들 앞에 서 있는 나는 인간이고 내 앞에 서 있는 너희는 짐승이다’ 그러기 때문에 열심히 일로써 보답해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고 그리고 일년에 두 번씩 꼭 공개처형을 하면서 그 공개처형을 통해 우리한테 항상 공포심을 조성하고, 눈을 떠서 시작하는 것이 매 맞는 것으로 시작해 눈 감을 때 까지 항상 긴장해야 하고 이것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현실입니다.

2006년에 북한을 탈출해 2008년에 영국에 정착한 김서진씨는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 즉 연대적 책임제에 연루돼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서진씨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보건 상까지 지냈으며 가족은 김일성 항일혁명투사 가족에 속하는 핵심계층 집안입니다.

김씨 본인도 성분이 좋아 김정일이 당 선전선동부에 있을 때 발탁돼 만수대 예술단에서 음악가로 활동했지만 결국은 김일성의 8월 종파투쟁에 아버지가 연루된 것이 밝혀져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가는 비극을 맞아야 했습니다.

1956년에 벌어진 8월 종파사건은 전쟁 후 북한이 권력을 재편성하는 과정에 일어난 사건으로 전후 복구와 개인숭배 문제를 놓고 김일성에게 도전장을 던진 권력투쟁에서 빨찌산파 최용건이가 주도한 반당반혁명종파 척결 사건 이였습니다.

이날 청문회에서 김씨는 할아버지 문제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조카들까지 현재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가족들의 생사확인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김서진: 저는 북한에서 음악대학 첼로 과를 졸업 했고요, 그 누구보다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가까이에서 많이 볼 수 있었고 다른 예술인들 보다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북한 보건 계통의 최고의 책임자였어요. 저희 아버지는 북한 고위인사들과의 자리에서 국민들의 생활을 향상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빌미가 돼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갔습니다. 그 후에 오빠들과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어린 조카들까지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어요. 생사를 모른 채 20여 년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저희 가족들의 생사를 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원이 없겠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 고발 청문회’ 가 끝난 뒤 ‘재 유럽 조선인 총연합회’ 김주일 대변인은 영국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문제와 나치수용소인 홀로 코스트 문제는 같은 성격의 문제라며 런던에 있는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 국제사진 전시회’를 가질 것을 영국의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날 청문회에는 영국에 거주하는 탈북자유민들과 150여명의 영국시민들도 대거 참가해 북한 인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 청문회는 북한인권을 위해 영국에 본부를 두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기독교 연대’(CSW)가 기획하고 주최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 6일 영국에 거주하는 탈북자유민들과 함께 북한 인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담은 ‘국제인권연대’(ICNK)의 편지를 영국주재 북한대사관에 전달한 바 있습니다.

런던에서 RFA자유 아시아 방송 김동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