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나의 미래] 치과기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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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가는 탈북자가 제일 많이 찾는 병원 중 한 곳이 치과로 알려졌습니다. 치아는 평생토록 사용해야 하고 외관상으로도 썩은 이가 보이거나 빠진 이가 보인다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어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인체 부위입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탈북과정에서 또는 북한에서 제때에 치료를 못 받아 엉망이 된 치아를 남한에 가서 치료를 받고선 밝은 웃음을 되찾는 게 된다는 얘깁니다. 이 시간에는 치과에서 쓰이는 각종 보철물을 만드는 치과기공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3.3 치아송) : 이를 닦자 이를 닦자 하루 세 번 이 닦자 밥을 먹고 3분 이내 3분 동안 이 닦자….

여러분이 듣고 계신 노래는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이를 잘 닦자며 어린이를 상대로 만든 ‘치아송’이란 제목의 깜빠니아(캠페인) 노래입니다.

이를 잘 닦지 않아서 충치가 생겨 구강 내 보철물이 때도 있지만 사고를 당해 치아를 잃는 일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린 치과에 가게 되고 치과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치과기공사에게 치아 대체물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게됩니다. 치기공사로 현장에서 25년을 일한 한명희 씨에게 치과기공사가 하는 일에 대해 먼저 들어봅니다.

한명희: 치아 상실로 구강 내 금니나 틀니를 하게 되면 치과에서 본을 뜨는데 그 대체물을 만드는 일을 치기공사가 합니다.

치과기공사는 금니, 틀니 등 의치를 하거나 부분적으로 금관을 씌우는 교정장치 등 치아의 대체물이나 장치물을 만들고 수리하고 가공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치과기공사는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 치과기공소, 종합병원 치과기공실과 대학 치기공과 등에서 책임 기사 또는 교수 요원 등으로 활약하게됩니다. 그러면 남한에서 치과기공사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대한치과기공사협회 장수경 씨의 말을 들어봅니다.

장수경: 전문대학이나 4년제 대학 치기공학과를 졸업을 해야 자격이 부여돼서 국가시험을 볼 수 있고 합격하면 면허를 받아 활동할 수 있습니다. 4년제 대학은 올해 3년 제인 김천대학이 응시해서 현재 4년제는 3곳이고 나머지는 전부 3년 과정의 전문대학입니다. 일반 전문대학은 2년이지만 보건 계열은 3년제입니다. 졸업을 해도 면허증이 없으면 무자격자로 봅니다.

대학 졸업자 또는 예정자만이 국가시험을 볼 수 있고 시험에 합격해야 현장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남한에선 매년 1천 700명의 졸업자가 대학에서 배출되고 있으며 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치과기공사 면허 소지자는 대략 2만 7천 명을 넘고 있습니다. 올해도 1천 명이 넘는 치과기공사가 면허를 받았습니다.

장수경: 2009년 12월 시험을 봐서 올 1월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1천649명이 응시를 해서 합격자가 1천 355명입니다. 남녀비율은 아직 남자가 우세하고 현재 입학자로 보면 남녀가 반반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국가시험의 합격기준은 과목당 40점 이상이며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이면 됩니다. 그러면 치과기공사의 취업은 어떤가?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의지만 있으면 모두 취업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소 3년은 그 업계에 있어야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오랜 경력을 가진 한명희 치과기공사의 말을 다시 들어봅니다.

한명희: 1-2년은 정신없이 지나가고요. 3년 정도 되면 일도 손에 익고 해서 괜찮아지지만 3년이 고비라고 봅니다.

현재 협회에 등록된 남한 내 치과기공소는 약 2천여 개 소이며 이 중 30%가 서울에 나머지는 지방에 개설되어 있습니다. 협회자료에 따르면 약 5천여 명 정도가 현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중 90%가 직원으로 나머지 10%가 자영업의 형태로 치과기공소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취업이 잘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한에 간 탈북자들도 치과기공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치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적잖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남한 사람과 달리 북한 출신 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모두 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전보건전문대학에 다니는 탈북여성 김옥화(가명.38) 씨의 말입니다.

김옥화: 면허 못 딴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3명인가는 국가시험에 합격 못해서 면허를 못 땄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험에는 영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 용어는 공부하다보면 나오는데 겁먹어서 그런지 시험에 떨어지더라고요. 작년 졸업생은 면허를 땄다고 들었지만 나머지는 못 딴 것으로 압니다.

김 씨는 북한에서도 비슷한 보건 계열을 공부해서인지 남한에서 대학 수업을 받는 것에 그다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3년 과정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옥화: 북한에선 약학 공부를 했는데 남한에서 인정을 안 해줘서 치과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환자 만나고 온 종일 서 있는 것도 힘들고 해서 조용히 앉아서 하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치기공을 알게 됐습니다. 공부하는 내용은 3학년이라 거의 실습을 합니다. 실습은 치아 만드는 일입니다. 금속도 하고 치아 색 나는 포셀린도 하고 싱글 크라운은 금으로 해야 하는 데 값이 비싸니까 실습 때는 도금한 것으로 합니다.

치과기공사의 업무는 치과기공실 또는 기공소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공 치아를 깎을 때 나는 여러 가지 장비의 소음과 미세한 먼지 그리고 환자 구강 내의 치아 상태를 본뜬 교정장치를 만들 땐 니켈, 크롬 등 유해물질의 냄새도 역해 작업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직업의 특성상 오랜 시간 앉아서 집중해 일해야 하는 것은 과연 치과기공사가 평생 직업으로 적당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그래서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취업 준비를 하는 후배 탈북자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옥화: 남이 일할래 공부할래 하면 저는 공부하고 싶다고 합니다. 일하겠다는 사람에겐 권해주고 싶지만 진짜 공부가 좋아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에겐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직업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요소 중 하나가 임금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능력과 경력에 따라 편차가 심해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치과기공업계 사람들에 말에 따르면 치과기공소에 근무하는 경우는 졸업 후 1-2년간 보조로 일하며 초임이 대략 70만 원-100만 원 정도 그리고 숙련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보수가 많아지는데 5년 경력이 있는 사람은 적게 잡아도 200만 원 이상을 번다고 했습니다. 미국 돈으로 하면 대략 2천 달러 수준으로 보면 됩니다. 남한의 이화여자대학교 부설 통일학연구원 김화순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기공사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북한 출신 남성의 성공담을 이렇게 말합니다.

김화순: 이분은 졸업하고 치기공 사로 일했는데 80만 원을 받았습니다. 너무 액수가 적어서 그만두고 중국집 배달원을 했더니 150만 원을 받았습니다. 치기공사를 할 때보다 자장면 배달을 하면서 두 배를 번 겁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이분에게 배운 것을 썩히면 되겠는가? 그쪽으로 계속 나가라고 조언을 해서 마음을 돌려서 자장면 배달을 그만두고 다시 치기공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하고 5년도 안 돼서 연봉이 5천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남한 사회는 최근 어느 직종에서 일하는가 보다는 얼마를 버는가와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치과기공사는 학력에 대비해 보면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인 반면 자기가 일하는 만큼만 수입이 있고 쉬거나 일감이 떨어지면 안정적 수입의 보장이 어렵다는 측면에서 직업의 안정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김 박사는 덧붙였습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치과기공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