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셋넷학교에서 떠나는 베트남 여행. 10박 12일의 대장정이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베트남 여행은 우리 탈북 학생들에게 각각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국내로 오는 탈북자의 약 85%가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태국·미얀마 등을 경유하고 있는데요. 셋넷학교에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메콩강을 통해 북한을 탈출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번 여행이 어쩌면 새로운 추억의 장소가 될 수도 있겠죠. 전쟁과 통일을 겪은 베트남에서 남쪽과 북쪽에서 자란 청년들이 어떤 것들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지 지금부터 함께 하시죠.
공항 소음
이예진: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요?
남윤정: 집이 용산이에요. 4시 반에 일어났어요. 약 사고 그러느라고.
이예진: 콜레라 예방책은 있어요?
남윤정: 길거리 음식은 안 먹고, 물 사먹고 그러려고요.
이예진: 약도 잘 챙겨왔어요?
남윤정: 저 완전히 약국이에요. 종합 감기약, 해열제, 모기 퇴치약, 멀미약, 지사제랑 소화제도 다 챙겼어요.
이예진: 어떤 마음으로 가는 여행이에요?
최금희: 놀러가는 느낌이에요. 그냥 사람 사는 데니까. 그런데 한국 친구들과 여행을 가봤는데 남한 친구들은 꼭 탈이 나더라고요. 한국 애들이 온실에서 살아서 건강하지 않구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구나 느꼈어요. 비상약은 동생 때문에 가져왔어요.
정나래: 짐 반이 약이에요. 사발면에, 고추장은 엄마가 고기랑 볶아서 싸주셨어요.
[모두들 현지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콜레라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음 놓고 음식을 사먹을 수도 없어 고추장에, 라면까지 넉넉히 챙겨왔나 봅니다.]
남윤정: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네 잘 다녀올게요, 건강하게. 네, 다녀오겠습니다.
이예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걱정하시나 봐요. 남윤정: 네, 안 그래도 베트남을 간다고 걱정을 많이 하셔서요. 왜 베트남을 가냐고.
[왜 베트남을 가냐고요? 남과 북이 갈라져 한참이나 전쟁을 치르고, 힘겹게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 우리와는 비록 다른 체제, 사회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어 분명히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통일과 통일의 모습이 더 명확해 질지도 모릅니다.]
전성표 선생님: 베트남에서 한국 돈 못 써요. 환전하는데 있어요. 미국달러로 환전해야 합니다. 오늘 기준으로 1달러가 19000동이예요. 만 동이 640원이예요. 10만동 써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6400원이니까.
[이번 여행은 특히 조별로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돈도 계산하고, 숙소도 정하고, 여행계획도 모두 짜야 하기 때문에 바가지 쓰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이런 특별한 여행, 걱정이 많이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1: 그동안도 데리고 다닌 적 없어요. 어디로 와라죠. 그래서 책임감도 생기고 간혹 늦기도 하지만 문제 생겨본 적 없고, 어떤 순간에도 잘 찾아와요. 그런 생존능력은 선생님보다 나을 거예요. 워낙 많이 떠돌다 왔기 때문에. 대신 안전사고 때문에 그런 것은 숙지를 시키죠.
이예진: 그래도 걱정되는 거 뭐 있으세요?
선생님2: 없어요, 콜레라 때문에 걱정되긴 하는데 알아서 할거에요. 죽지 않는 병이니까. 배탈은 있는데 떠돌다 보면 고생은 하니까 스스로 알아서 챙기는 편이예요. 조마다 알아서 하리라 생각해요. 얼마나 예쁜 작업들을 할 지 기대가 되긴 해요. 선생님2: 여행 전에 준비할 때는 설레고 어떤 새로운 걸 만날 수 있을까 행복하고, 아이들과 같이 가는 거고 탈북 청소년들이랑은 학교에서만 봤는데, 같이 길을 떠나면서 좀 더 가까이에서 교감하고 싶어서 함께 가기로 했어요.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요. 저희가 통일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돼서 애들이 남다른 생각을 가질 것 같아요. 저희랑 또 다르게 자기네는 양 쪽을 다 경험해본 친구들이어서 어떤 노력을 하면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까 생각해볼 시간이 될 수 있을 거 같고, 일상에서 잠깐 생각해봤던 문제를 '포화속으로'라는 영화를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는데, 우리 통일이 진짜 앞당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가끔 아이들하고 저희는 수업이나 일반적일 때는 개인 얘기 안 묻게 되잖아요. 상처일 수 있고, 입을 열기 힘드니까, 수업하다 어떤 순간에 하나둘 말을 할 때 보면 그게 죽을 고비구나 생각이 들어요. 어떤 친구들은 그리운 고향이 얼마나 절실한지도 이 아이들 통해서 알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그 쪽의 기억이 너무 가슴 아프니까 들춰내는 걸 싫어하기도 해요. 베트남이나 라오스를 떠올리기도 싫어하죠. 찰나에, 어떤 선택이 되어지느냐에 따라 죽을 고비, 우리가 생각 못하는 죽을 고비죠. 너무 아찔하고 가슴 아파요. 그런 기억을 안고 사는 우리 친구들을 안 안을 수 없는 거죠. 저보다 대학생 친구들이 마음으로 이 작업을 한다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희야 이런 저런 경험도 했고 반공교육도 받았던 세대인데, 그 여러 가지를 가슴에 안고 있는 이 친구들을 안고 같이 갈 수 있는 젊은이들이 더 훌륭해요.
[이번 여행은 탈북 학생들 뿐 아니라 자원봉사 등을 통해 셋넷학교를 알게 된 남한의 청소년과 대학생들과 한 조가 되어 함께 떠납니다. 편견 없이 이들과 하나가 되어 함께하는 열흘. 저는 벌써 열흘 후가 기대됩니다.]
박상영 선생님: 33명이 움직이려다 보니까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서둘렀는데, 생활방식들이 있어서 어떻게 잘 조화를 만드느냐. 처음부터 긴장입니다. 2사람이 늦고 있는데, 마칠 때까지 조화를 잘 이뤄야죠.
[저까지 포함해 34명의 여행이 막 시작됐습니다. 5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비몽사몽 도착한 베트남 호치민 공항. 뜨겁고 습한 공기가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합니다.]
박상영: 굿모닝 베트남.
아이들: 굿모닝 베트남 우~
이제부터 서울에서 출발할 때 여러분들이 얼떨떨했지만, 지금부터 즐겁고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조끼리 단합이 중요합니다. 여기 베트남에서는 남한 학생도, 탈북 학생도 없어요.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이제는 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이 베트남 땅에 온 겁니다. 셋넷학교 애, 남한 대학생, 이런 구분을 넘어서서 통일된 시대에 다문화시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이 와서 서로 친구가 되고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가져야 한다는 설렘과 상상력을 가지고 이번 여행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벽이나 금긋기나 경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만남과 소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네. 호치민에서는 3박 4일간 일정이 이뤄집니다. 각자 숙소를 정하고, 마지막 날에는 구찌터널을 같이 갑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훼로 이동합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걷고, 그런 게 여행 아니에요? 서울에서 가졌던 습관이나 매였던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나를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하던 짓을 좀 하세요.
아이들: 네
[본격적으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시끄러운 오토바이의 경적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호치민 도시. 많은 외국 문물이 들어와 있는 걸 보면 전혀 사회주의국가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호치민의 부이 비엔 거리는 특히 우리나라의 이태원처럼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숙소를 한번 잡아볼까요?]
선생님들: 행운을 빕니다. 살아 남기를. 여행 시작. 살아서 보자.
학생1: 여기 미니호텔있다. 들어가보자.
학생2: 여기에 잠깐 짐 놓고 갈까.
학생 3: 올라가봐.
학생1: 하루에 얼마예요?
호텔 직원: 오늘은 방이 없어요.
학생2: 4명이면 얼마인데요?
호텔 직원: 40달러요.
[조별로 호텔이 많은 거리를 헤매다 저렴한 가격의 마음에 드는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모인 아이들.]
학생1: 뭐 먹고 싶어?
학생2: 쌀국수요.
학생1: 그럼 포를 찾으세요.
학생3: 여긴 문 닫았어요.
이예진: 쌀국수 좋아했어요?
학생2: 안 먹어봤어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여기랑 한국이랑 조금 다르대요. 향 같은게 다르대요. 다행스러운게 굶진 않을 거 같아요. 오면서 롯데리아를 많이 봤어요.
[자동차, 전자제품, 식품업체 등 한국의 많은 기업 광고를 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든 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첫 끼니부터 한국음식을 찾을 순 없었죠. 30여분을 헤매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쌀국수집을 발견했습니다.]
쌀국수집 주인: 롸우 롸우
학생1: 뭐라고 하는 걸까?
학생2: 아우. 미치겠네.
학생3: 포 거.
[타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정도야 다반사죠. 도전정신으로 시킨 각종 쌀국수와 피자. 처음 먹어본 쌀국수가 입에 맞는지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한 수련씨.]
수련씨: 처음에 중국에 갔을 땐 미국에 가라고, 입양한다고 나를. 그런데 말을 못하는 데 너무 그런 거예요. 중국 애들이 저를 보고 중국어로 뭐라고 하면 나를 욕하나 하고. 이렇게 해서 미국에 가도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미국에 안 간 이유도 있어요. 가장 그런 게 언어인거 같아요. 제가 심양에 있었는데, 너무 큰 시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택시기사한테 전화로 조선족친구를 바꿔줬는데 오던 시장이 아닌 거예요. 전화로 조선족 친구한테 아까 뭐라고 기사한테 했냐고 했더니 막 웃으면서 엉뚱한 데 내려주라고 한 거예요. 장난이라면서요. 나는 너무 놀랐거든요. 어쩔 수 없었어요. 신분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걔랑 싸울 수도 없었어요. 걔는 장난이었는데, 저는 울었죠. 미국 목사님이 자기 집에 입양 가자고 했는데 안 갔어요. 잘한 거 같아요. 안 가길 잘했어요. 그러니까 엄마랑 같이 살죠.
[쌀국수를 먹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온 피자는 된 밀가루 반죽에 서양식 양념을 얹어 나온 게 정통피자는 아니었지만 먹을만 했습니다.]
수련씨: 북한에선 간식 없으면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밀가루 반죽해서 밥 위에 얹어 주는데 밥이 다 되면 꼬장떡이 돼요. 그걸 비닐에 싸가지고 가면 학교에서 애들이 한 입만, 한 입만 하는데, 꼭 그거 같아요. 이 피자는 꼭 그 맛이에요. 밀가루를 반죽해서 익힌 거죠.
이예진: 이름이 꼬장떡이에요?
수련씨: 네. 손으로 꼬장꼬장해서 손으로 조물조물 자국까지 난 떡이라서 그래요.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소화도 시킬 겸 동네 산책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갑니다. 이미 밤은 깊었고, 여행 첫 날이라 긴장했던지 아이들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내일은 조별로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 모두 할 일이 많으니까, 일찍 자야겠죠? 굿모닝 베트남. 그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희망통신, 베트남에서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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