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19살 때였던지 20살 때였던지 아무튼 대학 2~3학년 때에 주체철학이란 과목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 과목에 공산주의 이론을 배우는 수업도 있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북에서 배운 공산주의를 요약하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 받는다" 이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아무리 교수가 장황하게 이야기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14살 때부터 금지도서로 지정된 맑스의 자본론을 몰래 구해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자본론을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공산주의 이론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 시간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 했는데, 가령 이런 사례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체육선수가 국제대회에 나가 1등 했다 칩시다. 세계 1등을 하려니 얼마나 피타게 노력했겠습니까. 그런데 농촌에서 적당히 시간 때우며 일하고 일찍 장가를 가서 아이를 다섯씩이나 낳은 농민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에 가면 이 농민이 자신보다 열배는 더 노력한 선수보다 최소한 다섯 배는 더 많이 공급받는 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누가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 1등이 되겠다고 하겠습니까."
김일성대 철학교수면 그래도 제일 논리가 세다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 교수가 하는 대답이 "그래서 농민의 사상의식을 개조해서 공산주의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머리가 비상한 사람도 있고, 운동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고, 다 다릅니다. 그런데 수재와 머리 나쁜 사람이 똑같이 노력해서 똑같이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제가 보건대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그때쯤에 북에서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다"는 구호가 나왔습니다. 지금도 농촌들에 가면 그 구호가 죽지 않고 붙어있는 것을 보면 참 생명력이 긴 구호입니다.
그런데 그 구호가 나오니 농민들이 뭐라고 했냐면 "내 포전이면 생산물을 내 마음대로 해야지, 쌀은 군량미니 뭐니 다 걷어가면서 농사지을 때만 내 포전이냐"고 수군거렸습니다. 당연히 맞는 말이죠.
나중에 농장밭에 양곡이랑 남새랑 훔치려 가는 사람들이 "농장포전은 내 포전이라면서"하고 자기 정당화를 하기도 했죠.
공동 생산물이란 것은 주인이 없으니 개인 텃밭과 소출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공동 생산물은 수요 조사받고 분배받는 복잡한 절차 없이 먼저 훔쳐가는 사람이 더 많이 가집니다.
그때쯤에 소련이 붕괴되기 전 고르바쵸프가 "소련 생산물의 삼분의 일은 도둑질 맞는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걸 듣고 저는 "아, 우리도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마 이러저런 과정을 보고 듣고 하면서 저는 그때쯤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란 것은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있었다는 이 사례가 대표적이지 않겠나 싶습니다. 어느 미국 교수의 과목은 한 학기에 시험을 네 번 칩니다. 그런데 첫 시험을 쳐보니 당연히 누구는 점수가 높고, 누구는 점수가 낮게 나왔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누구한텐 유리하고 누구한텐 불리하다 이런저런 불만을 제기했답니다. 그러자 그 교수가 제안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시험점수 평균을 내서 똑같이 주겠다"하니까 학생들이 좋다고 했대요.
두 번째 시험을 치니 학급 평점이 4점인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모든 학생들에게 4점씩 주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을 치니 평균 점수가 3점이 나왔습니다. 네 번째 시험을 치니 평점이 낙제가 나왔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차피 남하고 나눠먹는 일이 되는데, 누가 열심히 공부 하겠습니까. 바로 이런 것이 공산주의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공산주의 논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인간을 개조해서 공산주의적으로 만들겠다고 하죠. 아마 그 교수가 공산주의자였다면 이랬겠죠. 너희들의 사상의식을 개조해서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점수가 낮은 학생은 처벌을 해야겠죠. 그러면 독재가 나옵니다.
사람들을 공산주의적으로 개조한다고 했지만 북한 통치자들을 보십시오. 간부가 되면 잘 살기에 정신없고, 혁명을 했다는 김일성부터 자손을 대대로 왕 노릇 시키려 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공산주의자인척 하면서 지도자 행세를 한 것이죠. 김정일 시대에 와선 아예 공산주의란 단어도 삭제했죠. 이젠 더 이상 속이지 않고도 노골적으로 독재를 해도 되겠다 싶으니 그런 겁니다.
북한 사람들은 처음엔 멋모르고 공산주의를 한다니까 그게 좋은 줄 알고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그 실체를 깨달았지만, 어쩝니까. 너무 늦었습니다. 불평을 하면 잡아 죽이니 말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을 때 교수의 눈빛이 달라졌고, 동창생들이 두려운 눈길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감히 공산주의에 토를 다니까 사상이 불량하다고 찍힐 수 있는 겁니다. 그때 저는 이미 쟤는 겁 없이 말하는 아이로 알려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학급 제대군인이 저를 보고 "너는 앞으로 큰 충신이 되던가 아니면 큰 역적이 될 거다"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중에 중앙당 고위 간부 사위가 된 그 사람은 저를 잘 봤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에 와서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면서 왕조를 복구시킨 김 씨 일가를 비판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북한에서 역적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의 말은 거꾸로 들으면 제대로 듣는 겁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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