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노동당 7차 당대회를 맞아 북한이 새로운 '군자리 정신'이란 구호를 꺼내들었더군요. 노동신문 1면 전체를 도배한 기사를 보고 저는 혀를 찼습니다. 이제부터 군자리 정신이 뭔지 여러분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계속 들어야겠네요.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강냉이알을 삼키며 일했다는 6.25전쟁 때 군자리 노동계급을 따라 배워 일하라고 선동하는데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헤쳐 왔던 정신이 부족했습니까. 지금까지 누구를 따라 배우자는 선동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초기 혁명 때 김혁 차광수를 따라 배우라, 고난의 행군 정신 따라 배우라, 불타는 낙동강을 건너던 정신 따라 배우라, 청산리 정신 따라 배우라, 무리로 굶어죽으면서 군수공장 돌린 강계 정신 배우라...뭐 이런 사례를 꼽으라면 입이 아플 정도일 겁니다. 거기에 성강의 봉화니, 천리마 봉화니, 희천 속도니, 아무튼 북에서 매년 쏟아내는 속도와 정신을 따라 배우다간 정말 사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그리 살았는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또 군자리처럼 힘들게 살랍니다. 군자리 정신이 지나가면 내년엔 또 뭘 따라 배우라고 할까요. 군자리 정신의 요체는 쉽게 말해서 배가 고파도 일해라, 아무것도 국가에서 주지 않아도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과제를 수행해라 이겁니다.
북한이 배우라는 것들을 보면 다 처절하고 스산한 과거뿐입니다. 행복하고 웃음이 넘치는 본보기가 어디 있습니까. 허리띠를 조이면서 70년을 살아왔지만 계속 가도 꽃밭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풀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허리띠를 계속 조여야 하는 상황만 오고, 앞으로도 점점 더 상황은 악화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올해 김정은의 미사일과 핵 놀음으로 사상 최고의 유엔 제재가 시작됐습니다. 북한의 외화고가 바닥이 날 것이고, 중국에서 들여오던 많은 것들이 차단돼 장마당에서 물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군자리 정신은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해서 아무것도 없어도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과제를 수행하라 내리 먹이고, 못하면 혁명정신이 부족하다고 처벌하기 위한 사전 그물입니다. 여러분들이라고 이런 속내를 모르시진 않을 겁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제일 지긋지긋하고 악독한 체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입니다.
반면 목숨을 걸고 그 체제를 탈출해 과거를 따라 배울까봐 겁이 나는 사회에 온 저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삽니다. 세계를 돌아볼수록 북에서 살았던 과거가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고, 평생을 그 속에 갇혀 이웃 나라 중국이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고 생을 마감하는 북한 주민들이 불쌍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살고 있는 오늘은 바로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만든 것입니다. 6.25전쟁 때 군자리 사람들도 김일성에게 열심히 충성을 다 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허리띠를 조여 맸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이야 얼마나 번지르르 합니까.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게다가 해방 후에 일제에게 붙어살던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모습까지 보면 얼마나 열 받겠습니까.
저도 남쪽 사람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해방 후에 제가 서울에 살았더라면 아마 6.25전쟁 때 지리산 빨치산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입니다. 해방 후 남쪽 최고 대학인 서울대 교수의 상당수가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했습니다.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놓았는데도 사회주의 이념의 허상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서울대 교수들도 그랬는데, 군자리 노동자들이 달콤한 사과에 든 독을 보았을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 하면 우리 대는 물론 자손들 대에는 정말 행복의 낙원이 올 줄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바 그대로입니다. 군자리 노동계급의 후손들은 지금 세계에서 제일 비참한 생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니, 살아라도 있으면 다행이겠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군수공장 지역들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습니다. 군자리 노동자의 자식들도 굶어죽었을 확률이 큰 것이죠. 김일성에게 충성을 한 대가로 아들인 김정일 시기엔 자기 자식들을 굶주려 죽게 한 것입니다. 자식들을 공산주의 낙원이 아니라 한 맺힌 지옥에 보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지난 70년간 흘러간 역사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은 뻔뻔하게도 또 군자리 정신을 꺼내 듭니다.
여러분들이 김정은이 강요하는 군자리 정신에 열심히 충성을 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자녀가 아니라 이번엔 여러분들이 지옥에 갈 차례입니다. 한번 속지 두 번 속겠습니까. 김정은이 군자리 정신을 강요한다면 진짜로 1950년대 군자리 상황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2016년에서 1950년으로 시간여행을 해 돌아간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실 겁니까.
또 1950년대 군자리 노동계급이 1990년대 중반과 2016년을 내다 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들고 일어나 김일성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을까요. 지리산 빨치산이 아니라 백두산 빨치산이 되지 않았을까요.
부모 세대가 속아서 흘러 보낸 역사, 그 역사를 이제 여러분들이 다시 되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은이 선동하는 군자리 정신을 따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부모세대가 남긴 군자리의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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