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모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인권의 개념은 시대, 나라, 사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인권의 소중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많이 사용된다고 해도 삶에서 인권이 바로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이룩되려면 말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인권, 인권, 인권'은 인권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각처의 인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 인권 관련 국제모의재판을 들여다봅니다.
(질문) 공개재판이 시작되고, 그러니까 재판장에 들어가고 실질적으로 처형이 되기까지 총 얼마나 걸립니까?
(대답)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 탈북자가 최근 미국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열린 모의재판에서 증언하는 장면입니다. 이 탈북자는 평안남도 북창 18호 관리소를 담당했습니다.
이번 모의재판은 세계변호사협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정책연구기관, 북한인권위원회와 북한자유연합 등 시민단체 등 모두 10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했습니다.
모의재판에 참석한 탈북자들은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외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인권탄압이 일상화돼 있으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나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마음대로 처형이 자행돼왔고, 또 자행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먼저,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북한 정권에서 운영하는 참혹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재판부와 변호인단에게 전했습니다. 강 대표는 지난 1992년에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강철환) 저는 1977년 8월 4일 제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숙청되면서 저희 가족 5명과 함께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한 북한의 15호 관리소에 9년 8개월간 수감생활을 했었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60대 중반, 아버지가 40대 중반, 삼촌이 40대 초반, 저희 여동생이 저보다 2살 아래인 7살이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백화점망을 총괄하는 부서장으로 고위간부로 지냈는데, 체포 당시 재판이나 절차를 밟고 끌려간 게 아니라, 아무런 이유 없이 잡혀갔습니다. 나중에 보위부가 저희 가족에게 내민 서류를 보니, '민족반역자'로만 되있었습니다.
강 대표는 변호인단에 참여한 스티븐 케이 전 국제사법재판소 검사가 요덕수용소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자 "원시시대 같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시체가 보이는 끔찍한 광경들"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간 분쟁을 국제법을 적용해 해결하는 유엔 산하의 사법기관입니다.
(질문) 수용소에 있을 때 공개처형을 몇 번이나 봤습니까?
(강철환) 하도 많이 봐서,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한 수십 번은 봤습니다. 수용소 공개처형 방식은 총살형과 교수형입니다. 총살형의 경우, 죄수를 묶어놓고 눈, 가슴을 밧줄로 묶은 뒤, 군인 3명이 나와 밧줄 묶은 자리를 쏩니다. 머리 3발, 가슴 3발, 다리 세발입니다. 그러면 끈이 끊어지면서 시체가 떨어집니다. 그 후, 앞에 놓인 가마니에 말아서 어디로 치웁니다. 지난 85년경에는 교수형을 목격했습니다. 수용소가 생긴 뒤 처음으로 도주했는데, 이들을 잡느라고 3개월간 온 수용소가 난리 났습니다. 결국 이들을 체포해서 끌어온 뒤, 교수대에 매달아 죽였는데요, 수용소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시체에 돌을 던지게까지 했습니다.
모의재판에 참여한 다른 탈북자들은 신원 노출 우려 때문에 가림막 뒤에서 증언에 나섰는데요, 이들은 한결같이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상습 처형을 포함한 일상적인 인권탄압의 최종 책임자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질문) 처형 승인을 상부에서 받는다고 하는데, 상부는 어디였습니까?
(탈북자) 최종적인 상부는 김정일이었습니다.
이 탈북자는 이어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10명이든 20명이든 얼마든지 처형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안남도북창 18호 관리소에서 관리 업무를 했다는 증인은 자신이 일하던 시기에 관리소에 "약 12만 명"이 갇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직원이었다는 증인은 2001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김정일 타도' 전단 살포 사건이 있었을 때 범인을 찾아내겠다며 6개월간 모든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고 소개했습니다.
북한 주민, 특히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인권이 적용되지 않으며, 대다수의 북한 주민은 한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에서 일반화된 인권 개념을 아예 모르고 있다고 증인들은 전했습니다.
18호 수용소에서 관리 업무를 했다는 증인은 상관으로부터 "정치범수용소 수용자들은 죽이지 못해서 석탄 생산을 위해 살려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보위부 직원이었던 증인은 "북한사람들은 인권이나 자유가 뭔지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으며, 나도 이 자리에서 왜 북한사람들이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주간 들어온 인권 관련 소식입니다.
-- 중국의 인권변호사 20여 명이 2015년 체포된 이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붙잡혀 있으며 1명은 실종된 상태라고 영국의 BBC 방송이 밝혔습니다. BBC는 중국 당국이 최근 '인권의 날'에 즈음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유엔이 중국 정부에 사라진 인권변호사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라진 인권변호사 장톈융 씨는 3주 전인 지난달 21일 밤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장 씨는 국가정권 전복선동 혐의로 체포 당한 동료 인권변호사 셰양의 가족을 만나려고 후난성 창사를 찾았다가 종적을 감췄습니다. 장 변호사는 정부가 셰양을 구금하자 이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권단체들은 장톈융 씨가 정부에 의해 구금 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이른바 '종족 청소'로 알려진 미얀마의 이슬람 소수계 로힝야 탄압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는 데 합의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일간지 자카르타타임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최근 미얀마 라카인 주의 로힝야족을 향한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곧 로힝야족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단을 파견할 것"이라며 "관련 부서 장관들에게 필요한 물류, 특히 음식이나 담요 등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아난 전 총장은 미얀마 국가 자문역 겸 외무장관 아웅산 수지의 지원을 받아 지난 8월부터 라카인 주에서의 로힝야족 탄압 문제 자문위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권, 인권, 인권'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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