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가 직업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첫째 이유로 손꼽히는 것은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았고 특히 남한 사람과 공개경쟁을 통해 취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남한 현실에 어두운 탈북자가 경쟁력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탈북자의 직업 문제를 덜고자 남한의 열매나눔재단은 전문 경영인을 초빙해 탈북자 종이함 제조 공장을 운영하면서 첫해 2백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탈북자들을 위해서 만든 첫번째 공장 ‘매자닌 아이팩’의 박상덕 사장을 통해 공장 운영에 대해 알아봅니다.
박상덕 사장: 모든 종류의 종이함을 만드는 제조 회사로 탈북자 3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사회적 기업이라고 불리는 ‘매자닌 아이팩’ 박상덕 사장의 말입니다. 이 공장은 2008년 5월 문을 열고 지난해 정식 법인 등록을 한 후 나날이 성장하는 회사입니다. 보통 법인 등록을 하고 첫해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는 전체의 1% 미만이라는 통계가 있지만 매자닌 아이팩은 종이함만 만들어 지난해 23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박상덕: 박스 거래처가 100군데가 넘습니다. 심지어 지난주는 대통령 하사품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농산물박스부터 화장품 박스, 수출업체 박스, 건강식품 칼러 박스,명절때 한과 박스, 인터넷 택배 박스라든지 제약회사인 녹십자에도 박스를 납품하고 있고 시장에서 파는 종이함 서랍장도 저희 제품이 다 나가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제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판매 회사는 자사 상품을 포장하는 것에도 무척 정성을 들입니다. 매자닌 아이팩은 1차 상품 생산공장의 주문을 받아 그것을 최종 포장하는 종이함을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남한에서 탈북자의 정착을 돕는 기관에 따르면 많은 수의 탈북자가 한 직장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고들 하는데 이 회사는 장기 근속자가 많습니다. 그 비결은 뭘까?
박상덕: 비결은 특별히 없고 처음 와서 문화적 차이가 있고 해서 변화에 적응을 못 하고 적당 주의가 많습니다. 그래서 생산성도 떨어지고 했죠. 정신교육을 많이 했습니다. 자본주의와 능력에 대한 것이었죠. 처음 입사할 때는 월급이 똑같지만 6개월에서 1년이 지나면 능력에 따라서 잘하는 사람은 2백 만 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러다 보니까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거죠. 열심히 해야 되는구나…
박상덕 사장은 회사 직원들이 남한 사회 즉 자본주의 경제에 잘 적응하도록 인간적인 면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박 사장이 직원을 다루는 데 제일 신경을 쓴 부분은 불신의 벽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박상덕: 이분들은 잘 믿지를 않더라고요. 사실 탈북자가 처음 입사를 하면 월급이 120만 원 정도인데 처음엔 그 정도 생산성이 안 나왔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뭔가 회사가 직원에게 주려면 곳간에 양식이 쌓여 있어야 뭘 줄수 있지 않겠습니까? 회사에서 처음엔 월급도 제대로 못 주고 했었는데 제가 오고 월급을 제때에 주고 약속을 지키다 보니까 회사를 믿기 시작하더라고요.
공장 문을 처음 열었을 때는 한때 재정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전문 경영인으로 회사에 영입된 박사장은 계속 외부의 주문을 받아왔고 주문 물량이 늘어나면서 일이 없던 공장은 24시간 교대로 철야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바빠졌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결근을 하면 그 사람이 해야 하는 몫은 다른 동료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출석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직원의 출근 문제도 박사장에겐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박상덕: 조그만 일들, 손으로 접고 풀 바르는 등의 일은 힘이 안드는데 큰 박스를 만들자면, 종이를 다발로 묶고 하니까 힘이 드는 일이 좀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힘들어하지 않는데 탈북 남성은 너무 못 먹고 성장해서 온 빈약함 때문인지 힘들어합니다. 중간에서 포기하는 분들을 보면 잘 먹지 못해서 힘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 남성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몇몇 사람은 회사가 생겼을 때부터 지금껏 일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 5일 근무지만 일을 많이 하면 즉 연장 근무를 하면 그에 따른 수당을 더 받기 때문에 일하는 만큼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탈북자에게 매우 중요한 동기 유발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한 사람과 탈북자가 공장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일한다고 가정할 때 어느 쪽의 작업능률이 더 좋을까? 박상덕 사장에게 질문을 해봤습니다.
박상덕: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탈북자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 공장의 사장을 하고 있는데 북한 사람들 정말 의리가 있습니다. 대신 말은 좀 많습니다. 한국 사람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면 잔머리를 잘 씁니다. 하지만 탈북자는 우직함이 있습니다. 이북 사람은 믿음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있게 해달라, 내가 너를 믿으니까 열심히 해보라 하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하고요. 그렇게 해서 초창기 문제아들 즉 만날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돈을 더 주나 하는 식으로 말하던 직원을 회사의 가장 주역으로 만들어놨습니다.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놀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외식도 하게 되고 지출을 하게 되니 우선 저축하는 습관을 가져라. 돈이 모이면 은행에 적금을 들어서 돈을 불려라 이런 충고는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일하면서 자신의 은행통장에 돈이 불어가는 재미를 본 직원은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박 사장이 직원 교육을 시키기 이전에 새로 입사하는 탈북자에게는 먼저 일을 시작한 고참이 교육을 하는 식으로 점차 회사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30명의 탈북자 중 여성이 차지 하는 비율은 70%, 그리고 연령대는 대부분이 40대. 종이함 생산공장에 취직 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자격조건은 없습니다. 일하고자 하는 탈북자가 있고 빈자리가 있으면 누구나 받아줍니다. 그리고 힘들다고 퇴사를 원할 때는 잡지 않습니다.
박 사장은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박상덕: 자기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다는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면을 자꾸 인식시켜 줍니다. 남한에 오기까지 물론 고생도 많았지만 너무 공짜를 바라지 말고 사선을 넘을 때의 맘을 잃지 않는다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현재 이 공장은 매달 2만 달러(한화 2억3천만원)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생산설비에서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종이함을 만드는 겁니다. 박사장은 만일 생산공장을 확장할 수 있다면 연간 500만 달러(한화 50여 억원)의 매출도 자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탈북자 공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하는 박상덕 사장. 하지만 지금은 탈북자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친구가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 소리에 푹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다.
박상덕: 중요한 것은 운영자의 자세인 것 같습니다. 직원이 9시에 출근을 한다면 저는 7시면 나와 있는데 제가 솔선수범 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50인데 시골 출신입니다. 북한의 실정이 우리나라 60년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북한에 가보진 않았지만 탈북자들이 지금 그런 곳에서 왔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소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내게 이런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계셨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박상덕 사장의 얘기를 통해 열심히 일하는 탈북자의 모습을 들여다 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이진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