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평양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7차 노동당 대회가 진행됐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내일이나 돼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색이 당인데, 36년 동안이나 당대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북한이 얼마나 최소한의 규칙과 질서도 없는 무법천지였던 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김정은이 어떤 감투를 쓸까 저는 궁금해집니다. 2012년 4월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은 당 제1비서가 됐는데, 이런 감투가 성에 차겠습니까. 제1비서면 비서 중에 첫 번째 비서란 뜻인데, 자기가 무소불위의 황제인데 남들과 똑같이 비서직함을 달고 있는 다는 것이 내킬 리가 만무하죠.
당대회에서 무슨 노선이란 것도 채택되겠지만, 언제는 무슨 방침이니 노선이니 없어서 북한이 저 모양이 됐습니까. 저처럼 북한 인민들도 별로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6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조직별로 모여서 당대회를 시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자리에 앉으면 지금까지 당대회를 준비한다고 70일 전투니 뭐니 내몰렸던 고생이 이제야 끝나겠거니 하면서 한숨이 나오겠죠. 그러나 그것도 잠깐. 10일 전후로 해서 곧바로 또 농촌동원 기간이 닥쳐옵니다. 노동당 대회를 6일에 하는 것도 농촌동원 나가기 전에 사람들을 조직별로 모아놓고 강연회를 할 수 있는 날짜를 골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6일이 북한 인민에게 기존의 고생 끝, 새 고생 시작인 분기점이라면 남쪽 사람에게 6일은 임시공휴일입니다. 매년 고정돼 있는 명절이 아니라, 국가가 정해서 임시로 정한 공휴일이란 뜻입니다. 올해 6일이 임시공휴일이 된 것은 5일이 어린이날로 명절이고, 7일과 8일이 토일로 역시 쉬는 날인데, 6일이 가운데 끼어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내처 나흘 쉬시오 하는 뜻입니다. 많은 학교들은 2일부터 4일까지 수련회니 해서 어디 놀려갔다 오고, 그리고 또 나흘 명절이니 이번 주 일주일은 그냥 공부 안하고 쉬는 주간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사흘간 쉬는 명절은 거의 없습니다. 음력설이 목요일쯤 들어가면 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북에서 이렇게 길게 노는 날은 그야 말로 술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친구네 집에 가서 한잔하고 주패를 놀고, 내일은 저 친구네 집에 가서 한잔 하고 또 주패를 놓고 그러는 일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요즘은 주패 대신 한국 드라마를 몰아 보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런데 남쪽에 와보니 저에게 명절은 술 안 마시는 날이 돼서 좋습니다. 북한과 정반대로 여기는 평일에 술을 많이 마시고 명절은 안 마시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평일 저녁엔 저는 거의 매일 약속을 잡습니다. 그러고 앉으면 소주가 빠질 리가 없습니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친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계속 술자리를 갖다 보니 건강이 좋아질리 만무합니다. 물론 만취할 정도로 마시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간도 좀 쉬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지방간이 생깁니다.
오랜 만에 술자리를 피하게 됐으니 내일엔 동네 뒷산에 올라가볼까 합니다. 평양에는 모란봉 하나가 시내에 위치한 대표적인 산인데, 여기엔 시내 곳곳에 작은 야산들이 많습니다. 봄에 산에 올라가면 꽃이 활짝 피고, 인구 천만 명이 사는 서울이 쫙 펼쳐져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시내에 있는 산들은 잘 가꿔져 있어서 모란봉보다는 규모가 웅장하지 않아도 나름 아기자기한 멋들이 있습니다. 올라가면 참 기분도 상쾌하고 좋은데, 정작 일 년에 몇 번 올라가지 않습니다. 결심하고 엉덩이 들기가 어려운 것이죠. 그 결과 지금은 조금만 높은 산에 올라가도 숨이 차서 지인들이 등산을 가자고 해도 저질 체력인 것이 들킬까봐 기피할 수준이 됐습니다.
그런데 저도 원래 이렇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왕년에 호랑이 잡았다고 하지만 저는 진짜 옛날엔 누구보다 팔팔하게 많이 걸었던 사람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매일 왕복 세 시간씩 걸었고 학교 가서 뛰어노는 것까지 계산하면 매일 50리씩은 움직였습니다. 청년 시기엔 칠보산에서 송이를 캔다고 일주일 내내 오전 7시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그 높은 산을 매일 100리 넘게 탔던 것 같습니다. 화목 하려 산 두개씩 넘어가서 무게가 100키로 넘는 나무단을 끌고 다시 산을 두 개를 넘어왔던 일도 많았습니다. 탈북할 때만 해도 국경에서 화룡까지 산길 100리씩 걸어가면서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서울 생활 10여년 만에 이제는 몸이 편안함에 익숙돼 빤히 올려다 보이는 산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 포기하게 됩니다. 사람 몸이란 것은 이렇게 상황에 따라 간사하게 변합니다. 몸만 그렇습니까. 마음도 상황에 따라 잘 적응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쪽에서 통치자를 5년에 한번씩 선거를 통해 교체하는 것은 아주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5년만 대통령하게 되면 금방 제왕적 권력에 습관이 돼서 권력자인 게 당연한 듯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김정은이 북한을 물려받은 것도 공교롭게 5년이 됐습니다. 이제 김정은도 권력자의 삶이 몸에 밸 때가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초기 김정은도 인민을 잘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5년쯤 되면 희박해지고, 점점 갈수록 내 권력을 어떻게 하면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권력 의지만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당대회 역시 인민을 잘 살게 하려는 의지와는 거리가 먼, 김정은이 자기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 분명해 보입니다. 북한에서 인민이 잘 살려면 당대회가 아니라 민주 선거를 해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는 그길 밖엔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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