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모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인권의 개념은 시대, 나라, 사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인권의 소중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많이 사용된다고 해도 삶에서 인권이 바로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이룩되려면 말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인권, 인권, 인권'은 인권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각처의 인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최근 한국에서 열린 국제펜(PEN)대회를 들여다봅니다.
'문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 펜대회가 6일간의 장정을 마치고 15일 폐막했습니다. 펜은 시인, 극작가, 수필가, 편집자, 소설가 등이 참여하는 세계 유일의 문학 단체입니다. 1921년 영국에서 시작된 이 단체의 목표는 문학의 증진, 표현의 자유 수호, 범세계적 작가 공동체 구성 등에 두고 있는데요, 유엔인권위원회와 유네스코, 즉 국제연합 교육, 과학, 문화기구의 자문기구이기도 합니다.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한 이번 대회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과 한국의 시인 고은, 소설가 이문열 등 한국과 전 세계에서 온 문인 7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당초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무크도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해 방한하지 못했습니다.
국제 펜대회는 해마다 열리지만, 한국은 이번이 세 번째, 지난 1988년 서울대회 이후 24년만입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탈북 문인 29명으로 구성된 '망명북한작가펜센터'가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국제펜에는 현재 143개가 가입돼 있으며 탈북 작가들의 가입으로 144개 센터로 늘어났습니다. 이번 망명북한작가펜센터의 가입을 발의하고 지원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의 이길원 이사장의 말입니다.
(이길원) 국제펜은 문학 활동을 하기 보다는 문학을 증진하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사실은 범국가적인 문학 공동체를 만드는데 있습니다. 북한은 기본적인 인권은 물론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투옥되고 살해되는지 조차 알 수도 없는 나라입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해서 모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했으면 그게 우리 바람입니다.
망명북한작가펜센터의 장해성 대표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쓰고 싶은 걸 쓰는 자신으로선 국제펜가입이 감개무량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장해성 대표는 조선중앙TV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다 1996년 탈북했습니다.
(장해성) (가입이 결정된) 그 순간의 감개무량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그 어느 작가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쓸 수 없잖습니까? 그런데 남한에 온 북한 출신 작가들은, 비록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됐고, 이 사실을 북한에 있는 우리 친구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싶습니다. 바라기는 북한에서도 하루속히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한편, 아프리카 작가 가운데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는 총회 기조연설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문학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월레 소잉카) 글은 우리의 근본 시각을 구성하고, 세계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소잉카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국가의 힘으로 저지르는 테러든, 종교의 힘으로 저지르는 테러든 피해를 입는 국민에는 작가도 포함된다”면서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무기인 언어를 이용해 소수의 교만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잉카는 1960년대 후반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2년간 투옥된 뒤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정권교체로 1999년 귀국을 허락받았습니다.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출신의 르 클레지오는 기조강연에서 자연스런 의사소통이 문학의 기초라고 강조했습니다.
(르 클레지오) 의사소통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인간들의 언어는 법칙이나 본능적인 행위와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부입니다.
르 클레지오는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신중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검열을 떠올리게 되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또 “국제펜의 장점은 전 세계를 무대로 작가와 독자를 연계해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자유를 박탈당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가가 있다면 행동을 취하는 게 국제적 단체가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국제펜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존 롤스톤 소울 국제펜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사람들이 우리의 표현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독립성 때문”이라며 “우리는 바로 그 독립성에서 가장 지독한 독재와 복잡한 상황에 맞설 힘을 늘 얻어냈고 앞으로도 계속 얻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주간 들어온 인권 관련 소식입니다.
-- 북한인권운동 관련 활동으로 중국에서 구금됐다가 풀려난 한국인 김영환 씨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특별강연을 했습니다. 김 씨는 연세대학교에서 “1980년대에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것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며 “지금은 북한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에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연회에는 한국인과 외국인 대학생 200여명이 모였습니다. 한국 운동권에 처음 주체사상을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김 씨는 1982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 곧바로 운동권 지하단체에 가입했고, 자연스럽게 주체사상에 빠져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북한의 초청을 받아 1991년 5월 2주 동안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두 차례 면담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는 그러나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꽉 막힌 분위기와 정치적·사회적 불평등을 목격하고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간부들과 북한 주민들의 불평등한 관계를 보고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도 했습니다. 김 씨는 이 일을 계기로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지난 3월부터 4개월 동안 중국에서 북한인권운동 관련 활동을 하다 중국 국가안전부에 구금됐으며, 구금 당시 고문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라크다르 브라히미 신임 시리아 담당 유엔-아랍연맹 공동 특사는 시리아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브라히미 특사는 13일 다마스쿠스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시리아 형제들을 만나 위기 해결 방안을 논의하러 왔다"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브라히미 특사는 "모두 유혈사태 종식과 안정 회복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코피 아난 전 특사의 뒤를 이어 이달 초 임기를 시작한 브라히미는 지난 1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첫 공식 중동방문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브라히미 특사가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지만 유엔 사무총장 출신의 아난 전 특사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브라히미 특사 본인도 이번 임무에 "두렵다", "사태 해결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등 시리아 사태 중재와 해결에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한편 시리아 정부군의 제트기와 탱크는 이날도 북부 알레포에서 미단 구역으로 진격하는 반군에 공격을 퍼부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습니다. 알레포 타리크 알밥 구역에서는 헬기 공격으로 최소 11명이 숨졌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가 밝혔습니다.
‘인권, 인권, 인권’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