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 남쪽은 1일부터 긴 연휴에 들어갔습니다. 1일은 노동절, 3~4일은 토요일과 일요일로 노는 날이고, 5일은 어린이날, 6일은 부처님 오신날 이렇게 이어집니다. 대다수 학교에선 여기에 2일까지 쉬는 날에 포함시켜 1일부터 6일까지 무려 엿새를 이어서 쉽니다. 어른들은 2일까지 일하는 직장이 있기 때문에 나흘을 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노동절은 북에서도 명절로 쉬는 날이고, 어린이날은 북한도 있으니 그것과 비슷한 날이라 생각하시면 되시고, 부처님 오신날은 석가탄신일이라고 하면 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불교 창시자인 석가는 기원전 563년 음력 4월 8일에 당시 인도 카필라왕국, 현재의 네팔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입니다. 추운 크리스마스와 달리 부처님 오신날은 봄기운을 덤으로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전례 없이 엿새의 봄 공휴일에 들어간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침울하기만 합니다.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때문입니다. 아직 찾지 못한 시신들이 많고 사망자의 80% 이상이 17~18살 된 학생들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사고는 정말 역사에 길이 아프게 새겨야 일이고, 남쪽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이것과 비교할만한 사고는 1994년 10월 3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와 이로부터 8개월 뒤인 1995년 6월 무려 5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삼풍백화점 붕괴였습니다. 저는 이 사고를 북에서 신문을 통해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북한도 1990년 초 광복거리에서 건설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져 한 개 대대가 몰살하는 등 대형 사고들이 비일비재한터이라 남쪽에서 대형사고가 났다고 해도 사람 사는 동네는 다 그런 사고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00여 명이 사망한 사고이니 남쪽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저는 그때 여기 없어서 잘 모르긴 하겠지만 슬픔의 강도를 굳이 따지면 지금 세월호가 더 심할 것 같습니다. 신문 방송 뿐 아니라 지금은 인터넷도 발달돼 있고, 개개인마다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는 티비나 마찬가지인 스마트폰도 다 갖고 있어 하루 종일 관련 뉴스를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망자들이 학생이라 그들의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정말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흐르는 아픔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보름 넘게 보내고 있습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는 둘 다 건설 부실이 원인이었습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1995년에 1만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십년 동안 꿈꿔오던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코앞에 두고 우리도 이제 막 선진국 입구에 들어서나 보다 하면서 신나하던 국민들은 이런 대형 사고를 두 차례나 연이어 당하자 꿈에서 깨나서 현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건 원인을 캐보니 도처에 건설 부실과 청탁, 뇌물 이런 관행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빨리빨리 하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오다보니 후진국 때의 나쁜 사회적 관행은 고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사고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에 맞은 IMF 사태, 이런 것들은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리고 2014년. 한국의 국민소득은 2만 6,000달러가 됐습니다. 한국산 제품들이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국민소득 3만 달러가 코앞에 오다보니 이제는 우리도 선진국이 됐다고 그런 기분에 휩쓸려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국력이면 북한 하나 먹여 못 살릴까 이러면서 이젠 통일을 해보자는 자신감도 충만돼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박근혜 대통령은 4월에 거국적인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절묘한 시점에 그만 세월호 사고가 터졌습니다. 대형사고는 우연히 일어나기보다는 그 사회가 품고 있는 악습과 모순이 한꺼번에 사고의 형태로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가 터지고 나니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기엔 아직 멀었다는 현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남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냐를 되돌아봅니다. 돈만 추구하다 인간성과 희생정신은 놓친 것이 아닌지 반성합니다. 눈앞에서 침몰하는 배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이 정부에게 통일이란 대업을 이룰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합니다. 사고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돈과 권력의 유착 고리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비리는 여전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더욱 슬픕니다. 선진국이 됐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자신감과 희망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기분입니다. 수백 명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흘리는 대한민국의 눈물과 침통함 속에는 가슴 아픈 반성도 함께 포함돼 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울겠죠. 화가 나고 무기력하겠죠.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겨내고 또 다른 역사를 쓰게 될 것임은 저는 확신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이겨낸 대한민국은 20년 뒤 국민소득 2만 6,000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이번 사고도 우리는 아픈 반성의 기회로 삼아 사회를 개조하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민들의 역동성을 믿습니다. 북한과 같은 독재 왕조 체제에선 사고가 발생해도 인민들이 반성하고 스스로 변화를 이룩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와 정치인을 투표로 단죄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이 각성하고 깨어나기만 하면 크던 작던 변화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점점 침몰해가는 북한과는 달리 전진해왔고 앞으로 경제력은 물론 국민의식까지 그 격차를 벌여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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