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 한 마음으로 지켜낸 음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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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음주 월요일이 음력설인데 토요일까지 붙여서 놀면 여러분들은 나흘은 쉬겠네요. 여기 남쪽의 대다수 근로자들은 닷새를 쉽니다. 남쪽에는 대체휴일제도란 것이 있는데, 명절과 주말 휴일이 겹치면 그 대신 다른 날 하루를 더 명절로 지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남조선이 생지옥처럼 선전하지만 그런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1주일에 닷새만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거기에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더해 일년 중 66일을 쉽니다. 이렇게 일하고 연 평균 3만 딸라 정도 임금을 받습니다. 거의 쉬는 날하고 일하는 날이 비슷한 겁니다. 이렇게 일하고도 연 평균 3만 딸라 정도 임금을 받습니다. 물론 이것보다 좀 적게 쉬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임금이 적은 사람들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이만해도 북한 인민들이 들으면 많이 놀라실 겁니다. 거긴 이틀 노는 제도도 없고, 공휴일도 훨씬 적습니다. 게다가 설날부터 거름 전투하라며 재래식 화장실을 푸게 하니 무슨 명절 분위기가 나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북에서 양력설이 더 중요한 명절인지 음력설이 더 중요한 명절인지 몰랐습니다. 명절 공급은 양력설에 받았으니 설날 하면 양력설 1월 1일로 생각하며 컸는데 나중에 음력설을 중요하게 여기더군요. 남쪽에 와보니 여긴 진짜 설날이 음력설로 3일 쉬고 양력설은 하루 쉽니다. 세계적 보편성을 살려 양력설은 정부의 공식 행사를 치르는 날로, 음력설은 민족정서를 살려 부모에 대한 효도, 조상 숭배의 정신, 가족 친목의 시간으로 활용합니다.

음력설이면 남쪽에선 2~3천만 명이 고향을 다녀옵니다. 흔히 외국에선 중국을 두고 음력설에 귀성전쟁이 벌어진다고 하는데, 사실 중국이 전쟁이라면, 남쪽은 결사전쯤 된다고 봐야 하겠네요. 왜냐하면 중국은 인구 13억이니 왕복으로 치면 20억 명이 넘게 움직이긴 하지만, 설 연휴가 일주일이나 되고 또 땅도 넓습니다. 좁은 땅 안에서 수많은 인구가 단 시간 동안 오고가는 것을 따지면 남쪽이 중국보다 훨씬 더 치열합니다. 물론 남쪽은 교통수단이나 도로가 잘 돼 있어 전쟁을 치르는 느낌은 나지 않습니다.

음력설 말이 나온 김에 북에서 배워주지 않는 음력설의 역사도 말씀드릴까 합니다. 한반도에서 양력설을 처음 쇠기 시작한 것은 1896년 대한제국 시절입니다. 전해인 1895년 을미개혁을 선포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1896년부터 건양이란 연호를 사용하고 양력 1월 1일을 공식적인 설날로 지정했습니다. 건양이란 새롭게 양력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연호를 만드는 봉건 왕조의 행태를 따라 배워 북한도 지금 주체란 연호를 만들어 쓰죠. 그럼 김정은도 국방위원회 위원장 어쩌고저쩌고 하지 말고 그냥 노골적으로 정은황제로 하지 말입니다.

어쨌든 옛날엔 고종황제가 아무리 양력을 쇠라고 해도 궁중 대신들부터 따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양력설을 쇠는 척 하고는 진짜 설날 제사는 음력설에 골방에서 지냈습니다. 대신들이 이러니 지방에서는 양력설을 무시했죠. 일제 식민지 때엔 조선총독부가 양력설을 쇠라 이렇게 명령했는데, 그러니까 더욱 부작용이 났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 부르면서 음력설을 마치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고수했습니다.

해방 후 남쪽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까지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돈 벌려고 도시에 온 사람들은 음력설에만 시골에 있는 집으로 갔는데, 고속도로와 국도가 차로 메워지는 1970년대에 민족대이동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1985년에 어쩔 수 없이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루만 놀게 하다가 1989년에 가서야 음력설을 설이라 명명하고 3일간의 휴무를 주는 대신 양력설엔 하루만 쉬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이걸 북한이 따라했습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김일성도 음력설 쇠는 풍습을 '봉건잔재'로 규정했고 1946년에 이미 양력설을 공식적인 설로 선포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 인민들도 여전히 음력설에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그걸 단속하고 또 단속해도 없어지지 않으니 결국 1989년 두 손을 들고 남쪽을 따라 음력설을 부활시켰습니다.

과거에 남과 북은 서로 따라 배우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음력설은 북한이 남쪽을 따라했지만, 주민등록제도 같은 건 남쪽이 북한을 따라했습니다. 북한은 1964년부터 공민증이란 것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을 다 신원 등록했습니다. 남쪽은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했던 이른바 김신조 사건 이후에 18세 이상 국민 개개인에게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 주민등록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어찌됐든 음력설은 남북의 인민이 서로 교류도 없었던 상황에서도 어떤 통치자의 지시와 통제에도 꿋꿋이 버티며 끝까지 함께 지켜낸 우리 민족의 명절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같은 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는, 핏줄 속에 공통으로 흐르는 고유의 민족 정서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민족인데, 지금 김정은은 북한에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점차 남북을 갈라놓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시인데, 일제 잔재를 없앤다는 구실로 평양 시간을 남쪽보다 30분이나 늦게 했습니다. 김일성 시절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김일성은 그래도 통일을 생각하면 시간을 고칠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김정은은 김일성의 유훈도 어겼습니다. 통일하면 자기 독재체제가 무너질 것을 아니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른 시간대에서 딴 나라로 살고 싶다 이런 의도입니다.

하지만 한 세기 넘게 쇠고집으로 음력설을 끝까지 지켜낸 우리 민족에게 김정은의 이런 얄팍한 속셈이 통할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