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유난히도 춥지요. 서울도 지난달 45년 만의 최대 한파가 들이닥쳐서 정말 추웠습니다. 이게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데, 지구가 뜨거워 북극의 얼음이 많이 녹고, 그러면 수증기량이 많아져 눈이 많이 오는데, 이 눈이 햇볕을 반사시켜서 다시 온도가 내려간다는 아무튼 설명하기 복잡한 과학적 원리가 작용해서, 찬 기온이 조선반도까지 남하한 겁니다.
남쪽이 이렇게 추우면 북한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농촌이야 그럭저럭 산에 가서 나무라도 주어서 때면 되지만, 평양처럼 온수난방에 의지해 사는 아파트는 불을 땔 아궁이도 없고 해서 정말 너무 추울 겁니다. 그리고 집도 없이 밖을 떠도는 꽃제비들은 이 겨울에 또 얼마나 많이 죽어나가겠습니까. 정말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저도 북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정말 추운 고생 많이 했습니다. 기숙사가 물이 얼 정도로 추우니 잘 때 동복 입고, 동화 다 신고, 털모자까지 눌러쓰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습니다. 교실도 난방이 하나도 안 되니 온도가 바깥이나 다름없어서 책상이 꽁꽁 얼어붙고, 필기할 때 새끼손가락이 그 언 책상에 쓸리니 그만 새끼손가락도 동상을 입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추울 때면 새끼손가락 감각이 얼얼해지는데 그럴 때면 북한의 대학 책상을 떠올립니다.
대학 다닐 때 남자들은 그래도 내복 입고 바지 입고 하면 괜찮았지만 여학생들은 바지를 입지 말라는 김정일 지시가 떨어져서 치마 입고 아침 8시부터 1시까지 영하 온도의 교실에 꼼짝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참 정신 나간 지시죠. 자기가 따듯한 방에서 걱정 없으니까 그냥 보기 싫다는 이유로 치마 입으라 즉흥적으로 지시내리고 그 말 한마디에 몇 백만 명이 고생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인민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아야 하는 겁니다. 자기가 직접 추운 교실에 한두 시간만 앉아 있어 봐도 그런 지시가 내려졌을까요. 물정을 모르는 지도자를 섬기는 인민은 정말 괴롭지요.
그런데 이자 겨우 30살이 된 김정은은 또 어떻습니까. 김정은처럼 아버지 잘 만났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부와 권력을 물려받는 경우를 두고 세계에선 '정자로또' 맞았다고 표현합니다. 로또란 말은 복권이란 말인데, 복권 1등 얼마나 어렵습니까. 한국에서도 매주 로또라는 추첨을 하는데, 당첨확률이 814만 대 1로 이건 한 사람이 벼락 두 번을 연속 맞을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구 인구 70억 중에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 자리 물려받는 경우는 수십 억대 일쯤 되니 김정은은 정말 정자 로또에서도 초대박 정자 로또인 셈입니다. 이런 김정은이 아무리 추운 고생, 배고픈 고생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자기가 직접 체험하는 것하고 말만 들은 것하고는 하늘땅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요새 날씨가 추울 때마다 김정은의 지시로 이 추위에 강원도 세포, 이천, 평강에 끌려 나가 풀판을 만드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쪽 고산지대가 겨울이면 얼마나 춥습니까. 그런데 이 한겨울에 수만 명의 돌격대를 그곳에 보내 언 땅을 파 흙깔이를 하고 풀판을 만든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선, 도저히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도 한겨울에 언 땅 파는 동원 가봐서 압니다. 곡괭이 불꽃 튕기도록 내리쳐도 손톱만큼 파기도 어렵죠. 아니 왜 그 개고생을 하는 겁니까. 정 하겠으면 봄부터 하면 되지. 김정은이 얼마나 물정을 모르는지 그거 하나만 보면 알겠습니다.
자기야 스위스에서 자라면서 알프스 산맥에서 자유롭게 방목되는 젖소 무리가 부러웠겠지만, 굶주린 군인들이 득실대는 강원도에서 그렇게 만든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다 훔쳐가죠. 그리고 전염병이라도 한번 돌게 되면 그거 어떻게 막을 겁니까. 그리고 북에서 과거 이런 식으로 지시 떨어져 성공한 사업이 어디에 있습니까. 1990년대 말부터 산에서 염소떼 흐르게 하겠다고 했지만 그거 다 도둑질 맞고 지금 어디 있습니까. 토끼 기른다고 스위스에서 풀씨까지 사왔지만 그거 됐습니까.
또 양어장을 만들어 민물고기 먹인다고 전국에 돌아가면서 멀쩡한 논밭을 파놓았지만 지금은 물구덩이로 전락되고 말았죠. 그 땅에 식량 심어먹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전기 없는데 양어가 어떻게 됩니까. 마찬가지로 사람도 구경하기 힘든 전기를 가져다 타조들 난방까지 하면서 타조농장 성공시키겠다고 난리치더니 그 타조들 다 어디 간 겁니까. 감자는 흰 쌀과 같다면서 양강도에 감자혁명 할 것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었지만 지금 집단 제대돼간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거기 붙어있습니까.
무릇 나라의 큰 사업은 정말 최고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서 매우 세심하게 성공 가능성을 몇 년이나 연구한 뒤에 진척해도 성공할지 말지입니다. 그냥 물정 모르는 지도자가 책 한두 권 읽거나 어디 구경 갔다 와서 "이거 좋으니 이렇게 만들라"고 지시한다면 무조건 실패할 뿐입니다.
북한은 그냥 나라가 개인들을 통제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게만 해도 사람들이 알아서 돈 되고 성공할 일은 기를 쓰고 해낼 겁니다. 최고의 전문가들인 인민이 하려는 일은 보위부 보안부를 동원해 다 가로막으면서 하기 싫다는 일만 그렇게 강제로 내모니 북한이 지금 그 모양 그 꼴인 겁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이 한겨울에 풀판 만들라고 수만 명을 내모는 것을 보면 자기를 지도자로 섬기는 사람들을 그냥 채찍을 쳐서 내모는 소 무리 정도로 여기나 봅니다. 진짜로 인민을 사랑한다면 이 추운 겨울에 그런 정신 나간 짓을 시키진 않죠.
이래저래 너무 불쌍한 북한 인민들입니다. 서울에서 따듯한 집과 사무실에서 지내다보니 이 한파 속에서 떨고 있을 여러분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정말 자주 듭니다. 지금까지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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