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한겨레 계절학교 역사탐방②-거제 포로수용소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2010 여름 한겨레계절학교 참가자들.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2010 여름 한겨레계절학교 참가자들. (RFA PHOTO/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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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통신 이예진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공부에 지친 탈북청소년들을 위해 북한인권시민연합이 마련한 2010 여름 한겨레계절학교. 남한에서도 문화 관광지로 손꼽히는 거제, 그 중에서도 탈북청소년들은 의미가 남다른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그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이영석 북한인권시민연합 팀장: 자 주목!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해 아는 사람?

아이들: TV에 나와요.

이영석: 어디에? 민족과 운명이라는 드라마에 나온다는 거야?

옥경: 거기서 천리마시대 때 이름 있는 진응산이라는 사람을 원형으로 한 드라마거든요. 그 사람이 거제포로수용소에 있었대요. 그런데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어서 북에 와서 당에도 못 든다고. 그래서 나는 거제 온다니까 포로수용소가 생각난 거예요. 이렇게 좋은 경치보다 어두운 느낌으로 생각했어요.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거제 포로수용소는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많은 포로가 생겨 이곳에 인민군 15만, 중공군 2만, 여자 포로와 의용군 3천 명 등 최대 17만 3천 명을 수용했죠. 당시 거제에는 주민 10만 명, 피난민 약 15만 명, 포로 17만 등 약 42만여 명이 거주했습니다.

이영석: 인민군, 중공군 꼽바크, 노동단련대 알지?

아이들: 네.

이영석: 본 적 있지? 비슷하게 생겼어?

학생1: 수용소에서 여기 사람들을 그렇게 심하게 강하게 했다는데요?

이영석: 영상 보면 그 때 그대로지? 다르지 않나, 너희들이 본 거랑?

학생2: 그런데 이게 실제 모습이에요?

이영석: 응. 실제 촬영한 모습. 여자, 남자 따로 있었어.

학생3: 그런데 드라마에선 거제 수용소에서도 북한으로 가겠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간다는 사람들한테는 심하게 했다고 하던데요.

이영석: 더 중요한 건 한국군이 괴롭힌 것 보다 포로끼리 싸운 게 많았어. 북한에 가겠다, 가지 않겠다고 싸우다 죽고, 죽이고, 수용소장까지 인질로 잡히는 상황이 벌어졌어.

학생4: 소장을 잡은 이유가 뭐예요?

이영석: 포로 전원을 북한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거였지.

옥경: 싫어요, 싫어. 전쟁이 너무 싫어요.

수용소 안의 포로 가운데 반공포로와 공산포로 간의 반목이 극심했던 이유는 유엔군 측이 포로들에게 본국귀환을 포기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공산포로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수용소장 도드 준장이 납치되기도 했죠.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2만 7천여 명을 석방시키고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 거제 포로수용소는 폐쇄되었습니다.

이영석: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하지? 북한에서는. 지금 서울은 3일만 에 함락 당했고, 여길 보면 낙동강 주변인데, 낙동강까지 밀려서 거의 포위당했지. 여기에선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 밀리면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하니까, 이때 UN군이 들어오지. 인천상륙작전 들어봤지? 인천을 통해 UN군이 보급로를 끊어 버린거야. 인천상륙작전이 6.25전쟁의 가장 중요한 점 중의 하나야. 중공군이 합류하면서 다시 들어와서 서로 뺏기로 뺏기게 되지. 전쟁 이전에는 38도선이라고 하고, 지금은 휴전선이라고 해. 좀 다르지? 강원도가 북한과 여기에 있듯이 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이 끝나기 전에 북한은 개성 같은 곡창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 그러다 보니 UN과 중공군이 와서 협정을 하게 되지. 그래서 만들어진 게 휴전선이에요. 38도선과 휴전선은 달라요. 6.25 전쟁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은 전쟁이에요. 한국군은 전사 14만 명, 민간인은 24만 명이에요. 이렇게 민간인이 더 많이 죽은 가슴 아픈 전쟁이에요. 중공군이 대동강을 넘을 때 다리를 못 넘게 폭파해요. 그런데 저 것처럼 피난민들이 오고 있는 상황에 폭파해버려. 그래서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종군기자가 찍은 실제 사진이 있는데 6.25 전쟁 중의 가장 가슴 아픈 현장 중의 하나에요.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여기에 매달리고, 매달린 상태에서 넘어오고 그랬어요. 대동강 철교는 여러분이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어요. 전쟁의 다른 면이에요. 이렇게 이기기 위해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그런 모습이에요. 대동강도 폭파하고, 한강철교도 폭파하고. 한강철교도 많은 피난민이 가는데 폭파시켜버려.

거제 포로수용소에는 당시 수용소를 재현한 건물과 실제 자료 영상 뿐 아니라 6.25 전쟁에 관한 참상도 담고 있었습니다. 이영석 팀장의 말을 열심히 적고, 구석구석 사진 찍던 아이들은 조별로 주어진 과제를 위해 평화를 상징하는 사진 찍기에 한창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학생5: 남북 간의 전쟁이었고 서로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평화겠죠? 그렇게 만들어야죠.

학생6: 간단하게 생각하면 많잖아요.

학생7: 축구도 있고, 같이 하는 것도 있고, 즐겁게 나누는 것.

학생6: 그런데 그걸 행동으로 어떻게?

학생8: 비둘기는 평화야.

학생9: 평화라면 갈라진 사람들이 하나가 돼서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건데요. 비둘기는 좀 단순한 거 같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적힌 벽 앞에서 다 같이 번쩍 뛰어보기도 하고, 서로가 하나 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아이들 모두 동분서주 바빴습니다.

앵란: 북한에 있을 때는 포로수용소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포로수용소에서 북한인민군이, 북한에 있을 때는 고문 받고 때리고 못 먹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생활용품도 챙겨주고, 먹을 것도 다 챙겨줬다는 것도 알게 됐고 포로수용소에서 같은 포로끼리 이기심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고요.

영민: 그걸 몰랐어요. 같이 빨래도 하고, 밥도 먹고, 그런 건 꿈도 안 꿨는데요. 그냥 사람은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차별 없이 같이 행복하게 즐겁게 지낸다는 거. 지금 지내는 시설과 사람만 다를 뿐이지, 같은 마음의 같은 밥을 먹는 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철민: 포로수용소를 가서 느낀 점은 남북한이 전쟁이 일어나서 비극적인 일들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의 평화를 위해서 저희가 많이 노력하고 먼저 남한에 온 사람들이 많이 교육을 받아서 앞으로 통일교육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삶을 이루기 위해 저희가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 마음에 한 가지씩 새로운 생각을 품게 된, 그래서 조금쯤은 더 키가 커져 보이는 한겨레계절학교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걷고, 뛰고, 온 몸으로 부딪쳐 체험하는 역사탐방, 탈북청소년과 함께 한 충렬사와 제승당에서의 하루가 펼쳐집니다.

지금까지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