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에 올 때 중국 위조여권을 만들어 여객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 대가로 알선해준 밀입국 브로커들에게 한국에 가면 1만 딸라를 주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1만 딸라가 한국 돈 1090만 원 정도이지만 당시엔 1300만 원이었습니다. 중국 돈으로는 지금 1만 딸라가 6만5000원 정도 되지만 당시엔 8만 원이었습니다.
저를 보내준 브로커는 인민폐 몇 천원으로 가짜 여권을 만들고 3만 원으로는 중국 세관 검열원을 매수했습니다. 세관 검열원을 매수해 아무개 이름의 여권을 통과시켜라 하고 알려주면 이 검열원이 가짜 여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먹었으니 모르는 척 통과시켜 주는 것입니다. 가짜 여권은 그냥 빈손으로 나갈 순 없으니 형식상 만드는 것입니다. 올 때 비행장에 브로커가 따라 나와서 여러 명의 검열원 중 한사람을 가리키며 저 통로로 통과하라고 알려주더군요.
탈북자는 사실 밀입국 브로커에게 가장 좋은 작업 대상이기도 합니다. 중국 사람을 그런 방법으로 한국에 보내면 한국 공항에서 가짜 여권 다 걸립니다. 그러면 중국에 다시 추방되고 중국에 도착하면 누굴 통해서 가짜 여권 만들었는지를 조사받기 때문에 브로커가 위험하죠. 그런데 탈북자는 그냥 중국 쪽 세관만 통과시키면 한국에 가서 걸려도 상관없거든요. 탈북자를 중국에 다시 추방시키지 않으니 말입니다. 브로커에겐 본전 3만 5000원 정도 들여서 돈만 다 받으면 8만원을 벌 수 있으니 곱으로 남는 장사였죠.
제가 올 때 브로커가 한국에 도착하면 공항 화장실에 들어가 여권을 다 찢어 변기에 내린 뒤 거기서 기다렸다 밤에 나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인천공항에 내려서 화장실에 들어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인천공항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하고 멋있던지... 향기 냄새가 풍기는데 솔직히 제가 가본 중앙당 간부집 거실보다 훨씬 깨끗하더군요. 화장실이 말이죠.
일단 위조여권을 찢어 버렸는데, 이건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밤에 나가라는 것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오전 11시에 도착했는데 밤에 나가면 12시간을 화장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건 못할 것 같아 그냥 밖으로 나와서 한국 세관 공무원에게 다가가서 "나 북조선에서 왔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어딘가 전화를 걸고 좀 있더니 국정원 직원이 와서 절 데려가더라고요.
제가 왜 이런 과정을 방송을 통해 이야기 하냐 하면 이제는 저처럼 오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 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통로를 정말 찾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통로가 고속도로처럼 뚫려 있어 빠르면 북에서 나와 3일 만에 한국 온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오니 전쟁 이후 남쪽에 온 2천 몇 백 번째 북한 주민으로 기록되더라고요. 지금은요, 지난달 집계 결과 2만 1200명 정도 왔습니다. 제 뒤로 벌써 10년도 안 된 사이에 2만 명 가까이 온 셈입니다.
저는 맨주먹으로 남쪽에 와서 결국엔 브로커비 1만 딸라 다 주긴 주었는데 그 돈을 갚는 것이 참 힘들긴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브로커가 절반 넘게 먹어도 중국에 있을 때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니 다 주었죠. 중국에 있을 땐 목숨만 구해주면 뭐든 다 할 각오였다가 한국에 와서 입장 싹 바꾸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탈북자들이 여기 와서 제대로 정착해 돈을 벌면 1년에 몇 만 딸라는 버니 자기 운명을 바꾸고 심지어 목숨까지 구했는데, 그 돈 아깝다고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봅니다. 브로커들도 다 잡히면 감방 갈 각오를 가지고 하는 일이잖습니까.
지금은 한국 오는 데 1만 딸라 씩 들지 않습니다. 대량탈북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브로커들도 점점 능숙해져서 한국에 오는 통로를 자꾸자꾸 만들어냅니다. 2000년대 초반엔 저처럼 비행기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2000년대 중반엔 몽골로 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제는 동남아 국가인 라오스나 타이를 거쳐 많이들 옵니다. 몽골이나 타이에 가면 어떻게 한국 오냐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거긴 탈북자들을 북송시키지 않고 한국으로 보내줍니다. 요즘엔 여기 가족이 있어서 브로커에게 선불을 주면 1000딸라 좀 넘게 올 수 있고, 한국에 가서 후불로 주겠다고 하면 3000딸라는 줘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에 온 뒤 태도가 돌변해서 이 3000딸라도 주지 않겠다고 입을 싹 닦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3000딸라는 솔직히 한두 달 열심히 일해도 버는 돈입니다. 중국에서 언제 잡혀 갈지 몰라 가슴 졸이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돈이 절대 아깝지 않을 텐데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니 브로커가 후불로 자꾸 보내려 안하고 결국 한국에 친척이 없는 탈북자만 올 길이 막히는 거죠.
요즘 북에서 탈북 엄청 단속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오고 싶어도 중국에서 체포되면 무조건 교화 3년 때리니 너무 두렵죠. 사실 길만 찾으면 한국으론 정말 오기 쉬운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옵니다 하고 방법을 알려줄 수도 없고, 또 제 이메일로 연락주십시오 하면 보위부 첩자들이 탈북통로 알려고 위장해서 접근할 것이고, 알면서도 도와줄 방도가 없으니 참 난감합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매년 수천 명의 북한 동포들이 남쪽에 오고 있습니다. 이 방송 청취자 분 중에서 한국 입국에 성공한 뒤 제게 북에서 방송 잘 들었다고 연락을 해주시는 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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