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첫 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낙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왜서인지 새해가 새로운 해 같지 않고 낡은 해 같습니다. 청년지도자가 등장했다면서 신년사도 예년과 똑같이 공동사설로 나갔지, 군부대 찾아가고, 친필 서한 보내고 궐기대회 하는 것까지 어떻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요. 필체까지 아주 그냥 판박이던데요.
여러분 유훈 관철한다고 충성궐기대회 열심히 하고 있죠. 그 유훈이라는 게 진짜 그런 말 했다고 증거로 기록영화 딱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했으니 믿어라 뭐 이런 식인데, 여러분은 믿습니까. 교시 말씀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소설 잘 쓰는 수재들이 중앙당 서기실에 앉아서 다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겁니다. 그러다보니 여기 가서 한말이나 저기 가서 한말이나 비슷비슷하게 되고 맙니다. 실례 들어 김정은이 어디 농장 가서 "거, 강냉이 농사 잘 됐네"하고 한마디 하면 아래 서기실에서 거기다 살을 붙여서 말씀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8시 보도에서 방송원이 "김정은 동지께서는 '농장 일꾼들이 당의 방침을 받들어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훌륭하게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런 동무들이 진짜 숨은 영웅입니다'라고 높이 치하하시였습니다"하고 읽죠.
또 이번에 땅크 부대 가서 "훈련 좀 열심히 하시오"하고 말하면 서기실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인민군 군인들은 원쑤들이 달려들면 단매에 짓 부시는 일당백의 용사가 되기 위해 평소 실전처럼 훈련하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하고 말을 만들죠. 정작 쓰고 보니 저도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중앙당 서기실 뽑혀 가도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제가 이번 공동사설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 과연 강성대국을 어떤 구실로 둘러댈까 하는 것이라고 저번 시간에 말씀드렸었죠. 그런데 이번에 보니 아예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렸더군요. 강성대국이란 말 대신 강성부흥이니 강성국가이니 하는 단어를 쓰던데, 어쨌거나 요약하면 이제 대국은 못하겠다는 게 아닙니까. 작년에는 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을 19번, 재작년에는 16번이나 사용했는데, 정작 원년이라는 올해는 달랑 5번밖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아예 강성대국이란 말을 쓰면 반동이라고 잡아갈지 모르겠네요.
제가 왜 강성대국이란 단어에 신경을 쓰냐 하면 저는 그래도 서울에 살게 됐으니 덜 억울하지만, 북에 사는 여러분들은 그 강성대국이란 말에 14년이나 홀려 살았지 않습니까. 마치 강성대국이 전지전능한 주문이라도 되는 양, 2012년까지 참자, 그때가면 강성대국이니 어쩌니 그러면서 굶어죽고 얼어 죽고 그래도 불평 한마디 못하게 만들고선,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게 속임수인 걸 뻔히 알았던 저도 막상 눈앞에 닥치니 분통이 터져 죽겠는데, 여러분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리곤 또 설 쇠고는 바로 광장에 나가서 '함남의 불길을 온 나라에 타오르게 하자'고 뻔한 거짓 연극대회를 하네요. 벌써 무슨무슨 불길 해 본 것만 해도 북조선 다 태우고 남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처음엔 '강계정신'이니 '대홍단정신'이니, '태천의 기상'이니 하면서 정신에 호소하다가 그게 지루해지니 또 '성강의 봉화'니, '라남의 봉화'니 '낙원의 봉화'니 하고 봉화 타령하다가 이제는 또 무슨 불길이라고요.
올해는 '함흥불길'하고 내년에는 '신의주불길'하고 또 그 다음에는 '청진불길'하고... 그 다음엔 뭘 내걸까요. 백두산 화산이 나오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단숨에 정신' 뭐 그런 말도 나온 것 같은데, 아무튼 무슨 번드르르한 말장난 하난 인정합니다. 이런 건 정말 세계 말 강국으로 인정하겠습니다. 개도 몇 번 먹이 주는 척하다 안주면 나중에 불러도 오지 않습니다. 짐승도 거짓말 몇 번이면 안 속는 거죠. 그런데 짐승도 아닌 다름 아닌 사람이 벌써 뻔한 거짓말에 20년 가까이 매년 당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못하고 새해 되면 또 광장에 나가서 "관철하자, 관철하자" 이러면서 주먹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하니, 여러분 신세가 개보다 나을까요.
내일 8일은 김정은 생일입니다. 앞으로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될 날이죠. 헌데 고기 한 조각은 차례지나요. 10년 넘게 무슨 정신 따라 배우고, 무슨 봉화 들고, 무슨 불길 태우고 해도 뭐가 남았습니까. 어느 보위부 사람에게서 말을 들어보니 작년 1월 8일엔 보위부만 살고 났더군요. 돼지고기, 닭고기, 개고기에다 찹쌀, 기름, 술, 과자 아무튼 스무 가지 정도 풍족하게 특별공급을 받아서 놀랐다고 하던데요. 올해도 비슷하겠죠.
보위부가 뭘 하는데 입니까. 여러분들 감시하는 데죠. 간수들은 고기 뜯으면서 술판 벌여놓는데, 감시당하는 사람들은 주린 배 안고 나가 일하고. 이게 뭡니까. 그냥 일상이 교화소의 삶인 겁니다. 교화소 탈출하면 바로 쏴죽이죠. 지금 중국에 탈북하는 사람들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냥 나라 전체가 하나의 감옥인 걸 자인하는 셈이죠. 북조선엔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 두 부류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는 이리 심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점점 더 포악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중앙당 비서들까지 모두 군복입고 나타나는 걸 보면서 저는 20세기 최악의 군사파쑈독재를 펼쳤던 히틀러 독일이나 일본 군국주의자들도 적어도 군복 입을 자와 안 입을 자를 가렸는데 저게 무슨 꼴이냐 하고 한탄했습니다. 나라를 잘 살게 하려면 경제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오히려 총을 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방향이 거꾸로 됐다는 것을 의미하죠. 북한이 언제쯤 방향타를 돌릴 수 있을지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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