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망통신 이예진입니다.
중국에서보다 남한에서 더 인기 있는 음식, 자장면! 돼지고기와 양파, 생강 등을 다져 중국된장과 함께 볶아 국수 위에 얹은 요리가 바로 자장면인데요. 전화 한 통이면 배달되는 중국집의 자장면은 남한의 대표적인 외식 음식이기도 합니다. 중국집 종업원에서 중국집 사장으로 변신에 성공한 금정숙씨는 지난 달, 모범 새터민으로 뽑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정신력과 끈기로 외식 사업에 성공하기까지! 금정숙씨의 남한정착기 함께 하시죠.
전화벨 소리.
금정숙 사장: 네 고맙습니다. 이예진: 이 시간에도 배달이 많네요. 손님들이 먹고 싶을 때 시키니까 저희가 맞출 수가 없어요.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오후 네 시쯤, 가게가 한가한 시간에 갔지만, 계속되는 배달주문에 바쁜 정숙씨는 날랜 손놀림으로 음식을 포장합니다. 남한에 정착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중국집으로 성공해 모범상을 받은 이유, 노련한 손놀림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금정숙: 한국에 정착하고 1년 지나서 창업을 한 거예요. 내 나름으로는 어느 누구한테 물어봐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중국집, 힘든 걸 선택했어요. 요리할 줄 아는 기술이 있어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채용해서 하는 일이라서 그런 게 힘들었고요. 중국집을 한 지 3년 됐어요. 2년 동안은 누가 보건 말건 열심히 정신력만 갖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여기에서 성공해서 더 큰 뜻을 이뤄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경찰청에서 모범정착 사례로 초청을 받았어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하는 거래요.
[경찰청은 지난 달, 정숙씨를 포함해 성공적으로 한국에 정착한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자 50여명을 초청해 상을 주고 간담회를 열어 탈북자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금정숙: 제가 경찰청에 도착했는데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저는 영문도 몰랐는데 여기로 오라고 해서 가보니까 그게 인터뷰더라고요. 그 다음날, 신문에 다 실리고 그랬어요. 전 그냥 살아온 그대로 표현하니까 쑥스럽거나 말문이 막히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저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시종 웃는 낯으로 편안하게 대답을 하던 정숙씨. 방송에 상당히 익숙해 보였는데요.]
금정숙: 참 이렇게 열심히 사니까 남한이 북한 세상과 또 다른 것, 자기가 열심히 하면 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몫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배웠어요.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어요. "이젠 됐다, 해봐야겠다." 이런 거죠. 지금 기분으로선 너무 좋죠. 언젠가 어떻게 하면 TV에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먹고 살려고 한 일인데 이번에 TV에 나왔고요. 대한민국 오길 참 잘했다. 아쉬운 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잘 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정숙씨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며 최근까지 각종 TV에서 찾아와 취재열기가 뜨겁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0년이 더욱 보람찼다고 말하는 금정숙씨.]
금정숙:2010년에는 마무리를 너무 잘해서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와서 너무 기분이 좋죠. 그래서 2011년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있었어요. 해보고 싶어도 돈도 없고, 가게, 기계, 인력도 필요한데요.
[2011년의 계획은 벌써 서 있었습니다.]
금정숙: 북한 음식인데요. 우리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는 세련된 음식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국에 첫 발을 디디면서 생각했죠. 3년을 참으면서 얼마나 속 터졌겠어요. 2011년에는 북한 음식과 문화도 많이 알리고 고향이 북한이잖아요. 통일을 먼저 하러 온 사람들 아닌가. 북한의 지리나 성격, 취미, 속사정, 어느 지방에 가면 뭐가 흔하고 좋은지 알잖아요. 그래서 통일이 되면 여기, 선진 국가에서 배운 걸 북한에 가서 많이 알려주고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죠.
[뛰어난 사업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정숙씨는 통일을 앞당기러 온 사람이 바로 탈북자라고 말합니다. 사업으로 성공해 남과 북의 문화적인 경계를 허물뿐 아니라 세계화에 나설 계획도 이미 세워놨습니다.]
금정숙: 2011년도에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홈쇼핑으로 나가서 음식점에서 팔릴 수 있는 음식을 만들려고요. 한국의 김치 같은 것도 세계화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세계화된 음식을 한 번 연구하고 싶어요. 정주영 회장님의 명언이 쓰여 있는 현대수첩을 보면 참 피부로 와 닿아요.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은 소 한 마리 끌고 와서 쌀장사부터 해서 큰 그룹을 일으켰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못해도 남과 북 하나잖아요. 통일이 되면 큰 선물을 하나 고향에 가져가고 싶어요. 그 선물을 마련하려고요. 정말 이런 얘기하면 눈물이 나요.
[고향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다른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성공하면 고향의 가족들을 데려오려고 애쓰지만, 정숙씨는 북한에 연락을 취하다 가족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그래서 그보다 더 큰 계획을 세웠습니다. 빨리 성공해서 큰 선물을 안고 고향에 가는 일. TV에서 물건을 파는 홈쇼핑도, 세계시장도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됐습니다.]
금정숙: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제일 많이 울었어요. 중국에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중국에 5년 있으면서 어느 한국기업에 가서 일했는데 5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천사 같아요.
[아버지의 생사를 알아보기 위해 고향을 떠난 정숙씨는 많은 탈북자들이 그런 것처럼, 중국에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돈 한 푼 못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그저 웃는 정숙씨, 험난한 세상을 사는 정숙씨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요?]
금정숙: 네 감사합니다. 예, 형사님. 그러셨어요. 이따금 전화가 와요.
경상도 말투로 "힘들지? 정숙씨 대단하다. 그 월급을 주면서 어떻게 버티는지" [정숙씨의 남한 정착을 돕는 형사는 종종 이렇게 전화해 안부도 묻고, 도움도 줍니다. 명절이면 작은 선물을 건네는 그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는 정숙씨는 주변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힘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배석훈: 누나 같으신 분이예요. 친구 같기도 하고, 누나 같기도 해서 잘 지내고 있죠. 성격도 낙천적이시고, 명랑하시고요. 똑같이 대했죠. 서울사람처럼 똑같이 행동하시고, 그런 건 의식하지 않았고요. 본인이 그렇게 노력하셨어요. 같이 어울리고. 그런 건 의식이 하나도 안됐죠.
강석철: 저도 중국집 배달을 해왔는데 사장님한테 정신력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진짜 정신력과 끈기를 제 자신이 많이 배우면서 일하고 있고요. 식구처럼 대해주셔서 그 점이 너무 좋아요. 하하하
[배달전문 석훈씨와 석철씨는 정숙씨가 사장님보다는 누나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데요. 주방장 한영길씨 역시 정숙씨가 중국집 사장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한영길: 첫인상이요? 동네 아줌마인 줄 알았어요. 놀러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좀 지내다 보니까 억양이 내려왔다 올라왔다 하더라고요. 그런 말투는 연변 사람들이 그렇거든요. 연변사람인 줄 알았는데 요즘에 와서야 알았어요. 탈북했다니까 깜짝 놀랐죠. 어떻게 여자 몸으로 혼자 왔을까.
[동료들 모두 정숙씨의 성실성과 적극성을 높이 샀습니다.]
한영길: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매사에 철두철미하게 생활하시고, 옛날에 1970, 80년대 사장님들하고 비슷해요. 궁금해서 물어봤거든요. "사장님, 꿈이 뭐예요?" 그랬더니 여자 정주영이래요.
[남한 정착 3년 만에 이미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더 큰 꿈은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처럼 최고의 경영자가 되는 것입니다.]
금정숙: 비결이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제일 중요한 건 정신력이에요. 정신력. 저는 그걸 갖고 살았어요. 내가 여기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남과 똑같이 가서는 안 된다, 남보다 조금 더 차별화된 것, 조금 다른 것을 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요.
[가게를 구하고 집기를 사고, 손에 남은 돈은 300만원, 2700 달러 정도. 그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악착같이 일해 지금은 월 매출 2400만원, 2만 달러 이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금정숙: 원래 북한에서부터 성공을 했어요. 1995년부터 북한사회가 어려워졌잖아요. 그래서 북한의 공급체계에 매달려 살수가 없잖아요. 생존의 방법이죠.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죠.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야 하니까요. 장사? 돈이 있어야 뭘 살 수 있으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 때부터 장사에 뛰어들었는데 남이 하지 않는 걸 개발해서 해보자. 그 때부터 생각했어요. 어느 누가 생각을 못하죠.
[남다른 생각으로 이미 북한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정숙씨는 그러나 그만큼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정숙씨의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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