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주 이 시간 흥겹고 신명나는 선율로 여러분을 찾아가는 <재즈, 재즈, 재즈>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부터 미국 재즈사에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인물을 탐험해보는 순서를 시작하고 있는데요. 오늘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즈 음악인으로 꼽히는 루이 암스트롱에 관해 소개해드립니다. 지난 시간엔 암스트롱이 고향인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1920년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킹 올리버가 이끄는 악단에 18살의 나이로 합류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 대활약을 보였다는 얘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이처럼 킹 올리버가 이끄는 악단인 ‘크레올 재즈 밴드’에서 큰 활약을 보인 암스트롱은 당시 시카고 다음으로 재즈가 흥했던 동부 뉴욕으로 진출해 당대 최고의 흑인 악단이었던 플레처 헨더슨 악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1년 정도 플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활동하다가 1926년 다시 시카고로 돌아가 이번엔 자기 이름을 딴 악단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그 이름이 처음엔 루이 암스트롱 핫 하이브(Louis Armstrong & His Hot Five)였다가 나중엔 루이 암스트롱 핫 세븐으로 바뀝니다. 헨더슨 악단을 떠나 다시 시카고로 금의환향했을 때 암스트롱은 “세계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라는 칭호를 얻었을 정도였는데요. 여기서 암스트롱이 ’올 스타‘(All Stars)라는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1955년 녹음한 ’Mack the Knife'란 곡을 감상해보시겠습니다.
Louis Armstrong All Star's Mack the Knife
1930년대 접어들면서 재즈는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하고 노래한 식으로 정의되기 시작됐을 정도로 혁명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암스트롱을 빼놓고는 재즈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특히 그의 신명나고 맛깔스런 연주 못지않게 연주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신명나는 노래로 관중을 휘어잡았는데요. 각종 라디오에 출연해 연주와 노래를 했는가 하면 영화에도 출연할 정도로 명사가 됐습니다. 암스트롱은 당시 재즈 여가수로 명망이 높던 엘라 핏제럴드와 공동으로 멋진 곡들을 많이 취입해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요. 이번엔 그녀와 함께 1956년 부른 ‘우리 친구할 수 없을까요?’란 뜻의 ‘Can't We be Friends?'란 곡을 들어보시지요.
Louis Armstrong and Ella Fitzgerald's Can't We be Friends?
처음엔 엘라 핏제럴드가, 그 다음엔 루이 암스트롱이 오스카 피터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흥겹게 주고 받는 노래가 참 신명나지 않습니까? 이처럼 암스트롱은 트럼펫이든 노래든 뭐든지 척척 소화해내는 일인 만능 연기자로서 미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1920년대 이후 승승장구해온 암스트롱은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49년엔 미국의 유명한 시사 잡지인 <타임>이 사상 처음 재즈 음악인을 표지인물로 선정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얘기는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와 함께 하는 <내가 고른 재즈> 시간입니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오늘 어떤 분을 소개해주실까요?
김철웅: 네, 오늘은 스무드 재즈의 창시자로 알려진 재즈 피아니스트 밥 제임스를 소개할 까 합니다.
진행자: 밥 제임스,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부드러운 재즈라고 할 수 있죠, 스무드 재즈, 북한 청취자들도 듣기 편안한 재즈인데요. 어떤 분인지 소개해주실까요?
김철웅: 밥 제임스는 1939년 미국 미주리의 마셸(Marshall)에서 태어났구요. 4살 때부터 피아노 연주를 시작, 15살이 될 무렵 트럼펫과 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 연주를 소화해내며 일찌감치 프로뮤지션의 길을 걸었습니다. 1959년에 보스톤의 버클리 컬리지(Berklee College)에서 재즈를 공부했으며 '버클리 스쿨 빅 밴드(Berklee School Big Band)'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버클리를 마친 후 미시건 대학에서 음악과정 학사와 작곡과정 석사 학위를 따내며 이론의 토대를 다졌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밥 제임스가 미국의 유명한 재즈 음악가이자 사업가이기도 한 퀸시 존스에 의해 발탁이 됐다죠?
김철웅: 네, 1962년에 노트르담(Notre Dame) 재즈 페스티벌에 피아노 트리오로 참가했다가 퀸시 존스(Quincy Jones)에게 발탁되어 데뷔 앨범 [BOLD Conceptions]를 발표했습니다.
진행자: 밥 제임스는 한국이나 미국에선 자신을 포함해 유명한 재즈 연주인 4명이 함께 하는 ‘Four Play'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김철웅: 네, 포플레이가 제일 유명하지요. 밥 제임스는 1991년, 리 릿나워(Lee Ritenour), 나단 이스트(Nathan East), 허비 메이슨(Harvey Mason)이라는 당대 최고의 퓨전 재즈 뮤지션들을 규합해 슈퍼그룹 포플레이를 결성했으며 포플레이의 데뷔 앨범은 발매와 함께 빌보드 재즈차트 정상에 올라 34주간 차트에 머무르는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개해줄 곡은요?
김철웅: 밥 제임스의 대표적인 곡이자, 그가 한국에 공연왔을 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기도한데요. Restoration, 한국어론 회복이란 뜻의 곡입니다.
진행자: 이 분이 내한 공연을 두 세 번 했는데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이 분이 한국에서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얼까요?
김철웅: 모던 재즈보다는 스무드 재즈, 한국에선 퓨전 재즈라고도 하는데 이게 현대적인 감성을 살리면서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것 같아요. 쉽잖아요.
진행자: 한국 분들이 듣기가 편하다면 북한 청취자들도 마찬가지겠죠?
김철웅: 네, 맞습니다. 이런 편안한 곡을 들으시면서 저희 청취자들도 편안한 밤이 됐으면 좋겠내요.
Bob James's Rest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