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탈북 권투선수 최현미 3차 방어 성공

지난 30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57.150㎏) 3차 방어전에서 나선 탈북 복서 최현미(왼쪽)가 도전자 아르헨티나 클로디아 로페즈와 주먹을 주고받고 있다. 최현미 판정승.
지난 30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57.150㎏) 3차 방어전에서 나선 탈북 복서 최현미(왼쪽)가 도전자 아르헨티나 클로디아 로페즈와 주먹을 주고받고 있다. 최현미 판정승.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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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외국의 한 저명한 경제학자의 말을 떠오르게 만드는 한 사람.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탈북 권투선수 최현미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스무살,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지만 맹훈련을 하며 고독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각 경기장 위에 서던 날. 다부진 몸, 날카로운 눈매의 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만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희망통신이 그 날의 영광을 전해드립니다.

장내 아나운서: 잠시 후 여자 WBA 페더급 세계 타이틀 매치가 시작되겠습니다.

(함성)

[지난 4월 30일, 수원의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실내체육관 특설 경기장에서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선수의 3차 방어전이 열렸습니다. 상대는 힘이 넘치는 아르헨티나의 노련한 서른한 살, 잠정 챔피언으로 불리는 클라우디아 로페즈. 아직 양 선수가 입장하기 전인데도 경기장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아나운서: 오늘 한국 프로복싱을 빛낸 역대 챔피언들이 많이 참가해주셨습니다. 작은 거인 김태식 관장님을 소개하겠습니다. 한국 최중량급의 대들보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 챔피언을 소개합니다.

[한 세대의 영웅으로 불렸던 장정구, 박종팔, 김태식, 백인철, 문성길, 김광선 등 복싱계를 수놓았던 챔피언들이 함께 응원해준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드디어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아나운서: 양 선수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먼저 도전자 아르헨티나의 로페즈 선수의 입장입니다.

이어서 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가 입장하겠습니다.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

애국가는 가수 홍서범 님의 목소리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홍서범: 대한민국 세계챔피언 최현미 선수의 필승을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가수 홍서범씨가 애국가를 불러줍니다. 이어서 아르헨티나의 국가가 연주되고 대회선언이 발표됩니다.]

지금부터 WBA 세계 복싱협회 여자 페더급 세계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아르헨티나의 로페즈 선수의 경기를 거행함을 선언합니다.

(호각 소리)
(대한민국)

아나운서: 홍 코너, 나이 19세 체중 59.15킬로그램 아마추어 17전 16케이오승 1패 프로 4전3승 1케이오승 1무승부 여자페더급 세계 챔피언 최현미! 청코너, 국적 아르헨티나 나이 30세 신장 164센티미터 몸무게 56킬로그램 18전 14승 3케이오승 4패 여자페더급 잠정 챔피언 클라우디아 안드레아 로페즈!

[멋진 등장과 함께 경기장 안에 올라 선 두 선수의 눈빛 교환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공 울리는 소리)

[두 선수, 처음부터 저돌적인 공격을 주고받습니다. 최현미 선수가 먼저 오른손 공격을 적중시키며 초반 분위기를 주도하는가 싶은 순간, 로페즈의 왼손 공격이 최현미 선수의 복부를 강타하며 현미 선수의 고전이 이어집니다.]

(공 울리는 소리) (아나운서: 라운드 3) [자꾸만 현미 선수가 눈을 뜨기 어렵다는 듯 껌벅입니다. 알고 보니 상대 로페즈 선수가 계속 머리로 현미 선수의 얼굴을 가격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걱정되는 것도 잠시. 5회전이 시작되고 조금씩 힘을 되찾는 현미 선수. 특히 원거리 오른손 공격이 적중하며 상대 공격을 잘 피하고 있습니다. 상대 선수 로페즈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으로 힘을 과시하며 왼손 공격을 늦추지 않습니다.]

(상대팀 소리)

[아르헨티나 감독도 점점 다급해지며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응원과 공격 주문을 연신 외쳐댑니다.]

(공 울리는 소리) (아나운서: 라운드 7) [벌써 경기는 후반으로 치닫고 두 선수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야무지게 다문 입매만은 여전합니다. 더욱 격렬해지고 치열한 몸싸움을 보이며 긴장감을 더해 가는 사이, 관중들의 함성도 높아져 갑니다. 오늘 경기를 주선한 후견인, 윤승호 교수역시 안절부절, 계속 서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많이 밀리고 있는건가요?

윤승호: 저 선수가 만만치 않거든요. 노장이거든요. 백전노장이예요. 최현미 선수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준비를 했거든요. 최현미 선수 비디오는 이미 인터넷에 날아 다니니까. 그런데 저 선수는 정보가 없어요. 암만 뒤져도 없거든. 왼 손인걸 2주일 전에 알았어요. 비디오를 교환하게 되어 있는데 말이죠. 비디오조차도 2주일 전에 알게 됐어요. 그렇지. 그런데 현미 선수가 뒷심이 있으니까 기다려 봐야죠. 만만치 않아요.

이예진: 왜 계속 서서 보세요.

윤승호: 앉을 수가 없지 지금.

[앉아서 경기를 관람할 수 없었던 건 윤승호 교수 뿐이 아니었습니다. 역대 챔피언이었던 장정구씨가 직접 나서서 현미 선수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장정구: 낮춰. 그렇지. 때리고 돌려. 현미 파이팅 라이트 먼저 짧게, 그렇지.

(환호소리)

(공 울리는 소리)

(파이널 라운드)

[마지막 10회전이 시작됐습니다. 여느 경기보다 숨막히는 접전을 펼치는 두 선수. 서로 혼신의 힘을 다해 펀치를 주고 받은 끝에 경기를 마칩니다.]

(경기 후 박수소리)

[그리고 모두들 숨죽여 심판의 판정을 기다립니다.]

(종소리) 아나운서: 이번 경기는 2대 1로 집계되었습니다. 10회전까지 양 선수 성적을 발표하겠습니다. 주심 96대 95 최현미 우세 부심 마르티네스 98대 93 도전자 로페즈 우세 부심 유완수 96대 95 이번 경기의 승자는 스틸 챔피언 최현미

(환호소리)

[힘겨운 승리였지만 당당히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맨 명실상부한 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 선수. 열심히 응원한 관객들 역시 현미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는 박수를 끊임없이 보냅니다. 그리고 저도 힘껏 박수를 쳤습니다.]

이예진: 오늘 경기 어떻게 보셨어요?

관객: 훌륭한 경기를 했는데 역시 상대가 노련한 선수라 최현미 선수가 아직 경륜이 짧으니까 고전을 했지만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애국가를 불러준 가수 홍서범씨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는데요.]

이예진: 아니 오늘 어떻게 애국가까지 부르시게 됐어요?

홍서범: 최현미 선수를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있고요. 또 최현미 선수를 후원하고 있고요.

이예진: 오늘 경기 보신 소감 어떠셨어요?

홍서범: 시작부터 굉장히 만만치 않은 상대다. 힘든 경기가 될 것이란 생각을 했고요. 왼손잡이 복서에 대해 시합준비를 한 게 길지 않아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거 같지만, 일단 투지가 좋고 미래가 밝은 선수라 챔피언 벨트를 오래 지키기 바라겠고 더 날로 성장하는 최현미 선수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던 오늘의 주인공, 최현미 선수를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을 하도 맞어 벌써 부어 올라 있었습니다. 현미 선수에게 오늘 경기 어땠을까요?]

최현미: 일단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상대에 대해 너무 몰랐고 왼손잡이란 사실을 일주일 남겨두고 알아서 상대에 대비해 연습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주먹보다 머리로 맞아서요.

[로페즈 선수가 머리로 얼굴을 계속 치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부어 오른 얼굴이지만, 그래도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최현미: 일단 제 꿈 때문에, 챔피언에 오르고도 하고 있는 게 또 다른 꿈이 생겼기 때문이잖아요. 운동도 어렵고 시합도 힘들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고요. 앞으로 힘든 걸 이겨내고 극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시작이기 때문에 프로복싱으로 챔피언이긴 하지만 사람 나이로는 애기거든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걸음마부터 해야 하고요. 체력적인 부분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보강해야겠죠.

[여자 권투의 한국 챔피언은 모두 7명. 권투가 비인기 종목이라 후원이 없어 방어전을 치르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현미선수, 3차 방어전이 막 끝난 지금도 다음 방어전을 생각합니다.]

최현미: 방어전은 많이 할수록 좋겠지만 지금으론 10회까지 보고 있어요. 일단 게임이 끝났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면서 학교에도 나가야죠.

[운동에 전념하느라 남자친구는 꿈도 못 꾸는 현미 선수. 훈련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하도 소리를 질러 목이 붓는 바람에 병원신세까지 졌습니다. 결국 오늘 3차 방어전도 단지 운이 아니라 그동안 노력의 결과겠죠. 그리고 이제 시작입니다.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현미 선수. 어떤 도전도, 어떤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챔피언이 되길 바랍니다.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