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대하는 남북지도자의 판이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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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쪽이 302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로 한달 넘게 침통해 있는 이때 북녘에서도 13일에 평천구역 안산1동에서 23층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북한이 발표를 하지 않으니 여기선 사망자가 100명이 좀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최대 450명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후 5시에 붕괴됐다니 학생들이 집에 와 있을 시간이군요. 남쪽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붕괴 때도 어린 아이들이 많이 희생된 것 같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저는 구글어스라는 북한을 손바닥처럼 내려다보는 위성지도로 현장을 보았습니다.

창광원과 중앙청년동맹 청사 길 건너편 맞은편이라 위치는 정말 좋더군요. 뒤엔 공원이 있고, 2~3분 거리에 궤도전차 정거장이 있고, 걸어서 10분 거리엔 지하철 황금벌역이 있습니다. 창광거리와 평양역도 멀지 않으니 정말 교통요충지였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공사장이 아닌 것을 보니까 힘 있는 기관에서 목 좋은 곳을 골라 지은 아파트로 보였습니다. 이 정도 위치에 지은 아파트라면 가격이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사이는 됐을 것이고, 거기에 준공 전에 입주했던 사람들이라면 수준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황금벌역을 중심으로 붕괴된 아파트와 반대편, 즉 유경호텔 쪽엔 대외경제총국이 작년에 건설한 북에서 최고로 비싼 16만 달러짜리 아파트가 있습니다. 이번 아파트는 위치가 거기보다 더 좋으니 꽤 비싸겠죠.

이번에 피해자들 앞에서 간부들이 머리 숙여서 사과하는 모습은 꽤 신선했습니다. 북에선 예전에 1992년에 통일거리에서 다 올라간 아파트가 붕괴돼 방마다 들어가 미장하던 한개 대대가 몰살된 적도 있고, 그외 크고 작은 붕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과를 한번도 안했는데 이번에 김정은이 주민들 좀 의식하려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붕괴된 아파트는 중앙당 청사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으니 꽤 충격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피해자들도 아마 북한에서 만만치 않은 간부나 부유층이었으니 그러는가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김정일 시대라면 사과를 안했을 겁니다.

김정은이 인간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런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인기를 얻지 못할 거니 그런 거라 봅니다. 가뜩이나 주민들이 충성심이란 것도 하나도 없어지고 억지로 통치하는데 말입니다.

이번에 김수길 평양시당 책임비서가 말하길 "장군님이 이번 사고에 몹시 가슴 아파 하며 한잠도 못잤다"고 이야기하던데 그 말은 오히려 안하기보단 못했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14일 만경봉팀과 소백수팀의 축구경기를 보면서 활짝 웃더군요. 그리고 21일에 공개된 김책공대 교직원 아파트 공사에 나가서도 뭐가 좋은지 활짝 웃고 말입니다.

한 번도 사과란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 노동당 선전부에선 밤잠 못 자고 슬퍼한단 선전과 활짝 웃는 사진 같이 내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선전을 하는 겁니다. 나라에 재난이 왔을 때 지도자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그들이 알 리가 없지요.

한국 같으면 대통령이 웃었다간 난리가 납니다. 세월호 침몰이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대통령은 웃을 수가 없고 사과를 몇 번씩 하고도 계속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세월호 침몰 때 북한이 남쪽을 향해 뭐라고 조롱했는지 아십니까. 침몰 이틀 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내놓은 첫 반응이란 것이 애도가 아니라 "민중도 못 지키는 게 정부냐. 박근혜 정부 하야하라"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게 남을 함부로 그렇게 조롱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 "인민도 못 지키는 것이 정부냐, 김정은 하야하라"가 되겠습니다.

평천 아파트 붕괴 같은 것이 남쪽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인민보안부장이 사과하면 김정은이 부하들 내세워 꼬리 짜르기 한다며 당장 김정은 사퇴하라고 시위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붕괴 잔해 속에 사람들이 살아있는데 일부러 구하지 않는다, 땅크가 아파트 기둥 박아 무너졌는데 사실을 은폐한다, 중국이 도와주려 했는데 거절했다, 사과 들으려 모인 사람들은 동원된 가짜 유가족이다 하는 식의 유언비어도 막 퍼지고 했을 겁니다.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 남쪽은 사고가 나면 무책임하게 떠드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이긴 한데 북한은 반대로 화가 나도 찍소리 못합니다.

이렇게 누구나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국가이니 남쪽은 대책을 확실히 세워야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남쪽은 이번에 구조 과정이 허둥지둥했다고 61년 역사를 가진 1만 명이 넘는 해경조직을 해산시켜버렸습니다. 그냥 말로 끝내선 절대 반성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북한도 머리 숙여 사과는 처음 했으니 첫술에 배부르겠냐 만은 앞으론 사과와 함께 후속 대책도 내놔야 합니다.

이번에 붕괴된 아파트를 인민내무군이 건설했다고 선우형철이란 장령이 대중 앞에서 머리를 숙이던데 이 사람은 책임을 물어 죽일지도 모릅니다. 김정은이 가뜩이나 장성택 산하에 있던 인민내무군을 곱게 안 보는데, 이번 사고의 책임을 물어 한국에서 해경 해체 시키듯이 내무군 해체할지도 모릅니다. 구실이야 뭐 건설자재 빼돌리고, 규정대로 안 짓고, 아무튼 붙이기 나름이겠죠.

저는 평양 아파트 건설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평양 가면 아파트에선 절대 안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문이 삐뚤삐뚤한 것이 그냥 막 무너질 것 같더군요. 지금처럼 계속 속도전 구호 외치고, 날짜 못 지키면 목 날리고, 자재 빼돌려 팔고 하면 앞으로도 이런 사고 계속 날 것 같습니다.

북한도 이번 사고에서 교훈을 찾고 앞으론 이런 희생자가 다신 없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자면 김정은부터 사고 다음날부터 활짝 웃으며 다니지 말고 솔선수범해서 뼈저리게 반성하는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