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주 이 시간 흥겹고 신명나는 선율로 여러분을 찾아가는 <재즈, 재즈, 재즈> 시간입니다. 진행에 변창섭입니다. 재즈의 명연주인을 탐험해보는 순서, 오늘은 피아니스트이자 악단 지휘자로 이름을 떨쳤던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서는 ‘스윙의 왕’이란 별명을 가진 베니 굿맨을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만, 카운트 베이시는 베니 굿맨이 크게 활약하던 1930년대 중반 ‘One O'clock Jump' 한국말로는 ‘한 시의 춤곡’이란 곡으로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당시는 무도회장에서는 춤추기에 안성맞춤인 스윙 재즈가 유행하면서 카운트 베이시는 베니 굿맨에 버금가는 인기와 명성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카운트 베이시는 특히 간명하면서도 반복되는 짧은 선율과 가락이 특징인 피아노 반주로 스윙 재즈의 묘미를 한층 더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카운트 베이시의 대표곡이자 스윙감이 물씬 넘치는 ‘One O'clock Jump'란 곡을 들어보시죠. 연주 첫 도입부, 그리고 중간을 잘 들어보시면 카운트 베이시 특유의 피아노 반주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Count Basie Orchestra's One O'clock Jump
어떻습니까? 카운트 베이시의 간명하면서도 경쾌한 피아노 반주가 연주가 맛깔스럽지 않습니까? 카운트 베이시의 본명은 윌리엄 제임스 베이시였지만 그에게 ‘카운트’ 즉 ‘백작’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데는 이처럼 피아노를 스윙감이 있으면서도 맛깔스럽게 연주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카운트 베이시는 1904년 8월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 원래는 드럼, 즉 북을 치는 걸 더 좋아했지만 피아노를 잘 치던 엄마의 영향으로 15살 때부터는 피아노로 악기를 바꿔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시는 20살 무렵 뉴욕의 할렘으로 진출해 본격적인 재즈 무대에 서게 되는데요. 거기서 그는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인 팻츠 월러(Fats Waller)도 만나고, 훗날 자신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월터 페이지 악단에 들어가 피아노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베이시는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본명 대신에 ‘카운트 베이시’라는 이름으로 통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이번엔 프랑스 수도 파리의 4월을 노래한 ‘April in Paris'란 곡을 들어보시겠습니다.
Count Basie Orchestra's April in Paris
카운트 베이시는 1920년대 후반 중부 캔사스시에서 큰 인기를 끌던 베니 모튼 악단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연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1935년 악단 지휘자인 베니 모튼이 사망하면서 이 악단을 베이시가 인수하게 된 겁니다. 베이시는 당시 악단을 색소폰 주자인 레스터 영, 트럼펫 주자인 벅 클레이턴, 북 연주자인 조 존스를 비롯해 쟁쟁한 연주인으로 구성하면서 최고의 악단으로 발돋움했고, 빌리 할리데이와 지미 러싱, 조 윌리엄스 등 당대 최고의 재즈 가수들을 고정으로 출연시켜 성가를 더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카운트 베이시가 남성 재즈가수인 조 윌리엄스와 함께 한 ‘Everyday I have the blues', 한국말로는 ‘전 매일 우울해요’라는 곡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Count Basie Orchestra's Everyday I have the blues
베이시는 1930년대 후반부터는 활동 무대를 캔사스시에서 재즈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옮겨 사보이 클럽을 비롯한 여러 재즈 클럽에서 인기리에 연주활동을 했고, 1950년대 들어서는 영화에도 출연해 감미로운 스윙 재즈를 선사하기도 하고 미국 뿐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을 순회 여행하며 재즈를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베이시는 미국 최고의 대중음악상인 그래미상의 빅 밴드 부문에 9번이나 수상했고, 명예의 전당에도 4번이나 헌정됐을 만큼 상복도 많았습니다. 베이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무려 50여년이나 악단을 이끌면서 수많은 스윙재즈 연주하면서 스윙 재즈의 참맛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 음악인 김철웅 씨와 함께 하는 <내가 고른 재즈> 시간입니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분을 소개해주실지 궁금하네요.
김철웅
: 네, 재즈 색소폰 연주자인 케니 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진행자: 케니 지라고 하면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인데 북한 청취자들도 이 분 연주를 들어봤을까요?
김철웅
: 글쎄요. 요즘은 워낙 한류나 여러 나라의 문화가 흘러들어가니까 혹시 케니 지 음악은 들어가지 않았을까, 특히 오늘 소개드릴 Going Home 정도는 혹시 들어보신 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진행자: 그 정도로 유명한 분인데요. 어떤 분인지 소개해주시죠.
김철웅
: 1956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케니스 고어릭(Kenneth Gorelick)입니다. 어릴 때는 피아노를 배우다 10살 때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구요. 케니 지는 1976년 20살 때 배리 와이트의 ‘Love Unlimited Orchestra’에서 색소폰 연주자로 데뷔를 했고, 1982년 첫 앨범 ‘Kenny G’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인 Duotones가 미국에서만 500만장이 넘는 히트를 기록했고, Songbird가 연주곡으로는 이례적으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자료를 보니까 케니 지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판 음반이 무려 7천5백만 장이 넘는다고 하네요. 한국에서 10만장 넘게 음반을 팔면 대성공인데 케니 지의 음반이 7천5백만 장이 팔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이네요.
김철웅
: 케니 지는 1992년 스튜디오 앨범인 를 내놓아 1500만장이 넘게 팔리는 대인기를 기록했고, 1994년 발표한 크리스마스 앨범 도 1300만장이 팔리고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선 10만장도 어려운데 천 만장 수준이니까 음악을 하는 김철웅 씨도 부럽겠군요. 그만큼 이 분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김철웅
: 케니 지가 연주하는 음악의 장르는 재즈로 분류되기도 하고, 팝과 재즈의 중간이라고 보기도 하고, 신세대 계열의 음악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요. 케니 지는 비평가들로부터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오히려 대중들은 낭만적인 멜로디를 쉽고 편안하게 연주해 주는 그의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진행자: 사실 비평가들과 대중의 입맛은 다르죠. 비평가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걸 좋아하지만 대중은 듣기 편안하고 낭만적인 선율이면 좋아하게 되는데요. 그런 면에서 케니 지가 대중들의 입맛에 꼭 맞는 그런 연주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분의 어떤 곡을 소개해주실까요?
김철웅
: 오늘은 'Going Home'이란 곡을 소개할까 합니다.
진행자: 네, ‘Going Home'' 한국어로는 ’귀향‘이란 뜻이 되겠는데요. 케니 지의 감미로운 색소폰 선율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곡인데요. 철웅 씨는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김철웅
: 이 곡을 듣다보면 세계일주를 한다고 할까 뭐 그런 감상에 빠지기도 하구요. 요즘 이 곡이 광고 음악으로도 쓰이는데요. 경치나 바다의 모습을 소개할 때 이런 음악을 많이 씁니다.
진행자: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 케니 지의 연주곡은 처음 소개하는데요. 이런 곡을 북한 청취자들도 좋아하겠죠?
김철웅
: 케니 지의 곡들은 뭔가 사람으로 하여금 환상에 빠지게 한다고 할까요. 음악의 감미로움으로 내가 가보지 못한 환상적인 땅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데요. 북한 청취자들도 이 곡을 들으시면서 한 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가보고 싶은 자유로운 세상을 꿈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