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기계가 농사하는 남쪽 농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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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에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라는 처음 들어보는 조직이 동아일보를 3~4분 내에 초토화시켜버린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요새는 회사 드나드는 것도 번거롭습니다. 경비원들이 쭉 늘어서서 이상한 사람 아닌지 이리저리 살피는데, 여러분을 들볶다 못해 서울에 앉아있는 저까지 들볶이게 하니 아무튼 사람들 못살게 하는 덴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수고한 것은 여러분이죠. 4월에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4월 11일 당 대표자회가 열렸고, 13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회의와 광명성 3호 발사, 태양절 100주년, 인민군 창건 80주년 행사. 거기에 집안에 들어가면 김정은 노작 공부하라고 독촉하고, 밖에 나오면 이명박 때려잡는다며 훈련에 내몰고, 이렇게 이리저리 들볶이는 와중에 어느덧 4월도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 곧 농촌지원전투가 시작돼 밥숟가락 뜨는 사람은 다 농촌에 나가라고 내몰겠죠. 저도 열 살 때부터 농촌동원에 나갔습니다. 열살 때 영양단지에 강냉이 종자 넣는 것을 시켰는데, 크면서 강냉이 심기, 벼 모내기, 김매기, 수확 아무튼 열심히 농촌지원 다녀서 그 기간 다 합치면 몇 년 농민을 한 것과 맞먹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쪽에 와서도 농사짓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번 주말에도 머리도 쉬울 겸 자전거를 타고 서울 근교 농촌 마을까지 가서 흙내를 맡고 왔습니다. 여기 서울 도심엔 몽땅 아스팔트로 덮여 있다 보니 봄의 구수한 흙내를 맡으려도 멀리 나가야 하거든요. 제가 자주 느끼는 바인데, 여기 한국의 농사법은 별거 없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경제력으로 볼 때 수십 배의 차이가 나고, 상품을 놓고 봐도 질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죠. 하지만 농사에 들어가면 남북이 그렇게 큰 차이를 전혀 못 느끼겠습니다.

봄에 가면 논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모를 이식하는 것까지 북한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냥 차이점이라고 하면 여기는 기계화가 잘돼 있다 보니 뜨락또르가 논을 고르고, 모내는 기계도 있고, 비료도 농기계로 치고, 벼 수확도 탈곡기로 하는데, 그러다 보니 농민 한 명이 몇 정보씩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북에서 경제난 때문에 그런 거지 예전에 잘나가는 벌방 농장들도 이렇게 기계로 다 했습니다. 지금 기름이 없으니 기계 대신에 소가 밭을 갈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모내기하고 벼도 낫으로 베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비료인데, 여기는 비료가 넘쳐나니 치고 싶은 비료 마음껏 쳐서 농사짓습니다. 하지만 북에는 지금 흥남비료가 멈춰 서고, 수입도 잘 안 되니 농사에 비료를 쓰지 못하니 참 큰일입니다.

여기 남쪽에선 정보당 벼 생산량이 평균 5톤 정도입니다. 북에는 요즘 비료가 없어 얼마나 생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쪽 통계론 지난해 황해도 벌방에서 2.5톤 정도로 남쪽의 절반 수준의 생산량을 기록했다고 했는데 직접 가서 조사할 수 없으니 그냥 추정으로 발표하는데 이 추정치가 사실 오차가 상당히 큽니다.

아무튼 남쪽의 농사비법이 대단히 선진적인 것 같진 않고, 벼 종자도 아주 발전돼 있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북이나 남이나 농사짓는 것은 똑같은데, 대신 농기계가 있어 생산효율이 얼마나 높은가 그것 차이하고, 비료가 얼마나 투입되나 이런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농기계 하면 또 이건 공업 생산품이니 남쪽이 많이 발전돼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북에서 모내는 기계는 많이 타봤는데, 벼 수확기가 벼를 터는 모습은 텔레비전에서나 봤습니다. 북한 전역에서 홍보용으로 몇 대 도는 것만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난 가을에 여기 농촌에 가서 수확기가 벼를 베는 장면을 혼자서 3시간 넘게 지켜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로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벼 수확기를 본 것입니다.

예전에 가을에 농촌동원 가면 1인당 하루 과제가 100평이었던가 제 기억으론 그랬을 겁니다. 그것도 여간 벅찬 것이 아니어서 한 개 학급이 달라붙어야 하루에 한 정보를 베지 못했습니다. 한 정보 하면 가로 세로가 100m 정도 되는 크기인데요, 제가 지켜본 벼 수확기는 한 명이 모는데 혼자서 이 정도 면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한두 시간이면 다 수확하더라고요. 벼만 베는 것이 아니고, 벼를 베면서 아예 벼알까지 다 추려내서 자루에 담아 자동차에 싣고 갑니다. 그리고 볏단도 그 자리에서 둘둘 말아서 꽁꽁 압착해선 비닐로 감아놓습니다. 볏단에 무슨 미생물 처리하면 비닐 안에서 몇 달 발효가 돼서 훌륭한 소 사료가 된답니다.

제가 그 과정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흘러간 청춘이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아니 기계 한 대만 있으면 순식간에 저 넓은 벌판을 쭉쭉 밀어버리는데, 북에선 저 기계 한 대 대신 몇 백 명이 개미처럼 달라붙어 벼를 낫으로 자르니 그 노동력이 너무 아깝지 않겠습니까. 봄에 벼를 심을 때도 마찬가지죠. 모내는 기계로 쭉쭉 심으면 될 것을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심으니 얼마나 노동력 낭비가 심합니까. 그러니 어떻게 나라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다른 것을 생산한 다 생각해보십시오. 올봄에도 숱한 사람들이 논에 개미처럼 매달려서 농사지을 상상을 해보니 참 안타깝습니다.

북한도 남쪽을 향해 찢어 죽이겠다 이런 욕설이나 하지 말고 남북관계 좋게 하도록 노력 좀 하길 바랍니다. 사이좋게 지내면서 여기서 비료도 좀 지원받고 해서 농사 편하게 지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내년 봄부턴 좀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