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요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그래도 좀 알려진 나라의 도시에 가보면 사람이 반이고 나머지는 차입니다. 승용차부터 시작해 화물차, 택시 그리고 시민의 발이라고 불리는 대중교통인 버스까지. 차의 종류도 무척 다양합니다.
오늘은 버스기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중 하나인 서울에서 현재 대형 버스를 모는 탈북여성 유금단 씨를 전화로 만나봅니다.
(혜은이 노래)
남한에선 80년대 초반 미모의 혜은이란 이름의 여자 가수가 부른 이 ‘뛰뛰빵빵’이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지만 주로 운전기사가 즐겨 청해서 어느 버스를 타던 한 번쯤 듣게 되는 귀에 익은 노랩니다.
지하철과 마을버스와 더불어 시민의 발이라고 불리는 시내버스. 서울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인원은 1월 현재 하루 평균 417만 명입니다.
이는 시내버스 업체에서 매달 수송인원을 버스운송조합에 보내고 거기서 전체를 취합해 총 인원을 해당 일수로 나눠 계산한 수치입니다. 서울시 버스 규모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서울시 버스 운송사업조합 정책기획실에 있는 박준영 씨에게 들어봅니다.
박준영: 2009년 12월 31일 현재 버스 노선이 지선 간선 순환 광역 등 4가지로 분류돼서 작년 말 버스 인가 대수가 7천5 9 8대입니다. 그리고 차량 대수는 지선이 3천608대, 간선이 3천603대, 순환이 34대, 광역 버스는 3백53대입니다. 노선 수는 375개 노선입니다.
쉽게 말해 서울시에는 매일 7천6백 여 대의 버스가 시민의 발이 돼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 운송 수단에서 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27%.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을까? 버스운송조합의 김원식 씨의 말입니다.
김원식: 현재 2월 말 기준으로 서울시 소속 버스 기사는 1만 6천214명입니다. 일단 기준은 1종 대형 면허가 있는 분에 한해서 마을버스 경험이 1-2년 있는 분들이 버스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 승용차는 수송 인원이 대형차가 아니기 때문에 사고가 날 수도 있고 해서 마을버스 경험자를 뽑습니다.
서울시내 버스 운전사는 하루 평균 9시간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월급은 회사마다 조금씩 틀리지만 평균 잡아 250만 원 미국 돈으로 하면 2천 달러 정도를 받습니다. 여기에 무사고 운전을 하면 매달 5만 원의 미국 돈으로 40달러 정도의 수당이 붙습니다.
운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에서 장시간 앉아 도로 상황을 살피고, 승객의 안전에 신경 쓰는 대형차를 몰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쉽게 피곤해져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한 직업이 버스 운전사입니다.
그런데 키가 150cm의 작의 체구의 탈북여성 유금단 씨가 버스를 몰고 있다고 해서 남한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탈북자 사회에서도 일반 승용차를 남자가 모는 일은 많아도 북한 출신 여성이 그것도 대형 버스를 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탈북자: 대형 버스 운전은 유금단 씨가 한다고 처음 알았습니다. 이북에선 차가 많이 없어서 운전을 한다면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죠. 여기선 젊은 친구들이 밤에 대리운전을 많이 하고 트럭 운전 하면서 한 달에 500-600만 원씩 버는 사람도 있고 택시 기사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623번 풍양운수에 근무하는 유금단 씨. 이 버스 회사엔 250여 명의 버스기사가 있는데 이중 여성은 4명 여기엔 유금단 씨도 있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인 유 씨는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2001년 탈북해 그 이듬해 남한으로 갔는데요, 고향에선 커다란 버스를 본 적이 없다며 시내버스 운전을 천직으로 알고 세상에 이보다 멋진 직업은 없다고 말합니다.
유금단: 지금 가끔가다 한 달에 몇 번 휴식이 오는데 그때가 되면 속상합니다. 노는 시간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운전하면 모든 사람이 나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려주고 내가 멋있게 생각이 되는 겁니다. 저자신이 대단해 보이면서 그런 자신감으로 일하다 보니까 사고도 없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탈북해 남한에 간 유 씨는 처음엔 남한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공사장에서 막일도 했고, 식당 봉사원 일도 해보지만 다른 문화 특히 말을 못 알아들어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남한 생활 8년 차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그런 어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유금단: 이젠 천천히 말하면 경상도인가 강원도인가 물어 보기도 하고요. 내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닌데 여기 분들이 혹시 반말하나? 이런 식으로 오해를 하더라고요. 이상한 눈으로 보고 나쁜 쪽으로 얘기하니까 그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유 씨는 2003년 승용차 면허를 따고 대형차를 몰 수 있는 1종 시험을 보지만 번번이 떨어지길 12번, 실기시험과 기능 시험은 쉬웠지만 남한의 교통 법규를 물어보는 이론은 아무리 해도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다고 당시의 상황을 들려줍니다.
유금단: 그때는 정말 그만 해야 하나 하면서도 새벽에 2-3시에 잠이 안 오면 면허 시험장 치는 데 가서 불이 어두 컴컴한 곳에서 책을 보고 해서 13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기자가 유 씨와 통화를 한 것은 유 씨가 정해진 운행을 두 번 끝내고 막 배차실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버스기사는 보통 하루에 같은 길을 4바퀴를 도는데 한 번 왕복 운행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 오늘은 새벽에 출근해서 훤한 대낮에 퇴근합니다.
유금단: 새벽 첫차 때면 4시10분 부터 노선별로 시간이 틀린 데 3시에 일어날 때도 있고 중간 순번이 걸리면 5시에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4시에 일어나서 5시 40분 차를 타서 이제 두 번 돌았습니다. 2시 반이면 끝납니다. 제가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아들이 하나 있는데 꿈이 큽니다. 아들이 잘되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고 그다음은 여기 와서 여기 시민을 태우는 이 6623노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애쓰고 싶습니다.
1일 2교대 근무. 새벽일을 할 때면 밤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저절로 흥이 납니다. 그리고 힘들다고 느껴질 땐 ‘마이웨이’ 한국 말로 하면 ‘나의 길’이란 노래를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유금단: 그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 와 주저앉아 있을 수 없어. 내가 가야 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 번 더 부딪혀보는 거야…
(마이웨이)
이 노래는 내가 힘들 때 듣는 노래입니다. 희망을 품고 살아가면서 꿈을 이룬다는 다짐을 하며 출근하면서 내가 부르는 노랩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당찬 여성 유금단 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내고 꿈을 만들어 가는 멋진 여성입니다.
유금단: 예,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게 도와주십시오.
기자: 좋은 하루 되세요.
유금단: 예, 고맙습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남한의 시내버스 운전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는 이진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