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남한의 최신 가요 중에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애증을 안은 채 서로를 놓지 못하는 연인 사이의 이야기인데요. 요즘 남한과 북한을 보면서 슬쩍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남과 북이 갈라진 지 60년. 시간의 흐름과 서로의 입장에 따라 남과 북의 관계가 선명하게 달라지기도 하고, 내일 당장 어떻게 또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 이런 영화 같은 실제상황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 소재 영화들을 만드는데 한 몫 단단히 한 김규민 영화감독을 희망통신에서 만나봤습니다.
이예진: 감독님,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김규민: 2915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고요. 시나리오는 나왔고 투자 받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새 영화의 투자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중인 김규민 감독을 한 찻집에서 만났습니다.]
이예진: 이제까지 북한 소재의 영화들은 북한의 실상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남한에서 만든 북한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김규민: 다 훌륭하고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잘됐고 못 됐고를 떠나서 사회에 엄청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경의 남쪽도 20만 명이 보면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영화였거든요. 당시 평양을 재현했고, 크로싱은 국경의 남쪽이 잘 사는 평양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면 크로싱은 함경남북도의 실상을 보여준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하고요. 국경의 남쪽이 나왔으니까, 크로싱은 백만에 가까운 관객이 봤고 엄청난 거거든요. 그래서 사회에 순기능을 했다고 보고요. 개인적인 있다면 조금 더 북한의 실상을 리얼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국경의 남쪽에서는 연출부 막내였습니다. 배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큰 역으로 나옵니다. 안내원 역으로 나옵니다. 두만강 넘을 때 데리고 가는 역이죠.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는 2006년 제작된 안판석 감독의 영화입니다. 한반도 분단이라는 벽이 갈라놓은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체제가 아닌,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속내를 다루면서 남한 사람들에게나 탈북자 모두에게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김태균 감독이 만들고, 김규민 감독이 조연출을 맡았던 영화 크로싱은 함경도 탄광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뼈아픈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북한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면서 한국 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요. 북한의 모습을 영화에서 잘 살려낸 장본인이 바로 김규민 감독입니다.]
이예진: 국경의 남쪽에서 주연을 맡았던 차승원씨와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번에 새로 나온 '포화 속으로'라는 영화에서도 차승원씨의 사투리를 직접 가르쳤다고 하던데요.
김규민: 국경의 남쪽부터 인연이 됐죠. 새벽 3시에도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해요. 승원이 형이 워낙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요. 개인적으로 그런 점 때문에 존경하죠. 본인이 사투리가 떠오르지 않으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요. 놀랄 때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싶다 그러면 새벽 3시에 전화해서 내 반응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구나하죠.
이예진: 국경의 남쪽 영화 자체가 감독님의 이야기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김규민: 부분, 부분들은 들어가 있죠. 영화니까, 피아니스트 김철웅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갔죠.
이예진: 크로싱에선 조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북한의 이야기를 좀 더 직접적으로 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김규민: 국경의 남쪽이 허구에 가깝다면, 크로싱은 김태균 감독 자체가 실제 북한에 대해 보여주고 싶어 하셨어요. 특히 수용소 부분은 김 감독이 품을 많이 들였고 저도 직접 갇혀서 생활해 봤으니까요. 어쩌면 국경의 남쪽이 아름다운 점이 많았다면 크로싱은 좀 더 실제의 북한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크로싱할 때, 현실감이 좀 더 떨어졌어요. 저도 몽골사막을 실제로 거쳐서 왔는데 영화 찍으면서 가보니까 이렇게 넓고 광량하고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곳을 거쳐 왔구나 하는 걸, 가서 보고 알았어요. 예를 들어 사막에서 고생할 때, 사람은 살면서 힘든 시간에 대한 걸 망각하려고 한다고 하던데요. 저도 그런 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슬프고 가슴 아팠다면, 크로싱 때는 보기가 싫더라고요. 다시 추억하고 싶지 않고, 내 삶에서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 크로싱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예진: 지금 말씀하신 크로싱 때의 힘든 부분, 감독님의 그런 주관이 새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김규민: 그렇겠죠. 사실 국경의 남쪽을 하고 나선 북한 내용의 영화를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만큼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탈북자들한테도 욕을 많이 먹었거든요. 국경의 남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뭐냐면 그동안 남한에서 우스꽝스럽게만 봤던 북한의 말을 많이 깼다고 생각하는데 탈북자들은 그 중에서도 맘에 안 들어 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북한영활 해서 이런 소릴 들어야하나 했는데 김태균 감독 만나면서 어쩌면 이것이 내 몫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찍었죠. 지금도 영화를 준비할 때 다른 것도 좋아하지만, 공포를 특히 좋아해요. 공포 시나리오를 몇 개 썼었거든요. 그러다 저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이 영화를 준비하게 됐고 공포영화는 시나리오만 잘 쓰고 하면 입봉하기가 더 쉬워지거든요. 그러나 나라는 인간의, 내 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 때문에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두만강을 건너면서 나는 죽었다라고 생각했던 김 감독. 그래서 감독으로 처음 찍는 새 영화, 2915에 대한 의미는 그에게 더 큽니다.]
김규민: 2915는 사랑이야깁니다. 내가 원해서 만난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이 싹트고 그 사랑을 위해 희생을 할 수 도 있는 남자 이야깁니다. 살아보고 싶을 법한 남자의 이야기고,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크게 말을 하면 물론 감춰질 수도 있는 건데 아무리 훌륭한 비밀도 오래 못 간다고 하는데 알면서 감추는 것과 모르면서 감추면서 못 보는 것은 다르거든요. 감춰진 게 아닌데 감춰진 것으로 인식을 하려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다 알지만 굳이 피하려는 이야기. 피하려는 것은 물건이라면 가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잖아요. 그걸 가지기 좋은 물건으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은 거죠. 이예진: 관객은 얼마나 들면 좋을까요? 김규민: 천만이 넘으면 좋죠. 확실하게 장담하는 건 크로싱은 솔직히 개인적으로 국경보단 많이 들 거다, 3,40만명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90만이 훨씬 넘어가더라고요. 그 때 생각했어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하니까 관객들이 보는 거 아닙니까.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 때보다 더 성숙된 것 같고, 인도주의적이 됐고, 3,400만은 충분히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 감독은 영화 만드는 데 자금을 투자할 투자자만 구하면, 새 영화, 2915를 내년 초에 개봉할 계획입니다. 김 감독님,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예진: 북한에도 가족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가끔은 생각나지 않으세요?
[사실 김 감독은 영화 국경의 남쪽처럼, 북한에 어머니와 부인, 아이를 두고 남한에 와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 결혼해서 예쁜 딸과 오붓하게 살고 있습니다.]
김규민: 생각을 피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1년 중에 제일 힘든 날이 하루 있어요. 대부분 추석날은 전날 술을 엄청 마시고 기절하는 게 제일 좋아요. 다음 날 오후 네 시쯤 일어나서 속이 뒤틀려서 일어나는 게 제일 좋은데요. 다른 일들은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되잖아요. 그런 방법이 있는데 두고 온 부모나 딸 같은 경우는 방법이 없어요. 굉장히 답답해요. 먹먹하다고 해야 하나. 가슴을 헤쳐내고 싶은 그럼 마음. 그러다보니 자꾸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더라고요. 솔직히 많이 피합니다. 이제는 여기서도 딸이 태어나니까 위로가 되더라고요. 두고 온 딸한텐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목 메고 있을 수는 없고요.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보상해줘야죠.
[이게 바로 영화 같은 남과 북의 현실이죠. 어쩌면 정말 영화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김 감독은 어려서부터 영화 속의 인물로 살고 싶었나 봅니다.]
이예진: 북한에서도 연극배우를 하셨다고요?
김규민: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 글을 쓰고 했거든요. 한국 와서도 그래서 한양대학교를 들어갔고, 예술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제일 한이 되는 게 북한에서 전국적으로 배우를 모집할 때가 있었거든요. 시험을 보는 거였는데 저희 도에서도 몇 명해서 최종까지 갔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에는 돈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부족해서 떨어졌어요. 능력도 부족했겠지만, 그 당시엔 한이 맺혔어요. 다시는 안한다고 하고 내려왔지만 한국에서도 여자 친구 만날 때 약속했었거든요. 배우를 하면 나랑 못 산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관뒀죠. 약속만 했을 뿐이지만. 선배들도 만나고 여기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오니까 지금 배우준비를 해서 스타가 될 확률은 자신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한 담당교수님과 상담하다가 그런 얘길 했더니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이냐, 배우가 되고 싶은 거냐' 하더라고요. 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북한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랬더니 '그럼 감독이 되는 게 낫지' 라는 얘길 해주셨거든요. 배우는 대본 속의 말만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하나 좋은 게 '네가 만든 영화에 네가 나오는 거 아무도 뭐라고 안 그래' 그랬죠. 그 뒤로 하루에 세 편 정도 영화를 봤고, 많이 다르더라고요. 북한에서 봤던 영화들과 한국에서 본 영화들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북한은 단순하거든요. 사상성만 있으면 되고요. 마지막에 위대한 누군가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끝이거든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오픈구조. 결말이 관객에게 알아서 생각하라는 구조를 보면서 막 화가 났어요.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다 조금씩 깨달아갔죠.
[영화라는 매체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혹은 슬프고 잔인한 얘기를 통한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꼭 결말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최후의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죠. 남한에선 최근 북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에 정통으로 맞서는 것을 피하는 장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김 감독.]
김규민: 세상에는 감추려고 해도 감추지 못하는 게 있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되는 게 있고 사람들이 시간이 될 때까지 안 된다고 생각하면, 통일도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도 영원히 살건 아니잖아요. 언젠간 그 사회도, 탈북자들도 다시 들어간 사람들도 있고, 언젠가는, 지금 북한사회도 많이 변했고, 그래서 북한도 언젠간 통일이 될 텐데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맞이하느냐, 계속 안한다고만 생각을 하다가 맞이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죠.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다가 맞이하는 것이 서로에게, 모든 것에 유리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저희 영화가 촉매제 역할, 가교의 역할이 되기를 바랍니다.
[통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김규민 감독이 만들 새 영화 2915. 빨리 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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