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해외에 진출한 북한 식당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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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에 네덜란드에 북한식당이 하나 생겨났습니다. 유럽에 북한식당이 생겨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는 이미 북한식당들이 참 많습니다. 얼추 한 100개는 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아무 식당 가 봐도 분위기는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평양 옥류관 국수, 평양술 이런 북한에서 만든 음식이 좀 나오고, 그리고 특징적인 것이 북에서 온 처녀들이 한복을 잘 차려입고 한쪽에서 춤과 노래를 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럽에 생겼다는 식당은 식탁을 고작 4~5개 놓고도 북에서 온 처녀들이 4명이 서서 춤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식당 소속은 다 다릅니다. 무력부 총정치국 보위부 이런 힘 있는 기관은 물론이고, 체육성이나 봉사총국 이런 데서도 외화벌이 위해서 해외에 식당을 저저마다 차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식당이 중국에 있다고 해서 거기 중국 사람이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캄보쟈에 있다고 해서 캄보쟈 사람들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음식이 맞지 않아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도 너무 비쌉니다. 식당들을 찾는 사람들의 아마 80~90%는 한국인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쪽이 잘 사니깐 여기 사람들 해외에 관광 많이 갑니다. 1년에 한 1200~1300만 명이 관광으로 해외에 나가는데,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을 갔다가 거기 수도에 있는 북한식당 들려서 북쪽 음식 먹어보고 오는 겁니다. 북한식당의 음식은 비싼 편이지만 한국 사람들이야 뭐 돈이 있으니 가서 먹죠.

식당에 음식차림표를 보면 보통 메뉴가 한 100가지가 있는데, 싼 것, 그러니깐 김치 같은 것은 작은 접시에 발라주면서 3딸라를 받고, 옥류관 쟁반국수는 10딸라 정도, 단고기 요리 이런 것은 20~30딸라씩 합니다. 술도 들쭉술이니 인삼술이니 한 병에 몇 십 딸라가 됩니다. 가서 좀 혁띠 풀고 먹었다 하면 100딸라가 넘습니다. 한 끼에 그 정도는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싸기로 손꼽히는 서울에서도 진짜 비싼 가격인데 하물며 물가가 싼 동남아 사람들은 혀가 나와 갈 엄두가 안 나겠죠. 한국인들만 항상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비행기 타고 어쩌다 해외 나와야만 갈 수 있는 거니 한 번씩 가보는 겁니다.

저도 베이징, 연길, 방콕에 있는 북한식당에 가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탈북자가 아닙니까. 그것도 그냥 조용히 사는 탈북자가 아니라 언론에 있다보니 얼굴이 많이 알려진 사람이죠. 북한식당에 있는 보위부 간부가 인터넷으로 남쪽 뉴스를 살펴본다면 저 정도는 알아볼 지도 몰라서 갈 때는 좀 조심히 갔습니다. 2006년에 베이징에 있는 해당화 식당에 딱 가서 저녁 먹는데, 봉사원이 와서 "뭐 드시겠습니까" 하고 평양말로 이래저래 말 거는데, 아, 참 제가 평양에 오래 살았지 않습니까. 평양 말이 들리니 그만 대답하면서 저도 모르게 평양 말투가 나가더라고요. 그때는 평양을 떠난 지도 몇 년 안됐을 때입니다. 말하고 나서 아차 하고 혀를 깨물며 봉사원 인상 살폈더니 아닌 게 아니라 "너 좀 수상한데"하는 눈치였습니다.

하, 참 이거 말투가 문제입니다. 지금도 서울에서 여기 토박이들하고 있으면 서울말을 쓰는데, 탈북자들하고 같이 섞여 말하면 저도 모르게 고향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나가거든요. 여기 온지 10년 넘었는데도 말입니다. 아무튼 그담부터 밥 먹으며 그 봉사원 동무가 슬금슬금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그 처녀가 저기 무대 뒤에 숨어서 손님들 살펴보고 있을 보위부 동무에게 가서 "보위원 동지, 저기 평양말 쓰는 이상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러고 신고하면 낭패가 아닙니까.

매 식당마다 다 보위원이 한명씩 파견 나옵니다. 식당 종업원들 저녁이면 보위원 앞에서 그날 있었던 사실 보고하고 생활총화도 합니다. 해외 식당에 나오는 보위원은 토끼동산의 호랑이죠. 처녀들이 쉬는 날에 외출 좀 하려고 해도 보위원 승낙을 받고 단체로 나가야 합니다. 위에다 보고하는데 따라 처녀들 평양에 쫓겨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처녀들이 보위원한테 잘 보이려고 별 수단 방법 가리지 않습니다. 보위원은 해외에 나와 하는 일도 별로 없이 폼 잡고 살지, 아첨부리는 고운 처녀들 수십 명을 거느리고 있지, 뇌물로 딸라도 두둑하게 깔지, 하니 아마 죽을 때까지 여기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 좋은 자리엔 본국에서 보위부에 있는 간부집 자식들이 엄청 피터지게 경쟁하겠죠. 아마. 그렇지만 늘 긴장은 하고 있을 겁니다. 자기가 거느리고 있던 여성 중에서 한명이라도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냅다 뛰면 그 보위원 목이 날아나고 평생 딱지가 붙겠죠.

아무튼 그때 그 봉사원 동무는 베이징에 오래 나와 자본주의 물이 많이 들어있어서 그랬는지 혁명적 경각성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저 잡으면 중앙당에서 칭찬 많이 받았을 건데 말입니다. 물론 신고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 같은 요시찰 인물은 다행히 몸 성히 식당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와서 담배 한대 피워 물고 뒤따라 나오는 사람 없는지 살피고 지나가는 택시 잡고 호텔로 돌아왔죠.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 먹긴 해도 베이징 식당 음식 맛은 괜찮았습니다. 저는 옥류관 랭면이랑 아무튼 서울엔 없는 평양 음식만 시켰는데, 정말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보니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평양 말투만 튀어 안 나와도 오래 앉아 즐기는데 아쉽습니다.

또 몇 년 전에 방콕에 있는 평양식당에 갔습니다. 베이징처럼 괜찮은 추억이 생길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거기 방콕은 제 기대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방콕 갔던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시간이 벌써 다 됐네요. 북한식당 이야기를 다음 주에 계속 이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