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주 이 시간 ‘자유의 음악’ 재즈를 소개해드리는 ‘재즈, 재즈, 재즈’ 시간입니다. 진행에 변창섭입니다. 재즈의 명연주인을 탐험해보는 순서, 오늘은 그 유명한 재즈연주인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재즈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재즈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에 관해 소개할까 합니다. 유명한 재즈 연주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독창성과 개성미를 꼽을 수 있는데요. 사실 어떤 곡을 들으면 곧바로 누가 연주하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개성적인 특징을 가진 연주인을 꼽기는 쉽지 않은데요. 몽크가 바로 그런 독창성과 개성미를 최고조로 발휘한 연주인이었습니다. 특히 몽크가 직접 쓴 곡들은 워낙 개성적이고 독특해서 몽크가 직접 연주한 게 아니면 연주의 맛이 제대로 안 날 정도입니다. 몽크는 피아노를 칠 때 종종 팔꿈치로 두드리거나 연주하다 말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곤 했지만, 누구도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청중은 오히려 몽크의 그런 행동을 개성미의 표현으로 이해했지요. 그럼 여기서 몽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Round Midnight,' 한국어론 ’한밤중‘라는 곡을 감상해보시겠습니다.
Thelonious Monk's 'Round Midnight
어떻습니까?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에 이어 몽크가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도 박자감 있고 즐겁지 않습니까? 사실 방금 들으신 ‘Round Midnight'라는 곡은 몽크가 1944년 작곡한 것인데요. 그가 생전에 작곡한 80여곡 가운데서도 재즈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가장 듣기가 편하고 선율도 감미로운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즈의 거장 몽크는 1917년 미국 남동부의 노스 캐롤라이너주에서 태어났지만 4살 때 재즈의 본고장인 뉴욕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9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쯤 이미 피아노 실력에 두각을 보였고, 18살 때부터 떠돌이 악단을 따라 연주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그는 24살 때인 1941년부터는 뉴욕 할렘 지역의 ’민튼 극장‘(Minton's Playhouse)이란 곳에서 정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민튼 극장은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 재즈의 주류였던 ’비밥‘(Bebop)이라고 알려진 현대 재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비밥 재즈는 강한 엇박자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스윙 선율이 특징입니다. 바로 민튼 극장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인 찰리 파커, 트럼펫 주자인 디지 길레스피, 북 연주자인 케니 클라크 등과 함께 매일 저녁마다 즉흥 연주를 통해 비밥 재즈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지요. 이번에는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인 존 콜트레인과 함께 한 ’Blue Monk'란 곡을 감상해보시겠습니다.
Thelonious Monk's Blue Monk
이처럼 몽크는 미국 현대재즈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면서도 곡이 어렵다보니 일반에 널리 인정을 받는 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몽크는 1950년대 중반 리버사이드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음반 작업에도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난해한 곡들도 음반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들어서 몽크는 4인조 혹은 5인조 악단을 만들어 미국은 물론 유럽, 일본으로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이름을 크게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1960년대는 몽크는 주옥같은 곡들을 많이 쓴 시기이기도 한데요. ‘Straight No Chaser' "Monk's Time' 'Monk's Dream' 같은 주옥같은 곡들이 이 때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1960년대는 몽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4년 2월 이례적으로 그를 표지 인물로 올릴 정도로 몽크는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계속해서 몽크의 연주로 ’It Don't Mean a Thing'란 곡을 들어보시겠습니다.
Thelonious Monk's It Don't Mean a Thing
1960년대부터 미국 전역에 선풍을 불러온 로큰롤 음악 때문에 재즈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서도 몽크는 오히려 전성기를 맞이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970년대 들어선 활동이 뜸하기 시작하더니 1976년을 마지막으로 공식 무대에서 사라진 뒤 칩거에 들어갔고, 1982년 지병으로 타계해 많은 재즈 애호가들을 울렸습니다. 오늘날 몽크는 가장 독창적인 현대 재즈의 창시자로 칭송받고 있고, 그가 만든 곡들은 동시대 피아니스트였던 듀크 엘링턴의 곡 다음으로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또 그의 아들은 ‘셀로니우스 몽크 재즈음악원’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탈북 음악인 김철웅 씨와 함께 하는 ‘내가 고른 재즈’ 시간입니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한 주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도 어떤 재즈를 선사할지 기대가 되는데요.
김철웅
: 네, 오늘은 한국의 대표적인 가수라고 할 수 있죠. 인순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진행자: 인순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 가수인데요. 이 분이 재즈 노래도 불렀네요?
김철웅
: 그럼요. 대한민국의 팝소울 가수인데요. 이 분이 부른 노래를 찾아보니까 재즈도 불렀네요.
진행자: 그래요. 어떤 분인지 소개 부탁할까요?
김철웅
: 네, 인순이의 본명은 김인순이구요. 1957년 태어난 대한민국의 팝, 소울 가수입니다. 지금까지 14장의 정규 앨범을 포함하여 총 19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는데요. 가수로 처음 진출한 뒤 30년간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한국의 최고의 여가수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인순이는 상복도 많지요?
김철웅
: 네, 인순이는 1995년 KBS 방송대상 여자 가수상을 받았고, 2004년과 이듬해에는 연달아 KBS 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또 1997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고, 2006년 여성 신문사 주최로 열린 ‘미래의 여성 지도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진행자: 가수상 뿐만 아니라 이처럼 여성 지도자상까지 받은 걸보니 사회적으로도 모범이 된 것 같은데요. 이 분이 실은 혼혈 가수이죠?
김철웅
: 인순이는 1957년 경기도 포천시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흔치 않았던 당시 대한민국에서 인순이는 차별과 소외를 받으며 어릴 때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순이는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학교 다닐 때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라는 글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인순이는 경기도 연천의 청산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했는데요. 이 모든 어려움을 어렸을 적 노래로 극복했다고 합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인순이는 맨 처음 희자매로 가수로 처음 등단했죠?
김철웅
: 네. 인순이는 1978년, 걸 그룹 희자매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이때 훗날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자 가수로 성공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희자매 때에 인순이는 출중한 댄스 실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지만, 오히려 청중들은 그의 외적 이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인순이가 아무리 노래를 잘 했어도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혼혈 가수라는 점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죠?
김철웅
: 맞습니다. 하지만 1980년이 되자 인순이는 1집 《인연》으로 단독 앨범을 내놓았고, 이어서 1983년 부른 디스코풍의 〈밤이면 밤마다〉가 크게 인기를 끌어 1981년에 KBS 7대 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진행자: 맞습니다. <밤이면 밤마다>는 그 당시 대단한 선풍을 불러일으킨 경쾌한 춤곡으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곡이죠.
김철웅
: 이후 인순이는 10년간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등 대중들에게 잊혀진 듯 했지만 1996년 프로듀서 박진영의 권유로 〈또〉를 선보이며 다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래요. 참 우여곡절이 많은 가수인데요. 오늘 이 분의 어떤 곡을 소개할까요?
김철웅
: 라는 곡입니다.
진행자: 네, 한국어론 ‘당신이 최고야’라는 뜻인데요. 이 곡은 재즈에선 스탠더드, 그러니까 재즈 가수나 연주인이면 반드시 섭렵해야 할 필수 곡목으로 꼽히는데요. 이 곡을 고른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김철웅
: 재즈도 재즈지만 인순이가 부르는 재즈는 특별할 것 같아 골랐습니다. 특히 인순이하면 한국에선 성공 신화와 같은 존재여서 북한의 청취자들도 어떤 어려움이든 꿋꿋이 이겨내 성공을 한 인순이처럼 열심히 일하고, 밝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골라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