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번 일요일 서울 기온이 영하 18도였는데 15년 만에 온 강추위라고 하더군요. 15년 전은 제가 남쪽에 오지 않았을 때이니 이번 일요일 추위가 제가 남쪽에서 겪은 제일 추운 날씨였다는 거죠. 제가 그날 도대체 어느 정도 추우면 최대 강추위라고 하는지 궁금해 밖에 나갔습니다. 한 5분 되니까 볼이 얼얼하더군요. 갑자기 옛날 어렸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11살부터 1시간 반 걸어가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8시 수업시간을 맞추려면 6시 20분에 집을 나서는데, 사람 없는 외진 길을 어둠 속에 40분은 가야 날이 밝습니다. 도중에 100메터가 넘는 동굴도 하나 있는데, 밤에 불도 없는 굴을 전지도 없이 지나가려면 희뿌옇게 보이는 반대쪽 입구만 바라보며 감으로 가야 합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위 그대로의 천장에선 수시로 낙석이 떨어졌고, 돌이 깔린 바닥은 물이 질벅했습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처음으로 헤치며 걸어간 날도 많습니다. 그땐 발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바람은 어찌나 심한지, 시베리아에서 거침없이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으며 등교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캄캄한 저녁이면 바람 방향이 다시 바뀌어서 또 맞바람입니다. 그런 통근길을 저는 그 철모르는 나이인 11살 때부터 6년을 다녔습니다. 그때 볼이 얼어서 뚝 떨어지는 느낌, 이번 추위에야 그 느낌을 다시 받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추위는 여전했습니다. 바람에 창문이 윙윙 우는, 물이 쩡쩡 얼어붙는 고층 교실에서 난방도 난로도 없이 8시부터 1시까지 세 강의를 앉아 들어야 했습니다. 필기를 하다보면 꽁꽁 언 책상 위에 쓸리는 새끼손가락은 동상을 입습니다. 지금도 겨울이면 새끼손가락이 얼얼합니다. 남자들은 바지 안에 내복이라도 껴입지만 여학생들은 바지도 입지 못하게 하고 얼음 어는 교실에 5시간을 앉아있게 했으니 얼마나 추웠을까요.
기숙사도 물이 얼긴 마찬가지라 잘 때는 동모를 쓰고, 솜옷을 입고, 두터운 버선까지 신고 이불을 뒤집어씁니다. 바람만 피할 뿐이지 사실상 밖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배고픈 고생을 하다보니 사실 추위는 둘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대학생활을 6년이나 했습니다. 저만 그런 고생을 한 건 아니고 당시 북에서 대다수 대학생들이 겪었던 일이죠.
한 겨울에 공사판에 끌려간 일도 많은데 한번은 대동강 흐름 정리 공사를 한다며 두 달을 수업에서 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상류에서 거침없이 내려오는 강바람도 정말 매섭습니다. 허허벌판에서 하루 종일 함마로 언 땅을 까내는데, 흙은 밤톨만큼도 뜯기지 않습니다. 최고 대학을 자처하는 김일성대 학생 수백 명이 두 달 동안 벌판에서 꽁꽁 얼면서 함마를 두드렸지만 겨우 트럭 몇 대 분의 흙밖에 파내지 못했습니다.
봄에 과제를 달성 못해 돈을 엄청 모아 엑스까또르(굴착기)를 불러 일시키니 5분 만에 한 트럭분 흙을 파내더군요. 그걸 보며 느꼈던 저의 황당함과 분노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간을 하찮은 싸구려 소모품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그 체제에 대한 분노는 저를 탈북의 길에 오르게 만드는데 적잖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탈북할 때도 얼음이 언 두만강을 기어 넘기도 했고 눈을 파내고 그 안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북에선 그렇게 추운 고생을 많이 했던 저이지만 남쪽에 와서 10년 만에 체질이 확 변했습니다. 뜨뜻한 사무실과 집에서 일하고 지하철로 오가니 추위를 느낄 새가 없습니다. 물이 어는 방에서 6년을 살았던 제가 이제는 방 온도가 20도 아래로만 내려가면 춥다고 그럽니다. 밖으로 나가도 춥습니다. 북에선 두꺼운 동모를 귀 덮개까지 내려 쓰고 목도리로 다시 입과 코를 가려 눈만 내놓고, 내복은 몇 벌씩 껴입고, 양말도 2~3개는 기본이고 또 동화까지 신고 밖에 나서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는 모자는 없고 내복도 하나씩 입고 양말 한 개를 신고 구두만 신고 다닙니다. 심지어 겨울에도 팬티에 바지 하나만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춥지 않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저도 이제 다시 옷을 껴입으려니 또 불편해서 못 견딥니다. 밖에 나가 제가 "어 춥다" 하면 사람들은 "추위에 단련이 된 사람일 텐데 이것도 춥냐"고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엔 추위란 것은 과거 단련이 소용이 없나 봅니다.
이런 삶을 살게 된 제가 요새 북한 티비를 보니 정말 가슴 아픈 장면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이 한 겨울에 숱한 사람들을 백두산에 내몰아 함마로 언 땅을 까게 합니다. 제가 과거 느꼈던 그 고생을 저보다 10년, 20년 뒤에 태어난 청년들이 고스란히 되풀이합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게 어떤 일인지 압니다. 얼마 전 군인들이 장마 속에 물에 들어가 인간 다리가 되는 모습을 방영하면서 청년 영웅이라고 춰주더군요. 저희들도 중앙방송 기자들이 온다는 바람에 얼음을 까고 강물에 들어가 흙을 파내는 연극도 해봤습니다. 20여 년 전에 먼저 그런 경험을 해봤고 지금은 민주주의 세상에서 사는 선배로써 여러분들에게 전합니다.
여러분은 청년영웅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아니, 노예는 배불리 먹이기라도 했고 재산 취급이나 받았지, 한 겨울에 백두산에 내몰리는 여러분은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김정은에겐 외국에서 거금을 주고 사온 애완견이 여러분보다 몇 천배 소중할 겁니다. 김정은이 한 겨울에 백두산에 내몰거들랑 한 마음으로 생각하십시오. "너나 해라."
김정은이 한 겨울에 차디찬 날바다에 내몰아도 속으로 한 목소리로 외치십시오. "너나 해라." 충성은 사람 취급 받는 세상이 오면 그때 가서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바치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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