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에서 한 김정은의 약속을 보며

0:00 / 0:00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7년 새해 첫 인사를 오늘에야 드립니다. 새해 인사에선 희망찬 새해라는 표현이 상투적으로 따라붙긴 하지만, 올해는 진짜 희망을 좀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해 김정은의 신년사를 저도 서울에서 티비로 실시간으로 봤습니다. 마지막에 김정은이 새해 맹세를 다지면서 머리까지 숙여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인민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맹약한다." 이런 생전 처음 듣고, 보는 말과 행동을 하니 여러분들도 눈을 의심했을 겁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 부르던 시대가 지나간 역사 속의 순간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 되겠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말에 "죽을 때가 되면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한다"는 말도 있던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요?

지금 북한 현실은 어느 때보다도 어렵습니다. 강력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시작된 지 지금 9개월째입니다. 여러분들이야 '맨날 제재 속에 사는데 뭐가 달라지나, 그래 봐야 쌀값이랑 환율이랑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장마당 물가는 몰라도 지금 김정은의 주머니는 말라갑니다. 현재 김정은이 갖고 있을 외화를 25억 달러 정도로 추정하는데, 앞으로 매년 7억 달러씩 감소해 4년 뒤면 외화보유고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김정은에게 돈이 없어지면 무슨 건설도 더 못하고, 전국에서 마비되는 현상들이 나타날 겁니다. 고난의 행군 때도 봤죠? 망하는 거 하루아침입니다. 그때도 쌀값이 자고 나면 푹푹 올라서 한 3달 되니까 2배가 되더군요. 그때쯤이면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옵니다.

지금 장마당 물가가 끔쩍 없어도 어느 한 순간 가격이 두 배씩 오를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김정은이야 제일 꼭대기에 앉아서 나라 모든 정보를 받아보니 아는 겁니다. '이거 심상치 않구나, 조만간 큰 일이 터질 것 같으니 대책을 세워야 겠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미리 인민의 동정심 사느라 머리도 숙이고 맹세도 하는 겁니다. 솔직히 지금은 김정일 시대도 아니고, 고난의 행군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면 여러분들이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겠습니까. 김정은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졌는데, 더는 국가가 통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또 민심이란 것은 3년과 5년이 고비입니다. 솔직히 초기 3년이야 김정은이 갑자기 잘 살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다 아니까 경제개혁 합네 하고 시늉을 하고 기대만 심어주면 됐죠. 그런데 3년이 지나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사람들은 '과연 김정은이 우리를 잘살게 만들 수 있을까'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년째를 맞는 시점에도 변화가 없다면 '이젠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해 김정은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데 지금 바로 그런 시기가 다가온 것이죠.

솔직히 여러분이 김정은 통치 5년을 살아보았는데 뭐가 나아졌습니까. 국가 기간기업은 다 파괴돼 전혀 살아날 가능성도 없고, 인민들 뜯어내는 것은 몇 배로 더 심해졌죠. 거기다 이제 경제제재까지 맞으니 경제 파탄 속도는 더 빨라질 겁니다. 그런데 아까 서두에 제가 희망이라고 한 것은 그래도 김정은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아는가 봅니다. 하긴 요 몇 달 남쪽만 지켜봐도 인민이 떨쳐 나와 촛불시위로 대통령도 몰아내고 하는 것을 보면 자기도 좀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인민의 힘이 무섭다. 화가 나면 나도 뒤집힐 수 있겠구나.' 이런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 인민들 눈치 좀 보고 잘 살게 만드는데 초점을 두겠다는 것인데, 이게 또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해선 병행될 수 없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제재를 받고 있는데 이걸 중단해야 인민이 잘 삽니다.

때마침 기회도 왔습니다. 미국에선 사업가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치 못하게 대통령이 돼 곧 취임합니다. 당선이 유력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내가 되면 북한을 엄청 강하게 압박하겠다"고 수차 공약했었는데, 그가 당선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김정은 입장에선 감지덕지한 일이죠.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이라 흥정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로, 원래대로라면 한국 대통령 선거가 올해 12월에 진행돼 내년 2월에 새 정부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지금 같아선 6월에 선거가 진행됩니다. 탄핵으로 인한 선거는 당선 즉시 정부가 들어서기 때문에 6월에 대선, 그리고 취임도 6월입니다.

김정은에겐 정말 놓치면 안 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솔직히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는지 아십니까? 북한에선 다 이명박, 박근혜 탓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건 다 김정일, 김정은 탓입니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자기가 몇 년 못산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니 '이거 큰일이다. 외부 협력 이런 거 다 때려치우고 문을 꽁꽁 닫고 아들에게 물려주는 거나 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김정은도 집권 이후 문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권력 잡는 게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문을 닫는 방법은 간단하죠. 핵실험과 미사일을 쏘면 외부에서 분노해서 제재하며 다 문을 닫아줍니다. 쉽게 말하면 김정은은 외부와 문을 닫고 내부 문제에 집중하려면 미사일 핵실험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미국과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있는데 이런 기회는 놓치면 다시 오기 어렵습니다. 이젠 내부 장악도 자신감이 생겼을 것인데, 솔직히 올해 또 도발하면 인민생활 향상은 물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김정은이가 인민을 잘 살게 만들고 싶은지 아님 그냥 제재 받고 문 닫고 싶어 하는지는 앞으로 핵 실험과 미사일 실험 하는 거 지켜보면 됩니다.

머리도 무거운 김정은이 모처럼 머리를 숙였는데, 그게 가식인지 진실인지 저도 두고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