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에서 강연한 탈북 청년 조셉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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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모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인권의 개념은 시대, 나라, 사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인권의 소중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많이 사용된다고 해도 삶에서 인권이 바로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이룩되려면 말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인권, 인권, 인권'은 인권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각처의 인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 탈북 청년이 세계적인 지식회의에서 최근 강연한 내용을 들여다봅니다.

(빌 클린턴) 지금의 세계와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세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제가 평생 관심을 가졌던 빈곤 완화, 질병 퇴치, 기후변화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접근하려고 고민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지난 2007년 TED에서 전 세계, 특히 아프리카 르완다의 보건 위생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TED는 기술, 오락, 디자인의 줄임말을 가진 미국의 비영리단체가 세계적인 주요 지식인을 초대해 지성을 경연, 시연하는 행사를 말합니다.

TED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생각을 널리 알린다'는 목표 아래, 매년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는데요, 초대되는 강연자는 클린턴 전 대통령, 세계적인 정보기술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 각 분야의 저명인사와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천재들의 유엔'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런 세계적인 강연회에 최근 북한 꽃제비 출신의 탈북 청년이 탈북 고아에서 미국의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전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올해 23살의 조셉 김으로, 현재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김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입니다. 남매의 막내였던 김 씨는 지난 1994년 대기근 당시 4살의 나이에 누나와 새벽부터 땔감을 찾아 나서야 했고, 자정이 돼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셉 김) 굶주림은 굴욕이고 절망입니다. 굶주린 사람은 정치나 자유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10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대기근 때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2003년 13살 때는 저의 아버지 역시 굶주림으로 사망했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는 도망쳤습니다. 하나 뿐인 누나도 중국으로 돈과 음식을 구해서 돌아오겠다면서 집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어머니와 누나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순식간에 고아가 된 김 씨는 매일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으러 다녔고, 하루에 16시간씩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사살이나 강제 북송될 것이 두려워 탈북을 결심하지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이런 김 씨를 살린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조셉 김) 희망이 저를 살아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자신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야 한다'고 되뇌었습니다. 그렇게 3년 넘게 누나를 기다리다 마침내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면 북한에서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중국 국경을 넘은 것은 2006년 2월. 김 씨는 몇 달 후 기적처럼 탈북자들을 위해 비밀 보호소를 운영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곳에서 수년 만에 처음으로 정기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한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조셉 김) 하루는 집에 와보니, 수양어머니가 저녁 식사로 닭날개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하나 더 먹고 싶었지만, 남은 게 얼마 없는 것을 보고 그만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수양아버지가 자기 것을 제 접시에 옮겨줬습니다. 너무 기뻐 수양아버지를 보니,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제 친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친아버지는 자신도 굶주리면서도, 저와 나눠먹곤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 저는 목이 메고 말았습니다.

김 씨는 친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열심히 공부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김 씨는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성적은 계속 바닥을 쳤고 초등교육만 간신히 받았을 정도입니다. 미국에 왔을 때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데다, 나이에 맞추어 간 미국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기는 어렵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김 씨는 고등학교 첫 학기에 우등상을 탔고, 지금은 국제 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습니다.

(조셉 김) 저의 수양아버지는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려고 의도했던 게 아닙니다. 단지 닭날개 하나를 나누는 일을 포함한 아주 작은 친절로 타인의 삶을 바꾸었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작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준다면, 희망을 품고 있는 수천 명의 북한 아동과 청년이 살아남게 될 겁니다.

한 주간 들어온 인권 관련 소식입니다.

-- 지난 1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의 인권탄압을 입증할 수 있는 정보를 상당수 입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인권조사위원회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많은 증인과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우리는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게 희망의 목소리를 주기 위해 구성됐다"며 "특별히 현재 상황이 북한의 여성, 어린이, 취약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최근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자 김은철 씨와 수용소 경비병 출신 탈북자 안명철 씨의 증언을 들었으며 인권 전문가들로부터 북한의 인권탄압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우리는 유엔 인권이사회로부터 북한 주민에게 희망과 밝은 전망을 주기 위해서 분명한 위임을 받았다"며 다음 달 북한 방문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미얀마 현 정부 출범 이후 6건의 종교 폭동과 시위 사태로 256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미얀마 정부는 2011년 3월 이후 발생한 4건의 종교폭력과 2건의 시위로 모두 256명이 사망했다고 최근 관영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당국은 이로 인해 1천500명을 기소했으며, 이 가운데 541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여러 인권단체는 미얀마의 사법제도가 주류인 불교도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며, 종교폭력의 희생자들이 주로 이슬람교도임에도 이슬람교도가 사법처리를 받는 사례가 잦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 인권, 인권'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