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록지마’에 비춰본 북한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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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중국의 옛 이야기 하나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기원전 1세기에 쓰인 중국의 대표적 역사서인 '사기-진시황본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진시황은 여러분들도 악독한 왕의 대명사처럼 들어본 일이 있을 건데 정확히는 진나라의 시황제이고 기원전 210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인물인 것이고 '사기'는 진시황이 죽고 약 100년 뒤에 쓴 책이니 비교적 정확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시 진시황 주변에는 환관들이 득세했는데, 이들은 왕이 죽자 시체 썩는 냄새가 날까봐 썩은 생선을 주변에 쌓아놓기까지 하면서 왕의 죽음을 숨겼습니다. '부소'라는 태자가 왕위를 이어받으면 자기들이 다 죽게 될 것 같으니까 그랬습니다. 이들은 태자에게 "아버지가 화를 내서 자결하라 명했다"고 이런 거짓 조서를 보내 죽게 만든 뒤 철모르는 '호해'라는 그의 동생을 왕을 내세우고 국정을 자기들이 쥐락펴락했죠.

이렇게 환관들이 설치는데 신하들이 이를 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환관의 위세가 너무 커서 잘못 말하면 자기들이 죽을까봐 찍소리도 못 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환관의 두목이 '조고'라는 자인데, 항상 고민이 "내 앞에선 저 놈들이 고개를 주억주억하는데 속마음을 어떻게 가려내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내 꾀를 냈습니다. 어느 날 조고는 철부지 황제에게 사슴을 하나 갖다 바치면서 "전하를 위해 뛰어난 명마를 구해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보니 그건 말이 아니라 사슴인지라 "에이 승상이 잘못 본 것이요. 어찌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하시오"라고 했죠. 그러자 조고는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며 "제공들 보기엔 이것이 말이오, 사슴이오?"라고 물었습니다. 조고를 두려워한 상당수 신하들은 "아, 예 분명 말입니다. 말이고 말고"라고 말했고, 일부는 아무 말도 못했고, 일부 소신 있는 신하들만이 "사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조고는 자기 말을 부정하고 사슴이라고 한 사람들은 곧 억울한 죄를 뒤집어 씌워 모두 죽였습니다.

결국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됐고 환관들이 자기 맘대로 국정을 농락한 결과 진나라는 시황제가 죽고 3년 만에 멸망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일을 두고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져 후세에 전해지게 됐습니다. 지록위마는 '손가락 지, 사슴 록, 될 위, 말 마' 이렇게 네 글자입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인데 숨은 의미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른다'는 것입니다. 지록위마에 맞는 상황이 되면 바른 말하는 사람은 다 없고 간신들만 가득하게 되니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제가 수천 년 전 이야기를 새삼 들려드리는 이유는 북한이 진시황 때를 꼭 닮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쪽에 전해지기론 지난달 말에 열린 '제1차 전당 초급당위원장대회' 폐막식 때 양강도 근로단체부장이 본보기로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회장 앞에 포승줄에 묶여 끌려 나왔는데 회의 내내 무릎을 꿇고 있다가 나갈 때는 무릎으로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김정은이 참가자들 앞에서 "이런 자는 이 땅에 묻힐 자리도 없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이런 지시가 내려지면 당사자는 사신고사총으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뒤 화염방사기로 소각되는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그런데 그가 범했다는 죄를 들어보니 너무 황당합니다. 지난해 11월 김정은이 삼지연학생소년궁전을 방문했을 때 한 어린이의 노래를 듣고 "잘 부른다"고 칭찬했나 봅니다. 문제는 며칠 뒤 이곳을 찾은 근로단체부장이 아이에게 "네가 노래 잘해서 칭찬을 받은 게 아니다. 노래를 못하는데도 자애로운 원수님이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칭찬해준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 부모들이 "원수님께서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왜 훈시질이냐"고 격분해 당에 신소를 했고, 실적에 목마른 보위부가 '원수님 말씀을 부정한 죄'로 체포했다고 합니다. 이 근로단체부장이 듣기엔 아이가 노래를 못했나 봅니다. 그러니 제 딴에는 김정은이 자애롭다고 다른 방식으로 띄워주려다 반동으로 몰려 죽게 된 것입니다.

제가 근로단체부장이 진짜로 그렇게 죽었는지는 양강도에 가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북한에선 김정은이가 '노래를 잘 한다'고 하면 설사 가수가 세상 음치라고 해도 모두가 다 "예, 명창입니다. 세계적 수준입니다. 역시 장군님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이러고 입이 마르게 치켜세우고 박수를 쳐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이 근로단체부장과 같은 죄로 죽은 간부는 너무나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2012년 7월에 처형된 리영호 총참모장은 집에 가서 김정은을 보고 철이 없다고 욕하다가 도청에 걸려 죽었다고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공사가 말했습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도청에 걸려 죽었다고 합니다. 앞에서는 차마 말을 못해 집에 가서 꿍시렁 거리면서 혼자서라도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다 잡아다 죽이는 것이 오늘날 북한입니다. 그러니 북한은 집에 가서 잠꼬대 속에서라도 진짜 속마음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거기에 김정은은 집권 이후 맨날 죄를 솔직히 고하는 반성문 쓰라고 닦달질하니 북한은 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씨가 마르게 됩니다.

김일성이 공산주의로 간다고 인민을 속이곤, 3대 김정은이 집권하자마자 2200년 전 폭군의 대명사인 진시황제 시절로 되돌아간 것을 보면 밖에서 사는 제가 다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데 여러분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혹하겠습니까. 다만 북한처럼 충신이 없고 아첨만 능한 간신이 득세하는 사회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역사의 진실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