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 방송을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 때도 많았지만, 이번 주는 하늘이 무너져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이번 수요일부터 제가 일하는 서울 중심 동아일보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호텔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바둑을 두는 알파고란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과 세계 바둑 최고수의 대결이 열립니다.
마침 인공지능을 만든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구글이 세계 최고로 꼽아 대결을 신청한 바둑 고수가 이세돌이라는 33살 젊은이인데, 10년 동안 바둑계에서 신처럼 인정받는 한국 청년입니다. 이 인간 바둑의 신과 인공지능이 상금 100만 달러를 걸고 5전 3승제 시합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한번씩 5일 동안 겨루는데, 먼저 3번 이기면 상금을 다 갖는 거죠.
바둑이 뭔지 여러분들도 들어는 봤을 겁니다. 저도 할 줄 모릅니다. 대신 북한에선 장기는 아주 많이 두고 저도 좀 했는데, 남쪽에 오니 시간도 없고 해서 장기를 놀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둑과 장기는 하늘땅 차이입니다. 장기가 갖고 있는 수가 10의 220제곱이라고 하는데, 바둑은 10의 360제곱이라고 합니다. 10의 360제곱이면 우주에 있는 전체 원자수보다 훨씬 더 많다는데 한마디로 바둑의 수를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지구 장기 최고수는 컴퓨터입니다. 컴퓨터가 장기 최고수를 꺾은 게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1996년에 16년 동안 서방의 장기인 체스의 우승을 도맡아 온 러시아 사람을 컴퓨터가 이겨 버렸습니다. 그때도 세기의 체스 대결이라고 했죠. 이제는 아무리 실력이 좋은 사람도 노트북에 깔아놓은 장기 프로그램조차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그래 장기는 바둑에 비해 훨씬 쉬우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바둑 최고수를 넘어서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까지 지녔습니다. 그래도 세기의 대결로 불린 이번 인간 대 인공지능 바둑 경기 시작 전에 대다수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도 사람은 못 넘는다. 왜냐면 사람에겐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직관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둑의 신 이세돌도 "아직은 기계가 사람을 못 넘는다. 다섯 번 중에 한번이라도 지면 나는 진거다"고 했습니다. 직관이란 게 쉽게 말하면 순간적인 감이겠죠. 대신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나은 점도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학습해 기억하는 것을 몇 시간이면 다 기억합니다. 또 감정도 없어 흔들리지도 않고, 체력이란 것이 없어 지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세돌의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 판에서 그가 졌습니다. 그 경기를 지켜보던 바둑의 고수들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실수하면 곧바로 만회할 줄도 알고, 제일 놀라운 일은 판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하고 의외로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과감한 승부수까지 걸었던 것입니다. 바둑의 신도 인공지능이 그런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허점을 찔려 당황했습니다.
목요일에 진행된 대전에서 인공지능이 또 이겼습니다. 바둑 전문가들은 왜 졌는지도 모를 정도랍니다. 다음 경기는 토요일부터 열리는데 이 방송을 하는 현재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며 정말 섬뜩한 생각을 합니다. 저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달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5년 전에 이미 세계 상식 챔피언도 이겼습니다. 사람이 모르는 상식을 인공지능은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주패도 인공지능이 더 잘 합니다. 사람이 두뇌를 쓰는 경기를 하면서 초당 100개수를 상상한다면 인공지능은 10만개 수를 계산합니다. 마지막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바둑까지 이기면 도대체 어디까지 진화할까요.
스스로 학습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인간의 일자리는 없어지게 됩니다. 제가 기자인데, 벌써 기사를 쓰는 인공지능이 나왔습니다. 아직 분석이 필요한 복잡한 기사는 못쓰지만, 간단한 경기 기사나 주식 기사는 아주 제대로 씁니다. 중국에선 아름다운 처녀 얼굴을 한 로봇 방송원이 그날 날씨를 알려줍니다. 앞으론 의사도, 변호사도, 은행원도 인공지능에 밀려 다 없어진답니다.
이미 인공지능은 실생활에도 들어왔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스피커가 집집마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은 사실은 그 스피커 목소리가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외부 소독을 할 예정입니다" 이런 식의 여자 목소리가 나오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거 로봇이 글을 읽는 겁니다. 글만 써주면 알아서 발음하는 거죠.
제가 쓰는 아이패드라는 스마트 기계는 저와 이야기를 합니다. 뭐든 물어보면 대답을 합니다. 제가 "오늘 날씨"하면 "오늘 날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하고 여자 목소리로 대답한 뒤 화면에 오늘 날씨를 띄웁니다. 물론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답답해서 "이 바보야"하면 "저는 열심히 하는데 어떻게 제게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죠"라고 답변합니다. 이런 인공지능이 이제 20살 정도에 해당하는 사고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나중에 집에 남편과 아내도 로봇이 될지 모릅니다.
퇴근하면 "수고 했어요"하고 마중 나오고 밥도 해주고, 바가지도 긁지 않고 사람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했습니다. 나아가 김정은 대신 인공지능에게 북한의 통치를 맡겨도 정말 이상적인 정치를 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날로 가는 단계인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은 내일도 계속됩니다. 최종 결과는 다음 방송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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