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에 김정은이 평양에 '려명거리'를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가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유엔에서 사상 최강도의 대북제재가 통과됐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거 해봐야 북한이 붕괴되진 않는다. 돈 좀 모자라봐야 김정은이 평양에 거리 하나 안세우면 되고, 마식령 스키장 같은 것을 세우지 않으면 된다" 이랬습니다. 그런데 돈줄을 확 막아버렸는데도 평양에 거리를 세우겠다고 하니 제 생각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생각보다 돈이 많은가 봅니다.
려명거리가 들어선다는 곳은 제가 다녔던 김일성대 바로 앞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공원의 나무 하나하나가 다 떠오르는 곳입니다. 제가 살았던 대학 기숙사촌도 려명거리 구역 설계도 안에 포함돼 있더군요. 정말 많은 추억이 깃들었던 기숙사들이 다 헐리게 되고, 다시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설계도를 보니 거기에 멋진 거리가 들어선다고 하긴 하지만, 저는 그걸 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할까 걱정입니다. 김정은이야 건설하라고 지시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그 거리를 건설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을 뜯기고, 강제노동을 해야 하겠습니까.
북한에서 원시적으로 사람이 새까맣게 매달려 아파트를 짓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이제는 기계가 설계도를 입력하면 자기가 알아서 집을 찍어내는 시대가 막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건 말로만 듣고는 잘 상상이 되지 않으실 겁니다. 기계에 모래와 콘크리트, 유리섬유를 적당히 배합해 넣으면 기계가 혼합과 몰탈 붓기를 저절로 합니다.
집 찍는 산업에서 제일 앞장선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과학기술이 발전돼 있는 선진국이 아니라 의외로 중국입니다. 중국에 있는 윈선이란 기업은 올해 1월에 집 짓는 자동기계를 이용해서 6층짜리 집도 지었고, 김정일 별장만큼 큰 2층짜리 건물도 만들어냈습니다.
기계가 지으면 사람이 짓는 것보단 재료는 60%, 공사기간은 70%, 노동력은 80%나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하루에 집을 열 채씩 찍어 냅니다. 지금은 초기 단계라 물론 기계가 짓는 집이 썩 멋있지는 않습니다만, 이것도 몇 년 뒤면 달라질 겁니다. 아마 사람이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멋있는 집을 만들지 않을까요.
재료도 적게 쓰고, 공사기간도 적게 들고, 사람도 열사람 필요한 일을 두 사람만 하니까 집 가격이 엄청 눅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성도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아무렴 북한 농촌 대다수 집처럼 토피를 쌓아서 지은 집보다야 훨씬 안전하겠죠. 이 기술이 마음에 들었던지 에집트(이집트)에서 윈선과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부터 자기 나라에 집을 2만 채 찍어달라고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렇게 집을 짓는 기계가 등장하면 인력에 의존하던 기존의 건설 회사는 망하는 곳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런 집 찍는 기계는 중국 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지금 도입해 실험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는 엄청난 혁신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집값이 싸지면, 인류의 생활방식도 확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20~30년 뒤엔 내 집을 갖겠다는 욕심이 많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다 하루 만에 집 찍는 기계로 뚝딱 원하는 모양의 집을 짓고, 몇 년 살다가 마음이 안 들면 집을 허물고 그 자재를 가져다 다른 곳에 다른 모양으로 찍어내면 됩니다. 집 모양은 수만 가지씩 찍어낼 수 있죠.
다른 나라에선 전기가 거의 안 드는 집도 찍어냅니다. 단마르크(덴마크)에서 만든 2층 집은 지붕에서 태양광을 충전하는데, 200평방미터짜리 집에 하루에 전기를 4와트만 쓰면서 따뜻하게 산답니다. 이러면 앞으론 전기도 엄청 절약하겠네요. 저는 이런 기술 발전이 북한에 있어 참 기회가 되겠다 싶습니다. 앞으로 한 10년 뒤에 통일되면 북한에는 집 짓는 기계가 전국에서 집을 찍어내는 시대도 올지 모릅니다. 집 가격도 2~3,000달러 정도에서 맞출 수 있고요.
북한은 인구밀도가 한국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통일되면 해외에 일자리를 찾아서 나갈 사람들도 많겠죠. 그러면 남쪽처럼 비좁게 아파트 단지들을 세울 필요가 없을 겁니다. 건설 일도 안 시키면 북한 사람들은 뭘 할까. 없는 일자리라도 사람에게 나눠주어 월급 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만, 요즘처럼 자고 나면 달라지는 시대엔 없어질 직업은 빨리 없어지는게 맞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북한의 도시도 전부 다시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일자리가 있고, 학교, 병원,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이 잘 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북한은 좀 다릅니다. 미래에 쓸 만한 일자리는 거의 없고, 상하수도 같은 것은 도시를 아예 새로 드러내지 않고선 다시 건설하기도 힘듭니다.
차라리 기존 도시 옆에 새 도시를 만드는 것이 더 싸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양처럼 큰 도시들은 역사성이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겠지만, 작은 도시는 새로 짓는 것이 더 비용이 적게 들 겁니다. 이 점은 한국과 다른데, 한국은 도시와 함께 쭉 발전이 돼 왔기 때문에 새 도시를 짓더라도 기존 도시엔 너무 버리기 아까운 것들이 많죠.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북한의 도시는 주변에 집 찍는 기계로 순식간에 신도시를 만든 뒤 기존의 도시는 아예 몽땅 드러내고 새로 다시 지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김정은이가 핵이니 미사일이니 이런 것을 만드는데 열중하지 말고, 집 찍는 기계나 만들거나 아님 사와서 북한의 도시와 마을을 아예 새롭게 일신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공사판을 수시로 벌여놓고, 헉헉 대는 사람들을 채찍질해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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