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타향에서 명절을 쇠는 일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탈북자들은 해마다 설과 추석이 되면 절감하곤 합니다. 그래서 NK 지식인연대에서는 따로따로가 아닌 다 같이 새해를 맞으며 덕담을 나눴는데요. 그 1박 2일의 현장에 희망통신이 다녀왔습니다.
안미옥: 먹지도 못하고 계속 준비하고, 손님 치르고.
김미영(가명): 수고하셨어요. 우리 사모님.
안미옥: 예.
한선희(가명): 어제 와서 드셨으면 정말 감탄하셨을 거예요. 어제 우리 연대가 회식을 했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두 그릇씩 곱빼기로 드셨다니까요.
이예진: 이건 뭐예요?
부침개인가요?
한선희: 오징어무침.
김미영: 북한에선 이렇게 해요. 낙지.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고 하거든요.
이예진: 아, 낙지 무침.
[남한에서 오징어라고 부르는 낙지를 맵게 무쳐 내는 낙지회와 평양식 순대, 갖가지 나물이 신년회의 조촐한 저녁식단입니다. 음식솜씨 좋은 김흥광 지식인연대 대표의 부인 안미옥씨는 어제도, 오늘도 부엌에서 요리만 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모두들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죠. NK 지식인연대에서는 이렇게 2011년을 뜻 깊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용평스키장을 찾았습니다.]
김흥광 대표: 서울에서 240km 오시다 보니 다들 지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얼굴에는 반가움과 그리움이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요. 2011년 음력설을 곧 맞게 됩니다. 희망찬 신묘년을 맞는 우리 회원님들, 건강하시고, 가정마다 만복이 가득하시길 바라면서 파이팅!
일동: 파이팅!
[40여명의 지식인연대 회원들이 함께 모인 신년회에는 남쪽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탈북자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영화 "태풍"을 비롯해 남한의 대표 영화배우 주진모 주연의 "사랑", TV 드라마 "친구" 등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과 함께 조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곽문완 감독도 참석했는데요.]
곽문완: 사실 영화 한 작품도 못한 감독입니다. 오늘 이런 의미 깊은 자리에 대한민국에 온 지 6년이 지났지만, 오늘 이런 자리가 처음입니다. 잃어버린 6년이 아쉽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보면 태어난 곳도 다 다르고 오게 된 가슴 아픈 사연도 다르겠지만, 서로 같은 건 하나 있다고 봐요. 타향살이의 서글픔 하나는 갖고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여기가 타향이긴 하지만, 이런 자리가 있고, 이런 만남의 순간이 있어서 외지 아닌 외지가 여기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렵게 오신 길들, 소망하는 대로 각자 저쪽에서 이루지 못했던 자기가 이루지 못했던 꿈과 소망들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건배는 한국식이 아니고 북한식으로 하겠습니다. 단번에 쭉들 다 내자우!
일동: 하하하
[곽 감독의 새해 덕담과 건배제의로 신년회는 점점 타향살이가 아니라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웃음으로 가득찼습니다.]
이명철(가명): 시간을 겨우 내서 왔습니다. 반가운 분들, 좋은 분들 만나니까 좋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오려고 해요. 2011년을 맞으면서 첫 만남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만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담과 건배사가 끝나고 지식인연대 회원들은 자유롭게 술 한 잔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지식인연대의 신년회에는 가족단위로 참석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이예진: 어떻게 가족이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김선혜: 저희 아들이 그래요. "탈북자라는 말 하지 마세요. 탈북자들 모임 가지 마세요. 뭘 보고 배울 게 있나요?" 그랬어요. 저는 혼자일 때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리더를 잘 만났을 때, 조직이 활성화되고, 그 목소리가 커져서 인재가 발굴되잖아요. 너무 바람직하고 너무 고마워요. 그래서 아이들을 싫다고 해도 데려와요. "우리 사람들을 무시하지 마라. 네 근본을 잊지 마라. 뿌리를 찾기 위해 여기에서 한 몫을 하는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지지해줘야지."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데려왔어요.
[덕담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들에게 꼼꼼하게 소개해주던 김선혜씨는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9년 전 북한을 탈출했는데요. 선혜씨는 남한에서 북한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음력설을 맞는 게 아직은 마음 아파 눈시울을 붉히는 선혜씨.]
김선혜: 슬프죠. 우리 민족의 명절인데, 우리가 아무리 없고, 못 살았어도 전통적으로 지켜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갈 곳도 없고, 오는 사람들도 없잖아요? 그래서 아들한테 제가 미안해하죠. 우리 아들이 그래요. "다 좋은데 외로운 게 싫어."
[여기 모여 신년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같을 겁니다. 앞으로 바라는 일 중의 하나 역시, 고향의 가족들과 함께 설을 쇠는 일이 분명 포함되어 있겠죠? 선혜씨는 올 해, 신묘년에 바라는 일이 무엇일까요?]
김선혜: 아줌마 대열에 합류해야겠다는 것뿐이죠.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대한민국의 아줌마들 멋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제 인생을 위해서 북한을 탈출했고, 제 목표를 위해서 살아왔지만, 앞으로 남. 북간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제가 밑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번에는 영화를 찍으며 배우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새로운 이야기 소재를 찾느라 늘 바쁘기만 할 것 같은 곽문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곽문완: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게 고독과 외로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자리가 있어서 많이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한 편으로는 제 직업이, 글을 쓰면서 감독을 꿈꾸다 보니까 이 사람들의 얘기도 이제부터는 이 시대의 테마로 부상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엄습해 왔어요.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체험하면서 이 사회에 녹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요즘 남한에서는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아 남한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소재를 다룬 영화가 늘고 있는 게 사실인데요. 곽 감독 역시 탈북자의 애환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곽문완: 다른 건 없습니다. 개인적인 소원은 올해 감독으로 입봉을 하고 싶고요. 우리 탈북자들이 마음을 안착시켜서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맨 손으로 와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북한에서도 많이 쓰던 슬로건이 있어요. 특히 여기에 와서 우리 탈북자들에게 이런 슬로건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잃을 건 철새고, 얻을 건 전 세계다. 얻을 일만 남았다.' 잃은 게 너무 많잖아요. 두고 온 게 너무 많잖아요. 버리고 온 게 너무 많거든요. 가장 소중한 걸 두고 왔거든요. 그 이상의 소득도 있게끔 각자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잃을 건 철새고, 얻을 건 전 세계다. 낯선 땅에서 맨 손으로 시작해 통장을 불리고, 가정을 이루며 작은 행복을 일구는 일이 전 세계, 이 세상 전부를 얻는 일 아닐까요?]
김대성 대표: 한국에서 설이면 민족대이동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음력설을 크게 안 쇠요. 양력설을 쇠는데, 지금은 한국문화에 익숙해져서 음력설을 쇠죠. 북한에서도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서 놀고, 북한에서도 아침이면 어른들에게 세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에 와서는 그게 없어졌잖아요. 할 수 있는 건 친구끼리 만나고 북한에서 온 사람들끼리 만나고 그러는 게 전부죠. 그런 부분에서는 기쁘지만, 북한에서 힘들어 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요즘 북한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런 생각하면 마음이 좀 착잡해요. 올해는 좀 더 일을 잘 해서 나도 잘 되고,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빨리 그 생활을 벗어나게끔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한의 탈북자들은 더 열심히 하루를 살아갑니다. 다음 주에는 음력설을 맞아 고향을 그리며 눈물의 위령제를 올린 지식인 연대 회원들과 함께 합니다. 지금까지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