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나의 미래] 제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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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온 신상품이 몇 달 후에는 구형으로 변하거나 사라집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책입니다. 오늘은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 거치는 여러 단계 중 마지막 작업을 하는 책 만드는 사람 즉 제본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봅니다.

인쇄 업계에서 제책업으로 분류되는 제본. 제본이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마지막 공정으로 인쇄된 종이를 순서대로 모아서 읽기 쉽고 가지고 다니기 쉽게 책으로 엮거나 작업하는 것을 말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제본사라고 합니다.

또한 남한의 대학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비싼 외국 서적이나 전공 서적을 복사해서 복사본을 만들거나 책을 보기 좋게 나눠서 만드는 것을 편의상 제본한다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곳을 제본사라고 합니다.

제본은 인쇄가 우선 돼야 하기 때문에 먼저 남한에는 얼마나 많은 인쇄업체가 있는지 그 현황부터 살펴봅니다. 대한인쇄연구소 황일하 부장입니다.

황일하: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7년 말 기준으로 국내 인쇄업체는 총 17,521개사로 조사됐습니다.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업체 비중은 5.5%로 제조업 중에선 상당히 많은 업체를 가지고 있는 산업이죠. 관련 산업에 제책업이 있는데 2007년 기준 913개 업체고 지금 물량이 많이 감소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들 어려운 실정이죠.

인쇄 관련 종사자 현황을 보면 노동 집약적 측면이 강해 보이지만 인쇄 기계가 첨단화돼서 사람 손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아 사업장 규모가 5인 미만인 업체가 전체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황일하: 국내엔 영세업체가 많죠. 17,000개 중에 13,000개가 종업원 4인 이하란 말입니다. 그리고 100인 이상은 23개 업체입니다.

기자: 4대 보험이나 봉급 수준은 열악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이 조사 내용으로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성이 도시형 산업이라고 해서 수요가 도심에 몰려 있어서 전국 지역별 업체 현황을 보면 대부분 서울 경기가 전국에서 60% 이상이 수도권에 분포됐습니다.

인쇄물은 남한 내 유통 뿐만 아니라 외국에 수출도 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합니다. 남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 등에 수출하는 인쇄물 종류는 인쇄서적이 1억 3천 달러로 가장 크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고 황 부장은 말합니다. 그 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황일하: (인쇄서적 이외엔) 신문, 잡지, 간행물, 그림책, 악보, 달력, 엽서 기타 인쇄물로 수출이 2008년 기준 총 2억 5천만 달러 정도고 2007년도 2억 1천만 달러 정도 되네요.

남한 생활이 8년 차가 되는 탈북여성 박은실(가명. 44) 씨는 현재 제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실제 제본사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이고 어려움은 없는지 들어봅니다.

박은실: 가서 하는 일은 책을 인쇄한 종이를 재단해서 종합 기계에 넣으면 준철이라고 해서 쇠가 책 양쪽에 박혀 나옵니다. 그러면 면 20권씩이면 20권씩 넣어서 포장하는 일을 합니다. 하는 일이 매일 똑같으니까 어려운 것은 크게 없습니다. 글씨는 찍다가 잘 못 찍을 수 있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니까…기계에서 나오는 것 그냥 추려서 상자에 넣고 하니까 실수는 없습니다.

박 씨는 책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업체를 선전하는 광고지도 만듭니다. 박 씨가 일 많이 만드는 것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하는 학습지 제작입니다. 이런 학습지를 만들 때면 하얗고 질긴 종이가 북한 생각을 나게 하기도 한다고 박 씨는 고백했습니다.

박은실: 북한에 있을 때는 종이가 귀하니까 옥수수 껍질을 가지고 종이를 만들어 책을 만들니까 책이 새카맣거든요. 그냥 한번 쓰면 찢어지고 구멍이 뻥뻥 뚫리는데 여기는 진짜 최고급, 북한에서 최고급 책을 만드는 종이를 일반 아이가 쓰고 있으니까 완전히 남한과 북한이 되는 거죠.

현재 박 씨가 일하는 제본사는 사장을 포함해 모두 4명이 일하지만 곧 사업이 확장되면 봉급도 오르고 사람이 많아진다고 했습니다. 매달 박 씨가 받는 월급은 110만 원으로 미국 달러로 1천 달러 가까이 됩니다. 근무 시간은 기본이 하루 8시간이지만 일감이 많을 때는 야간작업이 잦습니다.

박은실: 아침 9시에 일 시작해서 점심은 12시부터 1시까지고 저녁에는 7시까지 합니다. 그런데 일이 많거나 시간을 맞춰야 할 때는 10시까지 야간을 할 때도 있습니다.

남한에선 남자만 벌어선 자녀 교육 시키고 좀 여유롭다 느낄 만큼 생활하기가 벅차서 많은 부부가 같이 벌어 가정 수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런 부부를 맞벌이 부부라고 합니다. 박 씨는 북한에서 그리고 탈북해 중국에선 3남매를 키우는 가정주부 즉 가두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한 정착 초기만 해도 가두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혼자서도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인지 아니면 일을 해야 수입이 생긴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몸에 배서인지 일을 해야만 즐겁다고 말합니다.

박은실: 많이 바뀌었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잖아요. 예전에는 애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요즘은 애들이 다 커서 일요일에도 친구들 만나러 나가고 남편도 나가고 하면 혼자 있습니다. 일을 해야지 집에 있으면 답답합니다. 나가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나가 일하는 것이 더 좋더라고요.

박 씨가 남한에서 제일 처음 한 일은 식당일. 주문도 받고 빈 그릇을 치우기도 하는 식당 봉사원으로 한동안 있기도 했지만 일도 힘들고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길 때도 경력을 인정받기가 어려워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취직한 곳은 인쇄소. 종이가 아닌 천을 이용해 라이터나 기념품에 인쇄하는 실크인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역 신문에 난 정보지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바로 일을 시작해 4년을 다니다 현재의 제본사로 옮긴 겁니다.

남편과 중학교 2학년이 된 막내아들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정의 박은실 주부. 허리춤에도 안 오던 아들의 키가 이제 남편보다 더 크다며 자랑하는 박 씨는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시골로 가서 땅을 좀 사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직업은 소중하다며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자신의 비결을 공개했습니다.

박은실: 나는 그래요. 하루를 일하더라도 진심으로 내일처럼 일하다 보면 꼭 나를 다시 부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심히 하거든요. 그래서 이전 사장님도 전화를 주시고 연락을 해요. 인쇄소 사람들과 회식을 한 번 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장님이 내 소개할 때 북한에서 왔는데 키도 작은 아줌마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디가서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일도 있으니까 너희도 잘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제본사란 직업에 대해 전해 드렸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