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망통신의 이예진입니다. 탈북자 중에서도 남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탈북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만나고 계신 김춘애 선생이 탈북여성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해서 그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이예진: 지금 하고 계셨던 일이 어떤 거예요?
김춘애: 자동차 핸들 봉제해서 씌우는 거예요. 여기에 완성품을 만들어서 열처리를 해야죠. 시작한 지 일주일 됐나. 아직은 배우는 중이에요. (직원들에게) 사장이 또 깜박했대.
직원들: 말도 안돼.
김춘애: 남한사람들이, 회사 사장이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니까 참 기분 없네요.
[자동차 운전대의 가죽케스(핸들커버) 만드는 업체의 일을 시작하게 된 하나여성회. 가죽으로 된 케스를 나일론 실로 단단하게 꿰매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업체 사장이 일감을 더 가져오기로 했는데 약속을 어겨 직원들 모두 마음이 상했나 봅니다.]
김춘애: 이 사람들이 검사 겸 팀장들이예요. 집에서 부업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거죠. 검사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4대 보험에 가입이 돼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에요. 2,30명 정도 돼요. 8시간 근무제인데 9시부터 2시까지 일하고 2시부터 5시까지는 부업하는 사람들 일 봐 주는거죠. 남한 분들, 탈북자분들도 있고, 실향민도 있어요. 집에서 하는 분들은 애기엄마나 생계비를 타잖아요. 몸이 불편하다든가 하는 사람들이 부업으로 하고 있죠.
이예진: 일이 힘들지 않으신가요? 탈북여성 직원1: 별로 힘든 건 모르겠고 어설퍼서 잘 모르지만 앞으로 희망을 안고 해보면 좋은 일이 많겠죠. 그리고 여기가 지금 북과 남이 같이 모여서 일하잖아요. 그래서 통일은 못됐지만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돼서 통일된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김춘애: 처음엔 힘들어요. 나이가 있으니까. 나부터도 눈이 안보이니까 정신적으로 힘들더라고요. 힘들어도 계속 해보면 손에 익고 그러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도 허리아프지, 눈 아프지, 나일론 실을 당기니까 손도 아프죠. 이예진: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탈북여성 2: 지금은 많이 걸려요. 앞으로는 40분에 한 개씩 하게끔 연습해야죠. 손에 익히면 괜찮을 것 같아요. 깁는 건 문제가 아닌데 예쁘게 다 다듬어져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게 문제죠. 다 잡아 당겨야 하거든요. 팽팽하게. 이게 엄청 힘이 들어요. 손이 막 베어지더라고요.
[작업장에 있던 8명 정도의 직원들은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케스를 하루 세 개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열의만큼은 대단했습니다.]
김춘애: 계속 봉제하고 뜯고 다시 하고 연습을 하는 거죠.
이예진: 솜씨가 좋으신 것 같아요. 원래 솜씨가 좀 있으세요?
김춘애: 우리 북한 사람들이 바느질은 잘해요. 손탁이 세서요. 탈북여성1: 솜씨라기보다는 돈을 벌겠다는 심정으로 하죠.
이예진: 여기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탈북여성1: 7년 됐어요.
이예진: 처음엔 이런 단체를 잘 모르셨을 거 아니에요.
탈북여성1: 처음엔 다른 일을 했는데 이런 여성재단이 있다고 해서 저도 여성이니까 여성재단이라고 해서 호기심을 가져서 들어오게 됐죠.
이예진: 분위기는 어떤 것 같아요?
탈북여성1: 서로 한국문화나 북한문화를 잘 모르니까 서로 일하면서 얘기하고 그러면서 알게 되죠. 북한에선 남존 사상이 많잖아요. 남자가 시키는 대로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여성들은 사회진출도 하고 싶으면 하고, 그런 게 저희랑 다르고, 여기는 사회가 발전했으니까. 예를 들어 날씨가 더운데 밖에 나가면 북한 여자들은 그냥 그렇게 사니까 양산 같은 걸 안 쓰잖아요. 여기에선 꽃양산 하나 들고 다니잖아요. 이예진: 그래서 여기 와서 꽃양산 들고 나가보셨나요? 탈북여성1: 그래서 이제는 남한 분들 따라서 꽃양산 들고 나가려고요.(웃음)
[탈북여성이 4명, 남한 여성이 3명, 그리고 실향민이 1명. 정말 골고루 모여 있죠? 하나여성회에서는 이미 작은 통일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입니다.]
탈북여성2: 북한 사람들이 사투리를 많이 쓰잖아요. 그러면 북한 사람 안 쓴다고들 많이 해요. 그래서 중국에서 왔다고 하기도 했어요. 나이가 드니까 사투리 고치기도 힘든데, 좀 쉽게 일자리를 찾아서 사는 데 지장 없이 돈을 벌었으면 좋겠어요. "북한에서 왔어요." 그러면 "저희는 북한에서 온 사람은 안 쓰는데요." 하더라고요. 그럴 땐 화가 나기도 하고 북한에서 왔다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식당도 힘든 일인데도 북한사람이니까 그러더라고요. 그런 거 없이 북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자본주의의 이면에는 이런 모습도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말로 낯선 일들을 서툴게 하던 탈북자들이 남한사람들에게는 어설프게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편견들이 탈북자들에게 곧잘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 역시 탈북자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곳, 하나여성회의 통일된 사업장에서는 이미 그 문제들이 풀리고 있었습니다.]
남한여성: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우리가 TV에서나 보고 듣다가 이분들의 실제로 북한에서의 삶이나 탈출과정을 들었어요. 우와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로 고생하고 내려온 것 같고 굉장히 마음도 아프고, 어쩌면 결국 이분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씩씩하고 밝고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요. 가까이서 보니까 더 관심이 가고 정이 가는 게 좋은 점인 거 같아요.
이예진: 실제 일하면서 북한 분들에 대해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바뀐 게 있으신가요? 남한여성: 행동으론 옮기진 못했지만 마음으론 관심이 있었어요. 가까이에서 접할 기횐 없었죠. 막상 만나보니 그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살았던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실감했고 그래도 잘 적응해서 사시는 거 같아요. 여긴 삶의 현장이잖아요.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짧은 기간에 될 거 같진 않고 오랜 시간 지나면서 친구가 될 거 같고 우리는 남한의 대표로, 그분들은 북한의 대표로 이해하고 친해지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고, 막상 만나보니까 탈북자들이 꽤 많잖아요. 그분들끼리만 어울려서 남한 분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언어도 잘 안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늘 저희 생각 속에는 통일 뒤도 생각하거든요. 그 때 과연 잘 화합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이 통일되었을 때 남한과 북한을 잇는 어떤 인재로 길러지길 기도해요. 먼저 여기서부터 친해지고 화합이 되면 훨씬 쉽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유일하게 황해도가 고향인 실향민 남성분이 한명 계셨는데요.]
이예진: 어떻게 여기 동참하게 되셨어요?
실향민: 탈북자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생활고를 도와주자 해서 시도했다고 해서 나도 이제 이북실향민이다 보니 생활고의 어려움도 있고 해서 남자가 해야 할 일, 검품하고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유일하게 남자는 저 혼자예요. 마무리 작업하고 차로 수송해서 걷어오고 검품하는 일을 맡아 해요.
이예진: 탈북자들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하시겠어요.
실향민: 상당한 고난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람들과 느끼는 감정이 좀 다르죠. 그 어려움을 뚫고 나온 사람들이니까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이죠. 사회적인 제도차원에서 탈북자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기업이나 정부에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착에 준비가 덜 된 탈북자들을 위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애란 박사와 김춘애 선생이 앞장서 이 같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된건데요.]
이예진: 동포들에게 사회적 기업이 어떤 건지 설명해주세요. 사회적 기업은 55세 이상 취약계층, 장애인들이 사회적 기업의 대상이에요. 서울시에서 취약계층이 일자리가 없잖아요. 그런 취약계층을 위해서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거죠. 우리 북한 사람들도 어려운 사람이니까 사회적 기업이 된 거죠. 자기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지원을 해주는 거죠. 노동부로 가기 전에 성장기간이죠. 1년을 받았어요.
이예진: 얼마나 지원을 받게 되죠? 한 사람당 93만원을 지원해줘요. 11명을 받았는데. 단체마다 다 달라요. 1년간 지원을 받고 실적이 나면 1년을 더 받는 거죠. 실적을 쌓아서 6개월 동안 잘 하면 빨리 노동부 지원을 받는 게 더 좋죠. 그러면 5년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이제 시작이라는 김춘애 선생. 탈북여성들이 취업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방송일도 접고 하나여성회의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감기를 앓을 정도로 몸은 힘들었지만, 여전히 발로 뛰는 일은 자신 있다고 합니다.] 김춘애: 힘든 것도 있어요. 북한에서의 사람과 사업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해야 한다는 명언도 있지만, 남한에 와서, 독재체제에 있다 자본주의에 와서 여기는 자유다 하니까 힘든 점이 많더라고요. 한국 여성들과 아까 봤지만 실향민도 있고 북한 여성도 있잖아요. 서로 합심해서 하면 통일도 멀지 않았거니와 서로 마음이 연결되고 문화적 차이도 넘길 수 있고 남한 사람들과 많이 접촉해야 정착을 잘 할 수 있잖아요. 저도 7년 됐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지금도 시장가서 물건 사는 일도 주춤해요. 화장품도 딸들이 사다주고 있어요. 북한에서 쓰던 말, 물크림, 삐아스. 이런 말들이 여기에선 스킨 로션하니까 말이 주춤해지죠. 그래서 남북한 여성들이 합심해서 일하다보면 언어도 바뀌어 가고 모르는 것도 배워가고 참 좋아요. 저는 우리 사람들한테 그래요. 힘든 일도 합심해서 해야 가볍듯이 11명이 합심하고 단결해야 쉽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하죠. 이예진: 탈북여성들을 위해서 어떻게 키워나가고 싶으신가요? 김춘애: 하나여성회에서 부업하는 분들을 50명을 다 4대 보험에 가입시켜서 노동부 지원금을 받게 하려고 해요. 인천, 부천이나 평택 쪽도 일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데 지금은 서울시 사회적 기업이라 지방 사람들은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6개월 지나서 노동부 지원금을 받게 되면 그 분들을 다 쓰려고요. 이예진: 나중엔 공장도 차릴 수 있겠어요. 김춘애: 하나여성회 하나의 회사가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나여성회가 커갈수록 탈북자에 대한 편견은 점점 더 줄어들겠죠? 언어가 완전히 통하지는 않아도 같이 웃을 수 있는 현실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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