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점점 풀려서 어느덧 봄이 성큼 왔습니다. 남쪽은 지금 각종 꽃 축제가 한창입니다. 지난달 말부터 저기 남해바다 진해의 벚꽃축제, 화개장터 벚꽃축제, 구례 산수유 축제 이러루한 각종 이름을 단 꽃 축제들이 한창이었습니다. 남해바다하고 서울하고는 꽃이 피는 시기가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나는 가 봅니다. 지난 주말 남해에서 벚꽃축제를 했는데 이번 주말에 서울 옆 양평에서 벚꽃축제를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다음 주말엔 서울 중심부 여의도에서 벚꽃 축제가 열립니다.
남쪽의 가장 대표적인 꽃 축제가 벚꽃 축제이긴 하지만 사실 남쪽의 국화는 무궁화입니다. 그렇지만 북에선 벚꽃도 무궁화도 다 보기 힘듭니다. 이 꽃들이 일본과 한국을 상징한다면서 아예 흔적조차 지우고 싶어 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벚꽃이란 이름은 잘 몰라도 사꾸라꽃이란 것은 아주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사꾸라꽃이 바로 우리말로 벚꽃입니다. 사꾸라는 일본의 상징과 같은 꽃입니다. 사꾸라를 일본 국화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일본엔 공식적인 국화는 없습니다. 그냥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사꾸라이니까, 일본 국화로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꽃잎을 흩날리는 사꾸라를 죽음과 연관지어 사무라이 정신에 꿰맞추다 보니 사꾸라가 뜬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꾸라 즉 벚꽃은 만개했을 때도, 그리고 그 잎이 흩날릴 때도 너무 아름답죠. 한국에 벚꽃이 많은 것은 일본의 식민잔재 때문입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너무나 큰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고, 지금도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지배층을 보면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남쪽에선 사꾸라를 벚꽃이라 부르며 축제까지 열고 있는데, 북에선 이 꽃을 일본놈들의 꽃이라고 몽땅 베어버렸습니다. 물론 남쪽에서도 사꾸라 베어버리자는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보시기엔 왜 남쪽에서 왜놈의 꽃을 좋아하는지 이해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벚꽃은 우리나라 꽃입니다. 저기 제주도에서 수백 년 전부터 자랐습니다. 일본의 상징과 같은 꽃이지만, 그렇다고 일본 것도 아니고 참 애매합니다. 생각해보면 꽃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북한의 진달래나 목란은 뭐 중국이나 일본에 없겠습니까.
무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무궁화는 100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상징적인 꽃이었습니다. 한국의 애국가가 1896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7년 전에 나왔는데 그때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단 무궁화는 높게 자라지 않아 벚꽃처럼 그 아래를 거닐면서 꽃을 즐기긴 어렵습니다.
북에선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했으니 사꾸라꽃을 매우 싫어하는 것은 알겠지만, 우리 조상 대대로 사랑해온 무궁화까지 남쪽을 상징한다고 없애버린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꽃을 정치적 상징물로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다름 아닌 북한입니다. 바로 그렇게 꽃을 무슨 상징물로 이렇게 만들어버리니까 아름다운 꽃들이 그 아름다움 자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배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북에서 국화로 선전한 목란이나 진달래도 나중에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북한은 민족의 사랑을 받아야 할 꽃의 운명이 순전히 김일성과 김정일의 기분에 따라 결정됐습니다. 진달래꽃의 경우에도 빨치산 할 때 김정숙이 김일성에게 꺾어 바친 꽃이란 이유로 모든 사람들이 진달래를 사랑하길 강요당했고, 목란도 김일성이 1960년대 초반 구월산에 가서 보기 좋다고 한마디 한 것 때문에 국화로 승격됐습니다. 나중에 나온 김일성화니 김정일화니 하는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진달래꽃이나 목란이 아름답지 않은 꽃이란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민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꽃을 왕의 기분에 따라 결정지어서 숭배돼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왕도 그러진 않았습니다. 그것만 봐도 북한은 분명 봉건왕조보다 못한 나라입니다.
김일성화, 김정일화에 이르러서는 분통이 터집니다. 북한 전국 어느 시, 군에 가나 값비싼 자재를 들여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이 건설됐습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땔 것이 없어 떠는데, 그 온실에선 2월과 4월에 맞추어 꽃을 내놓아야 하니 사람도 못 쓰는 석탄을 꽃이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김일성화 김정일화 축제를 벌여서 꽃의 크기에 따라 충성심을 평가하니 간부들이 인민들 잘살게 할 궁리보다는 겨울에 꽃을 어떻게 잘 키울까 이런 궁리나 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거기 살 때도 이거 열 받았는데, 밖에 나와 보면 분노가 터질 뿐입니다.
저는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북한이 어딜 봐서 사회주의입니까. 지금까지 역사에 그런 잡탕 체제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북한과 가장 비슷한 체제가 1940년대 초반 일본 군국주의입니다. 천황을 신처럼 떠받들고, 천황을 위해 사꾸라처럼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하던 그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 말입니다. 천황이 대를 이어 세습되는 것처럼 북한도 30살도 안 된 김정은을 신으로 떠받들면서 군인은 물론 인민들에게도 김정은을 위해 자폭정신을 가지라고 강요합니다. 그래도 일본 국군주의는 세계를 먹겠다는 큰 꿈이라도 꾸었지, 북한처럼 자기 인민들만 쥐어짜진 않았습니다.
비정상적 사회에선 사람은 물론, 벚꽃과 무궁화처럼 꽃조차 타도대상이 돼 그 운명이 불행합니다. 북한도 꽃은 꽃답게, 아름다움답게 대접하는 정상적인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바쁘단 이유로 봄에 진달래가 활짝 핀 산에 가본지 참 오래됐습니다. 올봄에는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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