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매주 이 시간 흥겹고 신명나는 선율로 여러분을 찾아가는 <재즈, 재즈, 재즈>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그간 다양한 종류의 재즈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를테면 1930년대 미국 전역에 춤바람을 일으켰던 ‘스윙 재즈’를 비롯해 연주인들의 집단 연주가 주를 이룬 빅밴드 재즈, 1950년대 들어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쿨 재즈’, 또 1940년대 중반 이후 50년대 말까지 크게 유행하면서 개인 연주자의 기량이 강조된 ‘비밥’ 재즈가 그것입니다. 오늘부터는 재즈사에 찬연한 기록을 남긴 연주자들을 몇 사람 골라서 집중적으로 소개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하는데요. 오늘 그 첫 순서로 미국 재즈 역사상 아마도 가장 위대한 재즈 연주자이자 가수로 꼽히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으로 시작합니다. 오늘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이 즐기는 재즈는 암스트롱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재즈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암스트롱이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기 앞서 우선 그의 연주곡 하나 들어보시겠습니다. 들어보실 곡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5인조 악단으로 구성한 ‘루이 암스트롱 핫 파이브’(Louis Armstrong Hot Fives)이 취입한 곡인데요. 저 유명한 ‘웨스트 엔드 블루스’(West End Blues)란 곡입니다. 1928년 녹음된 곡이라 음질이 그다지 훌륭하진 않은데 들어보시죠.
Louis Armstrong Hot Fives' West End Blues
루이 암스트롱은 1901년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아주 가난한 흑은 노예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너무도 찢어지게 가난해 7살 때부터 돈벌이에 나섰을 정도였고 신문팔이에서 석탄 나르는 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암스트롱은 11살 때 새해맞이로 하늘에 대고 총을 쏜 일이 있는 데 그 때문에 경찰에 붙잡혀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이 있는 소년원에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난생 처음으로 트럼펫과 비슷한 ‘코넷’이란 악기를 접하게 됩니다. 하도 코넷을 잘 불어 암스트롱은 소년원 악단의 으뜸 연주자가 됐습니다. 어쩌면 소년원에 들어간 게 암스트롱의 일생엔 전화위복이 된 셈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암스트롱은 훗날 어린 시절의 혹독한 가난과 고생을 얘기할 때면 “내 인생에 가장 멋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암스트롱은 18개월에 걸친 소년원 생활을 마칠 때쯤이면 이미 상당한 경지의 연주 실력을 갖췄습니다. 그러던 그는 자기가 살던 뉴올리언스의 번화가 스토리빌의 술집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 “킹” 올리버를 만나게 되는데요. 올리버는 암스트롱의 음악선생이자 나중에 그를 자신의 악단에 고용까지 하게 돼 됩니다. 계속해서 암스트롱의 ‘차임스 블루스’란 곡을 하나 더 들어보시죠.
Louis Armstrong's Chimes Blues
이 곡은 암스트롱이 18살 때 킹 올리버가 이끌던 악단인 ‘키드 오리 밴드’에 들어간 뒤 취입한 곡인데요. 연주 처음과 중간에 들리는 트럼펫 소리가 바로 암스트롱이 부는 트럼펫 소리입니다. 어린 나이지만 이미 당시 그는 종전에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재즈의 맛을 보여줍니다. 암스트롱은 나중에 킹 올리버를 따라 시카고로 무대를 옮겨 연주의 폭을 넓혔고, 나중엔 아예 자신의 악단을 구성했는데요. 그 악단이 오늘 순서 첫 곡으로 들려드린 ‘웨스트엔드블루스’입니다. 자, 이번엔 그가 직접 노래하고 연주해서 1964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Hello Dolly'란 곡을 들어보시죠.
Louis Armstrong's Hello Dolly
루이 암스트롱이 자신의 이름을 딴 ‘루이 암스트롱 핫 파이브’를 만든 후 재즈 연주인이자 가수로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데요. 이에 관한 흥미진진한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탈북 음악인 김철웅 씨와 함께 하는 <내가 고른 재즈> 시간입니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번주는 어떤 분을 소개해주실까요?
김철웅: 네, 마이클 프랭크스란 감미로운 목소리의 소유자로 스무드 재즈를 부르는 분입니다.
진행자: 그렇지요. 듣기 편안한 스무드 재즈를 부르는 분인데 북한 청취자들도 이런 노래를 좋아하시겠죠?
김철웅: 아무래도 부드럽고, 쉬운 노래를 좋아합니다. 1944년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에 킹스턴에서 3인조 포크 밴드를 결성해서 벤조를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음악 활동은 훨씬 뒤에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U.C.L.A.에 입학해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음악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오레곤 대학에서 현대문화 관련 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그는 지방의 재즈 그룹들과 틈틈이 무대에 섰습니다. 이어 U.C.L.A.와 버클리 대학에서 음악을 지도하며 박사 과정을 밟았고 몇 개 영화의 음악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문학을 하면서도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까지 부전공으로 하고 참 재능이 많네요.
김철웅: 네, 그는 재즈가 지닌 매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마치 봄날의 들녘을 지나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작품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마치 시를 감상하는 느낌이 들어서, 재즈를 모르는 팝 팬들에게도 쉽게 그 분위기를 익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진행자: 이 분이 문학을 전공해 가사도 시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데요. 오늘 어떤 곡을 소개주실까요?
김철웅: 마이클 프랭크스의 1977년 히트작입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안토니오는 생의 열정가입니다. 진실을 위해 기도하고 우정을 얘기하지요. 오래도록 잊혀진 노래를 합니다. 무지개처럼 빛나는 음악을 흐르게 해요. 안토니오는 비를 노래합니다. 그는 기쁨이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지요. 내 모든 희망은 사라져요. 그의 삼바는 나를 열정으로 이끕니다. 오래도록 잊혀진 노래를 합니다. 무지개처럼 빛나는 음악을 흐르게 해요.’
진행자: 가사도 참 시적이군요. 선율도 참 부드러운데 청취자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김철웅: 힘든 저녁에 눈을 꼭 감고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며 이 곡을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곡을 들으면 희망이 보인다는 점인데요. 여러분도 이 곡을 들으시면서 언젠가 올지 모르는 희망을 기다리시면 좋겠네요.
Michael Frank's Antonio's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