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보름 전에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 업체인 구글 회장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구글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사실 구글은 대단한 기업입니다. 작년 1년 매출액이 500억 달러가 넘고, 순이익만 107억 달러나 됩니다. 구글 순수익만 돌려도 북한 주민 전체가 매끼 이밥에 고기국을 몇 그릇씩 먹어도 남습니다. 그러니까 강냉이 배급도 제대로 못 주는 노동당에 비해선 몇 십배 힘이 있는 기업의 회장인거죠. 그런 기업이 만들어진지는 불과 15년밖에 안 됩니다.
북한도 그런 큰 기업의 회장이 오니까 잘 보이려고 여러분도 대충 코스를 다 외우고 있는 소년궁전, 김일성대 이러저러한 곳들을 구경시켜줬습니다. 인터넷 기업 회장이니까 대학생들이 인터넷을 하는 것을 보여준답시고 김일성대 전자도서관이랑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하려면 좀 제대로 하지 너무 엉성해서 망신당했습니다. 함께 갔던 구글 회장 딸이 온 다음에 인터넷에 방문기를 올렸는데, 그 방문기를 보면 김일성대를 방문했을 때 학생 한 90명이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마우스를 만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저도 사진 봤는데 그거 어떤 자세인지 다 아시죠. 아, 연극 하려면 좀 제대로 컴퓨터도 켜고, 하다못해 게임이라도 하게 하던지 하지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서 연출을 해준다면 정말 괜찮게 해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북한이란 사회는 워낙 경직돼 있는 사회라 외국인들에게 뭘 이리저리 행복한 사회로 보이기 위해 열심히 구경은 시켜주는데, 외국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어색해서 보기 거북합니다. 미국은 아주 자유로운 사회입니다. 뭐라 말해도 처벌되지 않고, 윗사람 앞에서 태도 좀 불량했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아마 오바마 대통령이 나타나도 군인이 아닌 이상 그렇게 차렷 자세 취할 일은 없을 겁니다. 껌을 질근질근 씹어도 되고, 팔짱 끼고 마주서서 얼굴 뚫어지게 쳐다봐도 되고 상관없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대통령 만나는 사람보다는 북한에서 군당책임비서 정도 만나는 사람이 열 배는 더 꼿꼿할 겁니다.
그렇게 자유로운 세상인 미국에서 사람이 오면 최소한 옆에 애들과 허리 꾹꾹 쑤셔대면서 히히닥닥 거리던가, 아니면 와짝 떠들면서 게임에 열중해 있던가 또는 무슨 글 열심히 쓰거나 보거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야 그 사람들이 돌아가서 아, 북한이 참 자유롭고 경직돼 있는 사회가 아니다 이렇게 가서 선전하는 겁니다. 이건 뭐 연극하고도 비웃음만 받았으니 하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못합니다. 그거 연출한 사람 잘라버리세요. 물론 미국에 비해 아시아가 자유로운 건 많이 뒤떨어집니다. 한국도 아직은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좀 긴장해 하지만, 그래도 북한에 비하겠습니까.
오랫동안 그 체제에서 살면서 굳어진 행동이니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는 외국인이 나타나 말을 걸면 무서워서 도망을 쳤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말 한마디 한 것 가지고 며칠 보위부에 불려다니면서 비판서를 써야 할 테니 말입니다.
저부터도 그랬습니다. 제가 1990년대에 우리 대학에 유학 왔던 중국 처녀를 어떻게 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알았다는 게 별거 아니고 대학 무도회에 나갔는데 외국 유학생들도 거기 와 있더군요. 이 외국 유학생들이 북한 학생들하고 춤을 추고 싶어 하는데, 말을 걸면 우리 대학생들이 몽땅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춤 한번 추고 걸리면 곤욕을 치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허나 새나 죽이겠다고 해도 무시하고 탈북한 사람 아닙니까. 그때도 쪽팔리게 도망을 치긴 싫고, 또 춤 한번 췄다고 죽이기야 하겠나 하는 배짱도 있고, 대학 때 배운 중국어도 실전에서 한번 써보고 싶기도 해서 중국 아가씨와 춤을 추었습니다. 옆에 친구들이 말리는데도 말입니다. 중국말로 이름도 서로 물어보고, 고향도 물어보고 이러면서 한 30분 춤추었는데, 그날 명절이 돼서 그런지 이상하게 이후에 보위부에서 찾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며칠 뒤에 대학에서 공부 끝나고 친구들과 내려오는데 길에서 이 아가씨 딱 만났습니다. 이 여잔 반가우니까 내 이름 부르며 손 흔드는데 제가 무서워서 대충 건성으로 손을 한번 들어 아는 척하고 발걸음 재촉해 급히 그 자리 벗어났습니다. 그때 보위부보단 그 아가씨가 입은 바지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바지인지 빤쯔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게 아니겠습니까. 허벅지 다 내놓고 빤쯔 같은 옷 입은 외국 여자가 수백 명이 우르르 내려오는 그 길에서 백주 대낮에 내 이름 부르며 달려와 손목을 잡을 기세인데 어찌 머리카락이 쭈뼛 서지 않겠습니까. 수백 명이 몽땅 신기해서 멈춰 서서 구경할 텐데, 이건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이번이야 말로 그랬다간 분명 외국 여자와 비사회주의적 행동을 했다고 신고가 들어가겠는데, 잘못하단 퇴학될지도 모르니까 도망치는 게 상책 같더라고요.
북한에서 살면 외국인이 말을 걸 땐 보위부부터 머리 속에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래도 10년 전보다는 많이 발전은 한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말을 걸면 외화상점 판매원들이 농담할 줄도 알고 말입니다. 이게 다 그새 외국과 그나마 과거에 비해 교류를 많이 해온 덕분입니다.
외국인이 외계인은 아니거든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 앞에서 차렷 자세 취하지 않았다고 버릇없다거나 질서 없다고 욕먹지 않습니다. 앞으론 외국인이 찍어 온 사진 속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껌도 씹으면서 대하는 북한 사람들을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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