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의 택배 시장에서 지난해 취급한 소화물 물량이 10억 건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횟수도 21회로, 그 시장 규모는 30억 달러에 이르고 있습니다. 택배란 고객이 원하는 소화물을 발송지에서 도착지까지 신속하게 배송해 주는 사업을 말하는 데요. 오늘은 남한의 물류배송업체 즉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한 탈북여성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최은희:
삼성동 코엑스에서 일산 킹텍스 , 삼성동 코엑스에서 일산 킹텍스 111번, 삼성동 코엑스에서 일산 킹텍스 111번 배차, 친절!
탈북여성 최은희(가명) 씨와 제가 택배업체에서 운전기사와 통신하는 모습을 재연해 봤습니다.
얼굴도 보지 않고 목소리를 통해서만 하루에도 수 백 건씩 소화물을 보내려는 고객과 배달을 하게 되는 운전기사를 연결해 줘야 하는 일을 하는 최 씨. 그 일은 신기하고 신나는 경험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의 일이기도했습니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최 씨는 남한에 가자마자 5년 전 소화물을 배송해 주는 업체에 취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물류배송일을 하겠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은희:
제가 아무것도 모를 때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광고지를 많이 봤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취직은 시켜준다고 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광고지를 봤었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면접을 여러 곳 본 뒤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탈북자면 누구나 거치는 사회적응교육 시설인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최 씨는 한 달만에 직장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남한 생활의 모든 것이 생소했던 최 씨에게 일은 정말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외래어가 절반인 남한 말은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해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더구나 무전기를 통해 소화물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빨리 전달하는 일은 무슨 암호를 주고받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최은희:
처음 3개월은 전화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지역 위치랑 건물 이름을 배웠습니다. 여기는 외국어를 많이 쓰니까 생소했습니다. 거리를 다닐 때 건물 간판을 많이 보고, 책도 보고 하면서 외웠습니다. 3개월 지나선 관제를 했습니다. 관제라고 하면 무전기로 기사로 통신을 하는 겁니다. 그땐 사투리도 고쳐지지 않았고 많이 불안하고 해서 긴 시간을 못하고 조금씩 하면서 배웠습니다.
최 씨가 일하고 처음 받은 월급은 85만 원 미국 돈으로 하면 700달러 정돕니다. 처음엔 너무 작다고 생각했지만 들어가 일하고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정도도 대단히 많다고 생각을 고쳐 먹게 됐다는 최 씨.
남한에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을 통해 편지나 서류, 소화물 등을 원하는 곳에 보내기도 하지만 신속하게 처리할 물건이 있을 때는 이륜 배송 즉 오토바이나 소형차를 이용해 배달하는 택배 전문업체에 전화해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직접 보내기도 합니다. 최 씨가 택배 업체에서 일하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들어봅니다.
최은희:
지금은 재미있게 일하지만 처음엔 당황스런 일이 많았습니다. 말투가 다르니까 고객도 중국 사람 아니야 한국 사람 바꿔! 이럴 때 정말 말할 수 없이 당황 스러웠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를 한 달 동안 많이 고민했습니다. 집에 와서는 말하는 연습도 하고 따로 공부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말하는 연습을 해야하니까 집에서 아이들 그림책을 놓고 큰 소리로 읽고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승리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6개월이 지나면서 최 씨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됐고 1년이 지나선 완전히 업무를 파악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최 씨가 직장에서 자신의 자릴 잡기까지는 동료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최은희:
제 성격이 콸콸합니다. 고객은 최대한 존중하지만 같은 업체끼리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가 중국 사람 아니야 할 때는 같이 막 소리치고 했습니다. 일을 못하고 그랬으면 동료들도 내게 뭐라 했을텐데 내가 노력하니까 그 여자 원래 그래 하면서 제게 힘이 돼주더라고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한생활 적응도 자연스레 하게 됐습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땄고 운전면허증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경력이 쌓이면서 월급은 계속 올라갔고 성실히 일하는 최 씨는 회사의 인정도 받아 승진도 했습니다. 상황실에 근무하며 관제 일을 볼 때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했지만 이제 경리부장이 된 최 씨는 9시에 출근하고 6시 반에 퇴근하는 회사원이 됐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힘들기만 했던 남한에서의 직장생활을 잘 견디고 오늘의 자신을 만든 비결은 뭘까?
최은희:
잘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려울 때는 이것 아무것도 아니지 옛날엔 더 힘든 일을 극복하고 여기 왔는데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이겨냈습니다. 행복이라고 하면 원이 없으면 행복이라고 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만족할 때죠. 돈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정을 받고 그러니까 더 행복합니다.
재밌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최 씨는 말합니다.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월급을 타는 직업이 아닌 일에 보람을 찾고 신나게 일해야 오래 일할 수 있다고 최 씨는 경험담을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앞으로 통일의 날이 오면 고향으로 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또 다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은희:
예전엔 생각 못 했는데 이젠 일이 손에 익고 하니까 처음엔 하나만 배우면 되겠지 했는데 그것을 배우고 나면 또 배울 것이 있고 하더라고요. 배우는 데 끝이 없습니다. 고객한테 전화가 오면 프로그램에 올려야 하고 기사님에게 알려줘야하고 월말에는 정산하고 많이 거래하는 업체는 할인도 해주고 그런 일들을 이젠 능숙하게 하다 보니까 나중에 통일되면 쓸 곳이 많겠다 그런 생각에 나중에 누구에게 가르쳐 주더라도 잘할 수 있게 애쓰고 있습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물류배송업체에서 일하는 탈북여성 최은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