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경매 사이트에서 팔리는 공화국 영웅 훈장

1996년 9월 강릉에서 발생한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우리 군에 사살되거나 자폭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공작원 25명에게 추서된 것으로 보이는 훈장.
1996년 9월 강릉에서 발생한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우리 군에 사살되거나 자폭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공작원 25명에게 추서된 것으로 보이는 훈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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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초 북조선 신문 방송들에선 비참한 전 소련 공산당원들의 신세를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그때 김대 다녔는데 관련 기록영화도 봤고, 중앙당에서 강연 내려와서 사회주의가 붕괴되면 여기 앉아있는 김대 졸업생들부터 교수대에 오른다면서 비장하게 소리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소련이 붕괴된 뒤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삶에 내몰리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를 들기 위해 각종 훈장이 시장에서 헐값에 팔리고 심지어 소련영웅이 자기 영웅메달까지 팔아먹었다는 것을 자주 언급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련은 붕괴됐으니까 영웅 메달이 팔렸다 치고, 붕괴되지 않은 북조선의 공화국 영웅메달이 지금 해외 경매시장에서 팔리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공화국 영웅 메달이 팔릴 정도니 다른 훈장과 메달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먹고 살기 힘드니 자기가 받은 훈장과 메달을 중국 장사꾼들에게 다 팔아먹은 모양입니다.

하긴 뭐 훈장 아무리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봤자 이제는 그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훈장을 많이 받으면 육백에 육십이 보장됐지만, 이젠 그게 없어진지도 이십년 가까이 됩니다.

또 먹을 것을 못주니까 무슨 일이 끝나면 훈장이라도 바가지로 푹푹 나눠줘서 바가지 훈장이란 소리까지 나왔는데 그거 집에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야 배를 채우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됩니다. 녹이 쓴 훈장 안고 굶어죽기보단 그거 팔아서 한 끼 주린 배를 채우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훈장들이 어떻게 팔릴까요. 인터넷에는 이베이라는 아주 유명한 세계적인 경매 사이트가 있습니다. 물건을 하나 올리면 컴퓨터로 보고 미국에서도 살 수 있고, 중국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단 가격을 가장 높이 부른 사람이 삽니다.

여기에 공화국 영웅메달이 올라있는데, 2500딸라입니다. 그것만 있습니까. 김일성훈장도 팔립니다. 가짜인가 해서 사진을 자세히 뜯어봤는데 분명 진품이 맞습니다. 이베이가 북조선에서도 다 보는 사이트니깐 말해도 상관없겠죠. 김일성훈장의 뒤에 넘버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137호입니다. 137번째로 김일성훈장을 받을 정도면 어느 정도 급이 있는 간부였을텐 데 말입니다.

김일성훈장도 공화국 영웅메달과 마찬가지로 2500딸라에 팔립니다. 제 한달 월급에 조금 더 보태면 공화국 영웅메달과 김일성훈장 둘 다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거 사서 가슴에 달고 북한에 들어가면 어디든 돌아다녀도 감히 누구도 단속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북에 공화국영웅에 김일성훈장까지 받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겐 말도 붙이기 힘들죠.

게다가 제가 남쪽에 와서 잘 먹다보니 배도 나오고 해서 비싼 옷 입고 돌아다니면 아주 높은 간부인줄 알 것 같습니다. 다른 훈장과 메달은 너무 많아서 정말 똥값입니다. 국기훈장 3급이 20~30딸라 정도고 대표적인 바가지 메달인 공로메달과 군공메달도 20딸라 정도에 팔립니다.

여기 경매사이트에선 훈장 급수가 높다고 해서 비싼 것이 아니라 얼마나 희귀한 것인가 하는 것을 따져서 값을 쳐줍니다. 군대들이 모자에 붙이는 모표 있죠, 그것도 한 개에 15딸라에 파는데 메달 값과 비슷한 셈입니다.

경매사이트에서 제일 비싼 북조선 물품이 뭔가 살펴봤더니 1959년에 발행된 50전, 1원, 5원, 10원 지폐 세트가 무려 1만 달러나 합니다. 공화국영웅 메달과 김일성 훈장에 비하면 네 배나 비싼거죠.

희귀 번호의 지폐도 비싸게 팔립니다. 1998년도에 발행된 번호가 FF666666인 500원짜리 돈은 무려 6888딸라에 이릅니다. 그 외에도 JJ222222, CC555555 요런 좋은 번호의 돈들이 많이 팔리는데 대체로 300딸라 정도 합니다.

요거 보면 신기하게도 북조선 좋은 번호의 돈은 다 뽑아온 것 같아서 의문이 생길 법 합니다. 이건 국가 차원에서 가능하지 개인이 이렇게 좋은 번호만 다 빼오기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듣기론 정찰총국에서 이런 돈 장사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권력 가진 자들이 각종 자원을 외화벌이로 팔아먹다 못해서 나중엔 일렬번호가 좋은 돈까지 뽑아다 해외에 팔아 딸라를 챙기니 참으로 분한 일입니다.

위에서 그러는데 여러분들도 못할 것이 뭡니까. 경매 사이트엔 별것 다 나와 있는데, 초상화 쌍상이나 태양상이 30딸라 정도에 팔립니다. 누군가는 라선시 차 번호판까지 떼서 팔았네요. 이 번호판이 250딸라에 팔리는데, 영웅메달 얻기보단 차 번호판 10개만 떼서 넘기는 게 훨씬 쉽겠네요.

1950년대에 북조선에서 동유럽에 있는 지인에게 써 보냈던 편지도 올라있는데, 골동품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는지 800딸라나 합니다. 옛날 편지, 우표, 옛날 군복 이런 것도 다 바가지 메달보단 더 가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북조선 물건들이 나오긴 많이 나왔지만 잘 팔리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많이 나오면 더 팔리지 않겠죠. 영웅 메달을 몇 백 딸라에 팔겠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는 날이 머잖아 올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나라가 망하면 영웅도 훈장을 장마당에 파는 신세가 된다고 선전하던 간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분명히 아직 망하지는 않았는데, 김일성훈장과 공화국영웅 메달이 해외에 나와 헐값이 팔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