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많은 남쪽, 고생 많은 북쪽의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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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해마다 5월 10일경부터 시작해서 6월 10일경까지 전국이 농촌으로 총동원돼왔으니 올해도 예외 없이 농촌지원전투에 나서 모내기와 강냉이 심기에 동원되겠군요.

사실 올봄 춘궁기를 어떻게 이겨내나 몹시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아버지 시절에 굶어 죽으면서까지 꽁꽁 지켜왔던 군량미 창고를 털어 배급도 주고 하니 식량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네요. 그나마 군량미 창고라도 터니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걸 보면 부자 3대 못 간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논마지기도 3대는 못 간다’는 속담이 있고 미국에는 ‘셔츠 바람으로 시작해서 3대 만에 셔츠 바람으로’란 말이 있고 독일에는 ‘아버지는 재산을 모으고, 아들은 탕진하고, 손자는 파산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북한의 현실이 셔츠 바람에서 셔츠 바람으로란 미국 속담이 가장 비슷한 것 같습니다. 김일성이 고난의 행군 했다고 하니까 북한 주민들도 60년 너머 결국 다시 고난의 행군 들어간 셈이죠. 김정은은 아버지 때 장만한 군량미 창고를 털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내년에는 당자금이란 명목으로 꽁꽁 숨겨두었던 비자금도 털어서 먹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행이고요.

당자금이란 결국 따져보면 여러분들의 피땀으로 번 돈입니다. 온 나라가 김 씨 일가의 것이니 여러분들이 열심히 외화를 벌어 국가에 바치면 그게 결국 김정은 개인 것이 된 것입니다. 김정은이 이렇게 아버지 때 겨우 남겨놓은 재산까지 탕진하게 되면 이것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 의문입니다. 개성공단까지 다 거덜 내고 맨 날 전쟁한다고 떠들어서 중국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어먹던 관광도 거덜 나고, 이제 외화가 어디에서 들어오겠습니까. 그때는 정말 망조가 들 것이니 그 이전에 빨리 개혁이라도 해서 먹고 사는 문제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5월은 여러분들이 농촌에서 찰거머리에 물려가면서 열심히 벼를 심는 기간인데, 여기 남쪽은 5월에 반대로 명절이 참 많습니다. 5월 1일 노동절부터 시작해서,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 17일은 석가모니탄신일 이런 명절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노동절은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실 테고, 어버이날은 생소하실 겁니다. 북에서 재작년에 11월 어머니날을 정했던데 그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버이날은 아버지 어머니를 의미하는 날입니다. 이 날이면 자식들은 나를 키워준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부모님께 선물도 주면서 사랑을 나타냅니다.

사실 어버이란 말은 북에선 생소한 말은 아닙니다. 너무 많이 써서 탈이죠. 그렇지만 어버이란 의미는 남쪽과는 전혀 다릅니다. 북에서 쓰는 어버이는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 외는 북에 어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란 우리 말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을 북에선 김 씨 일가가 자기한테만 해당되는 말로 빼앗아 버린 셈입니다. 어디 술좌석에서 “우리 어버이는”이라고 했다간 사람들이 다 김정은을 의미하는 줄로 받아들입니다. 부모보고 우리 어버이라고 했다간 잡혀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북에선 그렇게 고유한 좋은 우리말을 김 씨 일가가 다 빼앗아버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버이날엔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선물을 하는데 나라가 발전할수록 어떤 것을 선물해야 할지 정말 고민하게 됩니다. 북에서야 선물을 하려 할 때 뭐를 선물로 해도 괜찮습니다. 물자가 워낙 귀하니까 어느 것을 줘도 반가워하고 그게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국처럼 풍족한 사회에선 어느 것을 선물로 줘도 그게 집에 몇 개씩 있기 때문에 북에서처럼 그렇게 반갑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선물 대신 돈으로 주고 필요한 것을 알아서 사세요 하는 풍속도가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잘살면 나중에 이렇게 될 것이라 봅니다.

스승의 날은 말 그대로 학생이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입니다. 예전에는 여기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그게 다 뇌물이 된다고 그냥 꽃 한 송이 정도 선물합니다. 사회가 투명해질수록 이런 것이 엄격합니다.

그런데 사실 스승의 권위와 역할은 북한이 훨씬 더 큽니다. 여기는 해가 갈수록 선생님들의 위상이 떨어져서 큰일입니다. 학생들 인권을 강조하고, 또 학원이란 곳이 발달하니까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떨어집니다.

솔직히 말 잘 안 듣는 아이를 욕하거나 좀 심하면 매로 다스리려 해도 학부형들이 고이 키운 우리 자식들 학대한다고 야단칩니다. 그러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야단도 제대로 하기 힘듭니다. 저는 여기 와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분야가 교육제도이지만 이건 예전 방송 때도 말씀드린 적이 있으니 여기서 장황하게 설명은 하진 않겠습니다.

석가모니탄신일은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와 똑같은 날입니다.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이라는데 음력으로 4월 8일입니다. 그러니까 매년 5월에 날짜는 왔다 갔다 합니다. 북한은 주체사상만 믿고 종교는 아편이라 배웠으니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전국적인 공휴일이니까 불교 명절도 전국적인 공휴일입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에겐 이날이 아주 큰 명절이겠으나 저는 불교 신자가 아니니 그냥 휴식일 정도로 생각하고 삽니다.

어찌 됐든 남쪽의 5월은 이래저래 명절이 많은데, 북에서 열심히 농사지을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같은 민족이 너무 차이 나게 살아도 되나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북한도 5월에 전국이 농촌에 나가 장딴지 걷고 일만 하지 말고 명절을 즐기는 사회가 하루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