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황지훈-오수정 씨의 ‘운명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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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통신 이예진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 온 탈북 동포들은 대부분 명절이 되면 마음 한켠이 쓸쓸해집니다. 그래서 더 통일이 간절해지는 추석. 오늘 희망통신에서는 가족 수가 더 늘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추석을 맞은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황지훈씨와 그의 아내 오수정씨를 소개합니다. 그들의 운명 같은 사랑과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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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 칠석인 16일 연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대형 하트모양의 조형물과 꽃으로 만든 오작교에서 프러포즈 퍼포먼스를 선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지훈: 집사람은 저를 찾으러 중국에 두만강 넘어 갔다가 연이 안 닿아 4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부인 만날 거라고 생각은 안했는데 중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포기했었죠.

이예진: 중국에 얼마동안 계셨죠?

오수정: 한 2년 반이요.

[30살 황지훈, 24살 오수정. 두 사람은 함경북도 무산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일 때문에 두만강 근처 수정씨 집을 오가던 지훈씨는 어릴 때 봐오던 수정씨를 2년 뒤 다시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됐다고 합니다. 석 달 밖에 사귀진 못했지만 남들과 다른 마음으로 연애했다는 두 사람.]

지훈: 연애 기간은 오래되지 않았는데 거기사람들처럼 갇혀있는 연애가 아니고 자유로운 연애를 했습니다. 몰래몰래 했지만 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죠.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봤죠. 보면서 저희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생각하다 나중에 나는 나만의 연애방식을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개방적인 연애를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 때문에 눈물의 이별을 하며 중국에 가게 된 지훈씨는 두세 달 정도일 줄 알았던 이별의 기간이 한국에 오게 되면서 4년이 되고 맙니다.]

지훈: 집사람 어머니가 제가 나오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어요. 집사람이 의지할 데가 없고, 21살짜리 여동생도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중국에 갔다는 소식 듣고 중국에 찾으러 8번은 갔어요. 그 넓은 중국 땅에서 찾는다는 게 막연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재작년 말쯤부터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집사람이랑 연락하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한테 미리 연락을 해놨죠. 연락되면 꼭 좀 알려달라고요. 하루하루 기다렸는데, 와이프가 한국에 와서 조사받는 기관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죠. 탈북여성이 중국에서의 삶이 대체로 비슷하잖아요. 팔려서 시집가거나 고된 삶을 살잖아요. 나중에 애가 있던 어떻게 되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내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됐는데, 이 사람은 내가 장가가서 살고 있다고 어디서 들었나 봐요. 그래도 다시 운명적으로 만났죠.

[수정씨는 어디에선가 지훈씨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북한에서 돌봐줬던 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할 생각으로 한참 고민한 끝에 어렵게 전화했다고 합니다.]

지훈: 전화가 안와서 하루가 열흘처럼 길어 보이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죠. 그렇게 찾을 때도 안 나타나다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인연이 아닌 운명이구나. 장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제 와이프를 제게 맡기려고 데려다 주셨나보다. 하나원에 마중 갔는데, 4년 전에 헤어질 때 모습 그대로인거예요. 처음 연애할 때처럼 떨리고, 한 편으론 쑥스럽기도 했어요.

[참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결혼을 했고, 예쁜 딸도 얻었죠.]

지훈: 임신되고 결혼을 했죠. 지금은 70일정도 됐는데, 저한테 정말 이런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어요. 지금은 실감이 나는데, 그 때 당시만 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운명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너희는 천생연분이다 그러는데, 저는 비껴갈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껜 죄송하지만, 나올 때 가족사진은 안 가져왔는데, 이 사람 사진은 가져왔거든요. 옛날 속담에도 장가가면 남이 된다고, 가장이 되고 보니 부모님 심정도 이해가 되고, 예전보다 더 신경 쓰려고 해요.

[북한에서 사랑하던 사이도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남한사회에 와서는 곧잘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이 참 커보였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로 얻은 딸 진아는 인형처럼 예뻤는데요. 추석에도 먼저 온 지훈씨의 부모님과 네 누나와 함께 풍성한 가족모임을 한다고 합니다.]

지훈: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가족들이 어디 갔다 왔다고 하면 상처될 것 같은데, 명절이 되면 북한이 남한보다 더 발달돼 있어요. 시골사람들도 여기는 다 같이 모여 노는데, 도시는 많이 사라졌잖아요. 북한에선 명절이 되면 설이나 추석이 되면 진짜 재미있게 모여서 음악회도 하고 친구들 집에도 다니는데, 여기에서 명절을 맞으면 추억이 생각나서 더 힘들고 외롭고 고독한가 봐요. 어떤 친구들은 설이나 추석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도 해요. 가족의 힘이 참 강한 것 같아요. 가족이 없으면 아마 지금 많이 바뀌어 있지 않을까.

예진: 추석에 보름달 보고 소원 빌면 이뤄진다고 하는데 빌고 싶은 소원 있으세요?

지훈: 저희 처제 건강을 빌고 싶고, 꼭 만나기를 빌고 싶어요. 어머니도 좋은 세상 오셨으니까 먼저 간 자식들 몫까지 오래 사시길 바라고, 저희 딸과 지사람 모두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예진: 수정씨도 소원 있을 것 같아요.

수정: 이왕 공부 시작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성공하길 바라고 싶고, 집 식구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고향에 있는 수정씨의 동생에게 두 사람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수정: 이젠 연락도 되니까 마음이 좀 놓이고, 그저 바라는 건 건강해서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요. 추석도 오니까 엄마, 아빠 산소에 가서 일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고, 길 떠날 때 무사히 떠나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지훈: 처제, 삼촌이라 부르던 형부랑 언니가 결혼해서 산다니까 깜짝 놀랐지? 더 놀랄 일들 많으니까 빨리 건강 찾아서 빨리 만나길 바랄게. 장인, 장모님께 맏사위 인사도 전해드리고, 빨리 건강 회복해.

[그동안 쑥스러워 전하지 못했던 사랑과 고마움의 말을 지훈씨가 먼저 전했습니다.]

지훈: 자기야, 내가 예전에도 얘기했는데 음식이 싱겁거나 짜면 간을 맞춰 먹듯이 인생도 서로 맞춰가면서 살면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우리 딸 예쁘게 키워서 나중에 장인, 장모님 뵙는 날까지 열심히 살자. 고마워. 사랑한다.

[그리고 부끄러워하던 수정씨도 한 마디.]

수정: 부모처럼 많이 따라서 어떤 때는 나한테 뭐라 하면 섧기도 했는데, 가끔 내가 투정부리는 걸 애교로 봐줬으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우리 진아랑 아빠랑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사랑해.

[두 사람은 아직 남한생활에 적응중이지만 함께 할 가족이 있어 누구보다 더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통일이 되어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바로 이 두 사람입니다. 내년 추석에는 수정씨의 동생도 꼭 함께 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