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웰남전 전사 비행사의 유해를 찾아가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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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5년에 사망한 오진우 무력부장을 원형으로 한 '백옥'이라는 영화가 지난해 나왔더군요. 여기 남쪽에서도 조선중앙방송이나 그쪽 영화를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지라, 마침 그즈음에 시간도 좀 있고 해서 그 영화를 제가 보았습니다.

뭐 그러루한 영화란 것이 뻔하죠. 충신에게는 합당한 대접이 따르니 딴 마음 먹지 말고 충성 다하라는 그런 내용이죠. 실제로 지금 중앙당 비서, 부장급, 군단장이나 도당책임비서와 같은 1일 공급대상 고위간부들은 정말 딴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은 특혜를 받고 있죠. 매일 아침 중앙당 재정경리부에서 그날 먹을 식재료를 주문받은 대로 딱 갖다 줍니다. 음식 만든 지 몇 시간만 지나도 구정물에 처넣습니다. 인민들은 굶주리는데 이런 간부들은 변학도처럼 살고 있고, 언론다운 언론조차 없다보니 인민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죠. 이렇게 대접을 해주니 당연히 말을 잘 들어야겠죠.

백옥이란 영화에서 충신으로 살라는 상투적인 주제보단 제 눈에 정작 낯설게 보였던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보면 웰남전 때 총정치국장이었던 오진우가 웰남전에 비행사로 참전한 림창만이 적후에서 희생된 전우의 시체를 찾아오지 않았다며 그에게 수여될 영웅칭호를 박탈해버리죠. 영화에는 웰남 묘지에 묻혀 있던 전사한 북조선 비행사들의 유해를 실어와 인민군 영웅 열사묘에 묻는 장면도 나옵니다. 실제로 북조선이 2002년 9월에 웰남에 있던 비행사들의 유해를 옮겨간 것은 사실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북조선의 애국심 고취방식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북조선 문학예술작품에서 포로와 전사자 처리 방식 같은 것은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금기사항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겐 적에게 잡히는 것은 최대의 치욕이니 자살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하면서도 전사한 전우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라는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백옥이란 영화에선 그 금기사항에 대해 침묵을 깼습니다. 전우의 시체를 찾아오지 못했다고 영웅칭호를 박탈했다는 것은 결국 시신을 꼭 찾아오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죠. 그리고 웰남전 참전 사실을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전사한 비행사들의 유해를 수십 년 만에 찾아오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죠. 이것을 통해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조국은 항상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한 것이죠.

영화를 보면서 저는 "북조선이 미국에서 저거 하나는 제대로 따라 배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사들에게 "당신이 전사하면 시신을 대충 처리해버리겠다"고 하는 것과 "죽어도 조국은 반드시 정중한 장례를 치러주겠다"고 한다면 후자의 경우 병사들이 훨씬 더 용감하게 싸울 것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이걸 제일 잘하는 나라가 바로 북조선이 철천지 원쑤라고 교육하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세계 어디에서든지 꼭 찾아갑니다. 미군의 신조가 "No one left behind"인데, 이는 우리말로 "단 한 명도 적진에 홀로 남게 하지 말라"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시잖습니까. 미국이 지금 북에 가서 6.25전쟁 때 전사한 군인 유해 발굴 작업을 하는 것을 말입니다. 시신 한 구 찾으면 북조선에 100만 딸라를 줍니다. 저는 처음에 뼈 몇 점 찾아가겠다고 100만 딸라나 뿌리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다는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남쪽에서 사는 세월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저것이 미국 사람들의 애국심의 바탕이며, 저런 힘이 미군을 세계 최강의 군대로 만들었다고 하는 분석도 많습니다.

미국은 북에서만 유해를 발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도 미국 발굴단이 한강을 수색하고 있는데, 6.25전쟁 때 한강에 추락한 미군 비행사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랍니다. 60년 전에 강에 빠진 시신을 지금 찾을 수 있을까요.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법한데 미국은 1%의 가능성에도 포기하지 않네요.

이런 정신이 있어 2년 전에는 1991년 걸프전쟁 때 추락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시신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사막을 다 뒤져서 끝내 추락장소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모래 속에 묻혀 있던 비행사의 유해를 찾아냈습니다. 시신도 그러니 산 병사는 오죽합니까. 그러니 미군은 홀로 포위돼도 부대가 꼭 나를 잊지 않고 찾으러 온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게 되는 겁니다.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른 미군 역사에서 포위된 부대를 구출하지 못했던 사례는 딱 한번뿐인데 6.25전쟁 때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중국 지원군에게 포위됐던 미8기병연대 3대대를 구출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출하려 간 부대가 500명 넘게 전사했지만 워낙 중국군이 너무 많아서 끝내 구출에 실패했죠. 그래도 3대대는 전멸은 하지 않고 200여명이나 살아오긴 했지만 이는 미군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북조선이 미국의 정신이라고 해도, 또 뒤늦게라도 배울 것은 배우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참 높이 삽니다. 미국이 지닌 장점은 참 많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미국을 어느 정도만 따라 해도 지금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북조선이 비단 시신 찾는 일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장점도 적극 따라 배우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