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하면 우선 정부조사를 몇 달 받고, 하나원이란 곳에서 석 달을 사회정착 교육을 받은 뒤 사회에 나옵니다. 사회에 나올 때 탈북자들은 보통 서울에 와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입국하는 탈북자들이 많아지면서 서울에 탈북자들에게 줄 수 있는 임대주택이 모자라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지방에 집을 주는데 누구는 서울에 집주고 누군 안줄 수 없어서,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때는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100명 중에 서울 가겠다는 희망자가 80명이고 서울에 나온 집은 40채밖에 안 된다 이러면 제비뽑기를 해서 40명을 뽑고 떨어진 나머지 40명은 지방에 가야 하는 거죠.
저도 서울 가려 했는데 제비뽑기에서 떨어졌습니다. 2차 제비뽑기는 어느 지방에 갈지를 정하는데 마침 서울에 붙어 있는 안양이라는 도시에 집이 남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는 안양을 적어냈는데 서울에서 떨어진 다른 사람들도 안양을 적어내는 바람에 이번에는 경쟁률이 6:1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운도 좋게 제가 이번엔 당첨됐습니다.
저는 처음에 안양이 어디가 붙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자랄 때 집에 우리나라 지도가 벽에 붙어있고 한국의 웬만한 도시는 다 알았는데 안양은 잘 몰랐습니다. 직접 가보니 인구가 60만 명으로 거주인구로 따지면 함흥이나 청진만큼 큰 도시였습니다. 안양에서 지하철을 타면 서울까지 30분 정도 걸립니다.
살면서 보니 서울 주변에는 북에서 알지 못했던 위성도시들이 참 많더군요. 우선 서울 북쪽부터 꼽으면 의정부시 파주시가 있고 서쪽에는 고양시 부천시 광명시, 남쪽에는 제가 집을 받았던 안양시를 포함해 군포시, 의왕시, 과천시 이렇게 있고 동쪽으로 성남시, 하남시, 남양주시가 있습니다.
이중에서 제가 북에서 이름 좀 들어봤던 도시는 의정부와 파주, 남양주 정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위성도시들이 작은 것은 아닙니다. 고양시, 부천시, 성남시 같은 경우는 거의 100만 명이 삽니다. 북이라면 평양 다음으로 큰 대도시가 되는 셈인데 북에선 잘 모르는 도시이죠.
이런 도시들은 다 경기도에 소속돼 있는데 그러다보니 경기도 인구가 1000만 명에 이릅니다. 서울인구 1000만 명, 경기도 인구 1000만 명해서 경기도만한 땅에 무려 북조선 인구와 거의 맞먹는 2000만 명이나 삽니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세계 6위인데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인도와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중국에 있고,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중에는 서울이 제일 인구밀도가 높습니다. 일본의 도쿄보다도 인구밀도가 3배, 뉴욕보다는 8배나 많습니다.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지금도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좁은 땅에 그냥 아파트가 빼곡히 차 있습니다. 서울의 면적은 600㎢ 정도로 예전 평양 면적의 4분의 1 정도지만 인구는 평양보다 3배 이상 많지요.
그런데 평양이 지난해 강남 중화 상원군을 뚝 떼어내서 황해북도에 포함시켜 버렸더군요. 그래도 아직 평양 면적이 서울보다 한 2배 정도 큽니다. 서울은 이제는 주변에 도시로 개발할 만한 땅이 없어서 골치가 아픈데, 평양은 땅이 너무 커서 관리가 힘들다고 뚝 떼버리니 정말 너무 대조적입니다.
물론 예전에도 강남 중화 상원이 명색만 평양이지 어디 평양시민 취급을 받았습니까. 평양시내에 가려면 지방 사람들과 똑같이 여행증을 떼어 가지고 10호 초소에서 단속 몇 번씩 받아야 했습니다. 시내에 맘대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평양시민입니까. 그렇다고 배급을 특별히 잘 받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긴 해도 졸지에 평양시민에서 황해도 주민이 돼 버렸으니 기분은 찝찝할 겁니다.
여기 서울은 서울시민하고 경기도 주민하고 차별 같은 것이 없습니다. 단속초소 이런 것은 전혀 없고요, 길 가다보면 다 도시만 펼쳐져 있어 어디서부터 서울이고 어디서부터 경기도인지도 모릅니다. 저도 경기도인 안양에 살다가 서울에 집을 옮겼는데, 이사 가기 전에 어디에 통보하고 이런 절차도 없습니다. 그냥 이사짐을 실어주는 회사에 전화해서 서울 주소를 주면서 여기로 짐을 실어가라고 하니 알아서 실어다주더군요. 집을 옮기고 나서 시간 날 때 동사무소에 가서 여기로 이사 왔습니다 하니 그날부터 저는 서울시민이 되더라고요.
북에선 지방 사람이 평양사람 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남쪽에서 살아보니 한국에서 다른 나라에 이사 가서 사는 것이 지방에서 평양 가서 살기보다 몇 배로 쉽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죠. 평양 한번 여행 가려면 뇌물 엄청 찔러주면서 여행증을 떼야 하는데 이것 역시 한국에서 외국 여행가기보다 몇 배로 힘듭니다. 서울에서 비행기타면 아무리 먼 외국도 반나절이면 도착하는데 북에선 평양에 반나절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은 평성이나 남포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함흥에서 평양가기보다 서울에서 워싱턴이나 런던에 날아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입니다.
이쯤 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평양공화국과 지방공화국으로 나뉘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11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제 나라 수도도 마음대로 못 가보는 곳은 세계에서 북조선이 유일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울타리 안에서 방목되는 가축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저는 울타리를 넘는데 성공해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있어 참 다행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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