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망통신 이예진입니다.
오늘은 셋넷학교 아이들과 함께 한 통일여행, 굿모닝 베트남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호치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비무장지대, DMZ 지역인 훼로 이동하기 직전, 공항에서 아쉬운 작별을 나눠야 했는데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달라지고 있는 셋넷학교 아이들의 모습, 지금부터 지켜보시죠.
(택시 안)
기사: 호치민에 8백만 명이 사는데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요.
근찬(가명): 호치민에 8백만 명이 산대.
윤정: 모터 바이크? 오토바이를 모터 바이크라고 하네. 3백만 대의 오토바이가 있대.
[택시 기사의 말대로 호치민에는 너무 많은 오토바이와 매연,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렇게 교통은 혼잡하지만, 소박한 사람들이 있는 곳, 바로 호치민입니다.]
(바깥 소음)
근찬: 전쟁영화를 보면 (베트콩들이) 사람을 죽이고 악독하고 그런 모습이어서 돈 가방도 일부러 숨겼는데 지낼수록 그런 면보다 상대적으로 착하고 그런 모습이 많은 것 같아요. 그치 윤정아?
길거리 상인: 30000동.
윤정: 네?
찬우: 안돼요. 3만동이 뭐야.
윤정: 30000동이래.
찬우: 엄청 비싼 거예요.
상인: 오케이 1달러.
윤정: 너무 비싸요.
[관광객에겐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는 상인들. 호기심에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사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콜레라 때문에 그러지도 못합니다.]
(전쟁기념관)
윤정:(비명 지르며) 안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어. 여기 호랑이를 잡아 놨던 건데 여기에 사람을 가둬놨대.
이예진: 우리나라 전쟁기념관 가봤어요?
윤정: 네. 그런데 여기와 사뭇 달라요. 거기에선 어려서 가서 그랬는지 몰라도 전쟁에 대해 실감을 못했는데 여기선 되게 그러네요. 잔인한 것 같아요. 와보길 잘했어요. 그전엔 전쟁하면 폭탄 떨어지고 그냥 그 당시에 살지 않으면 되는구나했는데 여기 와보니까 그 후대까지 계속 피해를 입고 너무 잔인하니까 확 와 닿는 것 같아요. 이거는 우리나라가 불 지른 것에 대한 1달러야.
[전쟁과 관련한 참혹한 사진들로 가득한 전쟁유물 기념관. 윤정씨가 전쟁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모금함에 1달러를 보탭니다.]
근찬: 이제 동코이 거리로 가야죠.
윤정: 가는 건가요? 동코이 거리는 날치기 조심해야 한 대요.
[전쟁기념관에서의 무거워진 마음은 나중에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선 식사를 하러 사이공강이 보이는 번화한 거리, 동코이로 향했습니다.]
찬우: 번개 치는데.
수진: 빗방울 떨어지긴 한다.
예진: 번개 맞아? 우리의 연인들은 어디로 갔어요? 지금 7시 50분.
근찬: 8시 반에 볼까요?
윤정: 그런데 저게 번개예요? 자꾸만 번개 같은 거 쳐.
근찬: 비가 올 수도 있으니까 비가 오게 되면 8시 15분. 비가 오면 바로 갈게요.
윤정: 요 앞에서 보는 거죠. 비가 막 오면 이야.
예진: 지금부터 뭐 할 거예요?
근찬: 우리요? 뽀뽀할거예요.
[물론 농담입니다. 어쨌거나 아쉽게도 거짓말처럼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져서 두 사람만을 위한 시간을 준지 1분 만에 우리는 다시 만나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박상영 선생님: 각 조별로 따로 숙소도 잡고 먹는 거 일정, 다 달라서 궁금해요. 지금 한번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다음 날, 베트남전쟁 당시 구찌지역 방어를 위해 베트남군이 만든 터널인 구찌터널을 가기 위해 이틀 만에 만난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선생님과 셋넷학교 친구들, 각자 며칠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금희: 저희 조는 통일궁도 가고, 호치민 박물관도 가고, 어제 그제는 베트남 현지인 초대를 받아서 갔었어요. 베트남 친구 시댁인데 갔었어요. 너무 고맙게도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고, 음식을 돼지처럼 먹었거든요.
[비라는 이름의 베트남 친구는 한국 경희대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금희씨가 속한 '장마당 길 따라' 조는 여름 방학을 맞아 집에 온 비를 만나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현지: 말은 하나도 안 통하는 데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베트남 할아버지: 드세요.
일동: 잘 먹겠습니다.
성희(가명): 장난 아니다. 진짜 맛있어.
나래: 맛있다. 할아버지는 통일 됐을 때 느낌이 어땠대요.
할아버지: 통일은 꼭 되어야 한다.
금희: 미군에 대한 원망이 없나 했더니 우리는 지금 통일됐다.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잖아요. 북한에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냐. 그런 마음을 떠나서 어찌 됐건 통일이 되어야 한다. 놀라웠던 게 이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구찌터널 안내원의 노래 소리)
학생 1:살아서 나오기를.
학생 2: 울지 마.
예진: 괜찮아요?
학생 3: 안되겠다.
[그리고 우리는 구찌터널에 도착해 직접 땅굴 체험을 해봤습니다. 구찌터널의 길이는 250km, 깊이는 지하 8m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찌터널의 통로는 세로 약 80cm 가로 50cm로 비좁아 이동하기에 상당히 불편하지만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들에게는 전쟁 당시 몸을 숨기고 게릴라전을 펼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합니다.]
학생 1: 힘들어.
학생 2: 여기로 나가면 안 돼?
학생 3: 천천히, 천천히.
학생 4: 어딘지 모르겠어. 아직 멀었어?
[5분여의 땅굴체험을 마쳤습니다만,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시간이 삼십분은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박상영 선생님: 덫이나 이런 게 동물을 잡기 위한 거잖아. 짐승들이 되가는 거지.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 짐승으로 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다는 거지.
[전쟁의 참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구찌터널을 나와 비무장지대 훼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첫 날 장시간 비행에 속이 좋지 않았던 수련씨, 오늘은 기분이 한층 나아 보였는데요.]
수련: 제가 북한에서 그랬어요. 이 나라는 못 살 나라라고.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세계는 무궁무진하게 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비행기도 많이 탄대. 우리는 비행기는 죽기 전에 탈까 말까인데.
예진: 그럼 친구들이 뭐래요?
수련: 이상한 나라에서 왔다고, 그런 얘기를 왜 막 하냐고. 고난의 행군 때 집집마다 한 명씩 없어지는데,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잡혀오는 거죠. 자기가 외국서 살던 얘기를 하는 거죠. 여기서는 못 살겠다. 여기서 짜인 생활을 하다 간섭 없이 밖에서 살게 되면 가고 싶고, 잡히면 또 가고. 그런 게 입을 타죠. 2000년도에는 중국에 간 사람들이 돈을 보내주니까 90년대에는 골동장사가 유행이었어요. 2000년도에는 제 2의 골동이라고 해서 새로운 말이 나오는 거예요. 한국에 간 사람들이 그걸 제 2의 골동이라고 하는 거예요. 돈을 계속 보내주니까 부러워하는 거죠.
[수련씨는 자유를 찾아 어린 나이에 먼 길을 떠났습니다.]
수련: 도시에 갈 때는 치마를 입어라. 시장 갈 때는 김일성 초상화를 안 달면 못 가고, 어이가 없었어요. 지옥 같았어요. 다른 나라 영상물을 봤으니까 이게 틀렸다는 것을 아니까 살기 싫어지고 왜 여기에서 태어났을까.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게 3가지래요. 부모, 나라, 명을 선택할 수 없다는데, 사춘기 때 너무 불행했어요. 계속 집을 나가고 싶고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 16살 때 그런 것들로만 가득 찼어요. 하루아침에 집을 혼자 나왔어요. 편지도 없이 , 어느 날 갑자기. 나중에 엄마를 데려왔거든요. 엄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고. 4개월 만에 철이 왕창 들었어요.
[수련씨의 얘기에 쏙 빠져 있던 사이, 벌써 버스는 호치민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근찬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근찬씨의 연인, 윤정씨를 만나 속마음을 들어봤는데요.]
윤정: 사귄 지 100일, 200일은 잘 안 챙기는 데 오빠를 만나고 하루하루가 매일매일이 많이 좋아졌거든요. 안정감도 생기고. 고마운 게 많으니까 챙기고 있어요. 그냥 잘해준 게 이백일 선물인 거 같아요. 저는 어려서 결혼은 심각하게 생각 안하는데 오빠는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죠.
예진: 어른들은 꺼려하실 수도 있잖아요.
윤정: 저희 엄마는 오빠 선생님이니까 우리 관계를 아는데, 없지 않아 있으시겠죠. 일단, 저희 엄마 아빠는 크게 반대하진 않을 거예요. 사람이 좋으면, 제 생각을 존중해준다고 하니까.
[그리고, 근찬씨도 따로 만나 만난 지 200일이 되는 날의 계획을 들어봤죠.]
근찬: 제가 이벤트(깜짝 선물)에 약한 남자에요. 내면의 교류를 중시하는 사람이거든요. 더 중요한 건 서로 심적으로 느끼는 걸 중시하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여자 친구가 정성스럽게 많이 준비해서 여자 친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 지 글로 담아서 주면 좋지 않을까. 오붓하게 와인도 한 잔 하려고요. 멋있잖아요. (웃음)
[이번 여행을 이 연인과 함께 하면서 참 많이 부러웠습니다. 둘이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해줄 줄 아는 마음이 참 예뻤거든요. 그리고 셋넷학교 아이들 모두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여행에서 느낀 우리의 통일에 대해 이제는 생각이 깊어진 것 같았습니다.]
윤정: 안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전쟁 일어나나요? 다들 그랬어요. 막연하게 전쟁이 일어나겠어? 하면서 전쟁 나면 도망가야지 했는데 전쟁이 나도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피난가야 되고 그런 생각만 했는데 와서 보니까 되게 무섭더라고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찬: 서로를 이해하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살았으니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배경을 이해한다면 평화적으로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피해자나 당사자나 아프긴 마찬가지니까. 아픔이 너무 아프고 아프니까요.
예진: 베트남으로 오셨다면서요. 남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철민: 그냥 처음 온 것 같았어요. 그 때는 정신이 없었어요. 둘러보는 게 아니라서. 놀러 온 게 아니니까. 지금은 놀러 와서 그냥 재미있어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 와 본건 확실한데.
복란: 예전에는 소문이 5년 후, 10년 후면 통일된다 했는데 안 믿고요. 제가 50세쯤 되지 않을까. 조급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서울에서 광주로 여행 가듯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점차 통일이 되지 않을까요?
금희: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전쟁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 비해 베트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통일한 사람들로서 부러웠고, 월남전 참가했던 할아버지한테 물었더니 우리는 통일을 했다. 통일 하나로 모든 걸 얻으신 거예요. 우리를 침략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다.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안 될 것 같아요. 이유가 우리가 아직 통일을 안 해서, 우리가 아픈데 누구를 포용하는 게 안 되는구나.
예진: 우리가 통일을 위해 뭘 해야 할까요?
금희: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베트남 친구 집에 갔을 때 할아버지는 북쪽 사람이고, 할머니는 남쪽 사람이에요. 저도 그런 걸 느꼈어요. 한국에 와서 느낀 괴리감. 그래서 남한 친구들과 선을 그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차이는 있지만 사는데 문제는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한민족이라는 것으로 하나라고 할 필요도 없고, 다르면 다른 걸 알아가고, 알아야 뭘 할 수 있잖아요.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어야 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일단 알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축구 보면서 운 게 아, 왜 울었나를 생각해보니까 불쌍해서 그렇구나. 우리가 통일돼서 축구를 했으면 이겼을 때 얼마나 좋아하고, 졌으면 위로해줄 수 있잖아요. 이념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게 너무 슬픈 거예요. 북한이 졌을 때, 남한 친구들도 저한테 위로해주더라고요. 처음엔 가식인 줄 알았는데 여행 와서 보니까 지금은 경계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지금은 하나가 됐더라고요. 나도 탈북해서 힘들었지만, 축복받은 삶을 사는구나. 그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래서 이 여행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베트남은 비록 우리와 다른 체제로 통일이 됐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충분히 배운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떠난 남과 북의 청소년들은 이미 완전한 통일을 이루고 있었죠. 통일로 가는 여행,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
<특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