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부터 북에선 12년제 의무교육이 전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과거보다 1년 학교를 더 다니면 군대에 나갈 시기가 1년 더 늦춰지니까 그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 아이들이 한창 클 나이인 17살에 군대에 나가는 것은 정말 가슴 아팠거든요. 17살이면 키가 쑥쑥 클 때인데 군대에 나가 배를 곯으니 발육이 중단돼서 남성들의 평균키가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1년 만이라도 집에서 더 먹고 갔으면 했는데 실제 그렇게 돼서 그건 맘에 듭니다. 대신 부모 입장에선 1년 동안 학교에서 뭘 내라, 뭘 내라 하는 독촉에 더 시달리긴 하겠군요.
공부는 뭘 더 배워줄까 여겨보니 첨단 정보기술과 외국어 교육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정보기술 강화 차원에서 컴퓨터도 좀 더 배워주고, 외국어 시간도 늘어나고 소학교 과목수도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소학교 과목이야 당연히 5학년이 과거의 중학교 1학년 나이일 것이니 과목이 늘어나야 정상이겠죠. 컴퓨터와 외국어를 많이 배워주는 게 쓸모없는 김일성 혁명역사니, 김정일 역사니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워주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실제 북한의 현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북에 있을 때보면 외국어 자체에 학생들이 별 의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외국어를 잘 해보십시오. 외국에 나가길 합니까, 아니면 외국 신문이나 책을 읽을 수 있습니까. 외국어가 쓸모가 있습니까. 현실은 외부와 접촉하는 길은 꽁꽁 막아놓으면서 외국어 교육을 강화한다,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도 참 웃기는 모순이 아닙니까.
외국에 자유롭게 나가는 사회를 만들어보십시오. 외국어 잘하면 정말 쓸모가 있다 이런 생각을 사람들이 갖게 만들면 외국어 아무리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공부할 것입니다.
여기 남쪽은 외국 유학이 누구에게나 자유롭습니다. 물론 미국 같은 선진국에 가면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나간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중산층만 되면 마음만 먹으면 내보냅니다. 이런 사회가 돼야 외국어 배우는 것도 소용이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 수업 강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를 잘 해봐야 뭐합니까. 북에는 인터넷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의 정보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외국의 정보기술은 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발전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진 기술을 가져다 가르쳐봐야 북한 현실에선 응용할 데도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배를 모는 방법을 바다에 가보지 못하고 종이에 그림 놓고 배우는 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정보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합니다. 요즘은 알파고란 컴퓨터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의 바둑고수를 연이어 다 이겨서 화제가 됩니다. 장기보다 바둑은 훨씬 더 복잡한데,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야 이제는 수만 개 경우의 수를 1초 만에 계산하는 인공지능을 못 따라 갑니다. 바둑은 대표적 사례일 뿐이고, 이렇게 특정 분야에서 스스로 컴퓨터가 알아서 사람보다 머리를 더 잘 쓰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내고 이런 일들이 이젠 보편화된 세상입니다.
정보기술이 너무 빨리 변하니, 세계적으로 정보기술의 강국이라고 알아주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그것도 새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하는 기자라는 직업에 있는 저도 변화되는 기술을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먼 이야기가 아닌 것이 저도 아침에 집에서 휴대전화에 "오늘 날씨"하고 말하면 전화기에서 오늘은 날씨가 어떻고 우산 챙겨야 하고 이런 것을 다 말해줍니다. 어디를 가면 목적지까지 지하철을 타면 몇 분이 걸리고, 버스로 가면 수십 개 노선 중에 몇 번을 타고 가야 제일 빨리 몇 분 내로 막히지 않고 가고 이런 것을 다 알려줍니다. 어느새 신기술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빠르게 제 옆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인 북에서 정보기술을 배워봐야 다 낡아서 이젠 남들은 더 배울 필요도 없는 것들을 공부하기 십상입니다. 컴퓨터와 영어를 배워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을 그런 지식이 쓸모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핵심이죠.
물론 저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자녀들보고 "쓸 데 없으니 공부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마 애들이 커서 20대~30대쯤 되면 김정은 독재정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배운 것들이 쓸모가 있겠죠. 배움의 시기는 한번 놓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열심히 배울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자기 망할 때를 염두에 두고 영어와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라고 한건 절대 아니지 않겠습니까. 북한을 개방할 생각도 안하면서 뭔 속내인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 군대 10년 갔다 오면 말짱 다 까먹습니다. 18살부터 28살 사이는 사실 배움의 시기입니다. 여기 남쪽은 대다수가 최소 25살까지 공부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대학에 가는 20% 미만의 학생들을 빼고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군대에 가서 다 까먹고 옵니다. 이러니 북한이 발전하겠습니까. 사용가능한 인재 자원을 최대한 다 활용해도 남들 따라갈지 말지인데, 80%는 군에 끌고 가 버리고, 나머지 20%만 활용해서 언제 소위 강성대국 만들겠습니까.
김정은이 진짜로 북한을 발전시키려면 일단 학제를 늘이기 전에 군 복무 기간이나 팍 줄이길 바랍니다. 핵도 만들었다면서 그 많은 청년들을 군대에 끌어가 10년씩 청춘을 허비하게 만들 까닭이 있습니까. 그리고 더 시급한 것은 북한을 최신 기술을 배우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스스로 느껴지는 사회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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