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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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설날 잘 보내셨나요? 저도 이번 설엔 나흘 놀았습니다. 보통 설 연휴엔 서울 시내는 조용하고 늘 차가 넘치던 도로도 한산하기만 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고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가 시작과 함께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차로 꽉 막힙니다. 도시에 살다가 부모님이 사는 고향에 모여 설날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날만큼은 농촌집에 사는 연세 드신 어머님을 찾아 서울에서 공무원을 하는 첫째 아들도, 부산에서 대학 교수를 하는 둘째 아들도, 대구에 시집간 맏딸도 다 모여듭니다. 자식들이 또 자기 자식들도 데리고 오겠죠? 그러면 농촌집에 모처럼 3대,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손녀들까지 수십 명이 다 모여 명절을 보냅니다. 이런 풍경은 매년 음력설과 추석에 반복이 됩니다.

남쪽도 1960년대까진 농촌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나중에 산업화가 되면서 농촌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옮겨왔습니다. 아무래도 농촌엔 일자리가 없지 않습니까. 1960년에 남쪽 인구가 2,500만 명 정도 됐는데, 서울 인구는 이중 10% 정도인 250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980년에 나라 인구가 3,700만 명인데 서울에 인구의 25%에 가까운 850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1960년부터 불과 20년 만에 250만 명이던 서울 인구가 850만 명으로 600만 명 넘게 불어났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가 바로 한국의 산업화시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서울의 면적은 평양보다도 더 작아 사람이 몰려 사는데 한계가 있으니 지금은 1,000만 명 정도에서 더 늘어나지 못합니다. 그래도 인구의 5분의 1이 서울에 사는 겁니다. 서울 주변이라도 와서 살겠다고 몰려와서 경기도 인구도 1,000만 명이 넘습니다. 남쪽에 가뜩이나 좁은데 서울과 경기도에 다시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 삽니다. 북한으로 치면 평양하고 평안남도에 북한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셈이죠. 그러니 숨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와서 서울과 경기도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를 보면서 숨이 막혔습니다. 뭐 지금은 습관돼서 그러려니 하는데, 몇 년 전에 홍콩에 가봤을 때 또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홍콩의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한국보다 아파트가 훨씬 더 빽빽하게, 또 높이 들어서 있는데 50층은 기본인 것 같더라고요. 좁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 살면 아파트 값도 비싸게 되겠죠. 서울의 아파트 값은 평방미터당 몇만 달러씩 하고 홍콩은 세계적으로 집값이 비싼 도시입니다.

반면에 저기 전라도 경상도 같은 농촌 지역엔 사람들이 없어 텅텅 비어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힘든 농사를 짓지 않고 회사에서 일하려 합니다. 좋은 학교, 영화관, 극장, 대형 병원, 식당이 도처에 있는 도시에서 살면 얼마나 편합니까. 농촌엔 그런 편의시설이 거의 없죠. 물론 남쪽은 농촌이라도 평양보다 훨씬 더 살기 좋습니다.

요새 남쪽 농촌에 가면 젊은이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마을 청년회 회장이 60살인 곳이 허다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아이들도 태어나지 않아 학교들도 문을 닫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거의 대다수가 농촌을 떠나서 부모님의 뒤를 따라 농사를 짓는 남자는 장가를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남아 즉, 필리핀이나 베트남 같은 곳에서 젊은 여성들을 데려와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농촌에 가서 아이들을 보면 혼혈아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남쪽이 뭐가 저리 힘들게 사냐고 혀를 찰 수 있겠지만, 사람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와 이동의 권리가 보장되면 어느 나라나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웃 중국도 똑같습니다.

남쪽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겪었던 산업화 과정을 중국은 1990년대 이후에 겪고 있습니다. 중국도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와 도시들이 급격히 팽창합니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라 농촌 사람이 도시에 오면 거주 호구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 몰려오는데, 지금 중국은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런 도시화 과정이 계속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북한은 강제로 인민의 삶을 통제하니 농촌 사람은 농촌을 벗어날 수 없고, 또 대개 태어난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농민이 된 사람은 농민이 되고 싶어서 됐습니까. 평양에 가서 간부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북에선 그런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남쪽은 그걸 허용해 준 것입니다.

말하자면 양강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사람도 평양 대학에 와서 공부할 수 있고, 평양에 있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그럼 누가 양강도에서 살겠습니까. 다 공부 열심히 해서 평양에서 일자리를 얻고 평양 처녀랑 결혼하려고 하지 말입니다. 이게 바로 자유 세상과 독재 체제의 차이입니다.

북에선 마음 드는 곳에 가서 살고, 직업도 마음대로 선택하는 날이 잘 상상이 되지 않으시겠지만, 만약 북한에도 자유 민주주의 세상이 오면 남쪽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아마 남쪽에서 20년 정도 걸린 도시화 과정이 북에선 10년도 채 걸리지 않지 않겠냐 싶습니다. 그만큼 북한 사람들은 억눌려 살아왔거든요.

이제 설도 지났고, 2.16일까지 마저 지나면 북한 인민은 또 내몰리게 될 겁니다. 5월 당 대회까진 100일 채 안 남았으니 70일 전투 같은 것을 또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맨날 전투를 한다는데, 사람만 죽어갔지 경제 목표라는 고지는 과연 한 개나 점령한 것이 있습니까. 노동당이 시키는 전투를 쭉 돌아보면 늘 그렇게 패배하는 전투뿐이지 않습니까. 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쪽처럼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