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모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인권의 개념은 시대, 나라, 사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인권의 소중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많이 사용된다고 해도 삶에서 인권이 바로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이룩되려면 말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인권, 인권, 인권'은 인권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각처의 인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 소식을 살펴봅니다.
독재자로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비견돼온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끝내 후세인처럼 비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북한과 함께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으로 지목되던 리비아. 리비아도 북한처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심하게 박해받아 왔습니다. 그 인권 유린의 중심에 리비아의 국가원수였던 카다피가 있었는데요, 카다피는 오랫동안 서방세계에 '테러리스트 지원대장'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카다피의 최후는 후세인의 구차했던 마지막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마무드 지브릴 총리의 말입니다.
마무드 지브릴
: 기다리던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카다피는 죽었습니다.
카다피가 과도정부군에 의해 발각된 곳은 고향 시르테 인근으로,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카다피는 체포 당시 황금으로 만든 권총을 든 채 카키색 군복과 터번 차림으로 두 다리에 총을 맞아 심하게 다친 상태였습니다.
주요외신은 카다피가 숨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콘크리트로 된 하수구의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과도정부군의 한 젊은 군인은 영국의 BBC방송과 한 회견에서 "카다피가 숨어있던 구멍을 발견했는데 카다피가 총을 쏘지 말라고 호소했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후세인은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숨졌습니다.
시민군
: 저쪽에서 카다피를 생포했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 총으로 쐈습니다.
카다피가 종적을 감춘 후 과도정부군에 의해 영원히 제거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개월가량에 불과했습니다. 카다피가 수도인 트리폴리를 과도정부군에 내주고 종적을 감출 때만 해도 후세인을 검거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과도정부군이 담당해야 하는 지역이 이라크의 4배 수준이고 미국이 후세인 체포를 위해 막강한 정보력을 활용했던 것과 달리 충분한 정보 조직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후세인의 친인척들이 외국으로 피신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카다피도 이미 외국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피 중이던 카다피는 측근들이 여러 차례 해외 망명을 건의했음에도 이를 일축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카다피의 최측근인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은 22일 미국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스에 카다피의 말년을 전했는데요. 카다피가 지난 8월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에 의해 함락된 직후 4남 무타심, 수행원 10여명과 함께 차량으로 정부군 거점지역인 타루나와 바니왈리드를 거쳐 시르테에 도착했다는 겁니다.
이브라힘 사령관은 카다피가 "나의 용기가 나를 쓰러뜨렸다"며 후회하는 기색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 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면서 거부했다는 겁니다. 도피생활이 길어지자 지루해진 카다피는 틈틈이 코란을 읽었다는데요. 위성전화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음성을 시리아 방송사에 보내기도 했는데 이 위성통화가 자신의 위치를 서방에 노출시키는 결정적인 실착이 됐습니다.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회원국 등 국제사회는 독재자 카다피의 사망을 한 목소리로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 1988년 팬암 여객기 폭파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카다피의 손에 희생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면서 리비아의 민주적 미래가 밝아졌다고 밝혔습니다. 알렝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리비아에서 40년 넘게 계속된 독재를 종식시키는 과정에서 이바지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연합도 카다피의 사망으로 리비아 국민이 오랫동안 겪은 탄압과 폭정의 시대가 끝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리비아가 역사적 전환기에 놓였다면서 리비아 국민이 단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카다피와 동갑내기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카다피의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 주간 들어온 인권 관련 소식입니다.
-- 한국의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군현 의원은 최근 외교·안보·통일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신숙자 모녀 송환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습니다. 신 씨는 1960년대 독일에 파견된 한국 간호사 출신으로 남편 오길남 씨와 두 딸을 포함해 온 가족이 북한에 들어갔다가, 남편 오 씨만 북한을 탈출하면서, 비극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의원은 “신숙자씨 모녀 송환문제는 자진 월북도 아니고, 북한의 꼬임에 속아 넘어가 북한 어딘가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르는, 한 개인, 한 가족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며 범정부 차원의 ‘신숙자씨 모녀 송환을 위한 대책 기구’설치를 촉구했습니다. 특히 이 의원은 “신 씨 모녀가 평양 인근 원화리 통제구역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생사확인이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느냐”며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조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김황식 국무총리는 “신숙자 모녀뿐만 아니라 강제 납북자의 송환이나 생사 확인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신숙자씨 모녀에 대해 국민과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신숙자 모녀 및 납북자 송환을 위해 범정부 차원 기구설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 시리아 정부군과 반정부 무장 세력이 충돌해 정부군 11명을 포함해 41명이 숨지는 등 시리아 사태가 전면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시리아 인권 관측소'는 시리아 정부군이 17일 탱크까지 동원해 반정부 세력의 거점도시인 홈스를 무자비하게 공격해, 민간인 2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140㎞ 떨어진 홈스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13세 소년을 포함해 민간인 3명이 정부군에 희생됐다고 이 인권단체는 덧붙였습니다. 시리아 관측통들은 시리아 정부군이 민주화 요구 세력에 대한 탄압을 계속하면 할수록 이에 맞서 총을 드는 반정부 세력들이 늘어날 것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지난주 시리아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 탄압으로 어린이 187명을 포함해 3천명 이상이 희생됐다면서 시리아가 '전면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7월 휘하 병력과 함께 탈영해 '자유 시리아군'을 조직한 공군 대령 출신의 리아드 알 아사드 씨는 이달 초 터키의 한 영자지와 회견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킬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반정부 세력에 무기를 지원해줄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인권, 인권, 인권’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